물리학 이야기 - EPR Paradox

 

    입자와 같은 미시세계를 기술하는 학문, 양자역학에서 이해하기 가장 난해한 내용 중 하나를 꼽자면 바로 입자의 이중성(duality)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것은 입자라고 하는 아주 작은 미시세계에서는 우리가 그것을 어떠한 방법으로 관찰하는가에 따라서 어떤 경우에는 파동으로서, 어떤 경우에는 입자로서 존재함을 보여준다.(전문가들은 물질의 이러한 이중성을 Superposition이라는 멋진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게다가 입자의 이러한 이중적 속성은 마치 그것이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불쌍한 물리학자들의 실험을 망치려고 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으며, 이것은 우리가 입자의 물리량들을 알 수 있는 한계치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과학기술의 발전이 미진하여 그러한 것이 아니라 - 측정장비의 정확도가 개선된다고 해도 절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미시세계의 입자는 원래 그렇게 행동한다고 주장한다 - 이 논리는 독일의 젊은 학자, 하이젠베르크가 발표한 한 편의 논문 - 불확정성 원리에서 수학적으로 입증이 되었다. 즉, 우리가 생각하는 만물의 근원인 입자는 확률이라는 모호한 값에 의지해야만 그 입자의 속성을 일부나마, 상대적인 근사치를 통하여 추려 볼 수 있을 뿐이다. 작디 작은 미시세계에 살고 있는 입자는 우리가 그것의 위치를 정확히 확인하려 할수록 그것의 다른 물리량은 우리가 아는 정보의 정확도만큼 큰 오차가 벌어져 그 에너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으며, 이것은 우리가 어떠한 과학적/기술적 방법을 써도 극복할 수 없는, 물리학의 한계점이 되었다. 

 

    고전 물리학으로 명성을 쌓았던 학자들은 당연히 이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했는데,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우주라는 것이, 기껏 근삿값(즉 확률)으로만 기술된다는 것은 그 이론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할 뿐이지, 우주 자체가 그렇게 모호한 상태를 지닌다고는 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 특히 아인슈타인은 이러한 확률론에 기반한 양자역학의 법칙을 마땅치 않아했다. 물론 과학자들은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잘 정리된 논문으로서만 반박할 수 있을 뿐이었으니, 양자역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불확정성 원리에서 표현된 그 아름다운 수학 공식을 무너뜨리는 것은, 비록 아인슈타인이라고 하더라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1. EPR 역설

    나중에, 아인슈타인을 포함한 3인의 물리학자 - 알버트 아인슈타인(E), 보리스 포돌스키(P), 네이선 로젠(R)은 양자역학 이론을 부술 수 있는 하나의 사고 실험을 제안하니,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EPR역설이다. 

 

<Youtube Clip : Ted-ED의 EPR설명 영상에서 캡쳐함>

    그들의 논문 <물리적 실재에 대한 양자역학적 기술이 완전하다고 여길 수 있는가?>에서 제시된 가설은, 양자역학의 기본 가설을 완전히 무너뜨릴 수 있는 어떤 특별한 입자들의 관계에 대한 사고실험을 제안한다. 

 

    강력한 레이저 광선에서 나온 빛을 프리즘에 통과시키면 빛, 즉 광자가 둘로 나뉘는데(정확하게는 한 개의 광자가 쪼개져 두 개로 나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이 두 개의 광자는 서로 상호보완적인 관계, 얽힘(entanglement) 상태를 가진다. 서로 얽힌 두 광자는 하나인 A의 상태가 바뀌면 나머지 광자 B도 그와 동시에 자신의 상태가 변경된다 - 얽힌 입자간의 이러한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상태변환은 그 당시 이미 실험으로 참임이 증명된 사실이었다. 여기서 A와 B라는 입자는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도 - 예를 들어 A는 지구에, B는 안드로메다 성운의 끝자락에 위치해 있다고 하더라도, A가 측정되면, B도 그 즉시 측정된 속성이 반영된다. 

 

    양자역학의 얽힌 입자간의 이러한 관계에 대해 아인슈타인은 유령이 손을 대는 것(spooky action)같다며 (약간)비아냥 댔다. 그의 이론, 특수 상대성 원리에 의하면 빛 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입자(혹은 전달될 수 있는 정보)는 없다. 다시 말해, 얽힌 입자의 거리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이러한 정보전달 현상은 자신이 주장하고 증명한 특수 상대성 원리에 위배되는 사건임에 틀림 없었다. 특수 상대성 원리에 의하면,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전달되는 정보는 불가능하므로, 위의 얽힌 입자들의 이러한 시간과 거리를 초월한 상호관계는 분명 그 이론 깊숙히에 문제가 있다는 반증이었다.

 

    그는 이것의 해답을 얽힌 입자가 생성되는 초기 과정에 있다고 생각했다. 처음 얽힌 입자들이 만들어 질 때, 그 입자가 가지는 정보가 입자 내에 이미 존재한다고 보았다. 우리의 기술력이 부족하여 그것들 사이에 존재해 있는 숨어있는 변수(hidden variable)를 검출하지 못했을 뿐, 정보는 이미 각 입자에 저장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유령현상처럼 보이는 이 두 얽힌 입자들간의 작용은 빛보다 빨리 전달되는 상호작용에 있는 것이 아니라 원래 입자가 그렇게 움직이도록, 입자들이 생성될 때, 그 정보가 이미 그들 입자에 저장되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만일 아인슈타인과 포돌스키, 그리고 로젠이 주장한 이 사고실험이 맞는다면, 양자역학은 우주를 기술하기에는 부족한 이론이 된다. 양자역학은 미시세계, 그리고 우주를 설명하는 그저그런 근사치 이론일 뿐이며, 실제 우주는 양자역학이 밝히지 못한 보다 더 심오한 법칙(숨겨진 변수의 힘)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과학에서 어떤 새로운 논리가 주장되면, 이 논리가 참인지 증명하기 위해서는 실제 실험을 하여 증명하면 된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이 사고실험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미시세계에 존재하는 입자들의 위치조차도 명확히 하지 못하는 마당에, 그 안에 숨어있다는 변수값들이 있다는 주장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이 3인이 주장한 논리 EPR역설을 실험으로 증명하기 위해서는 문제를 좀 더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 

 

 

2. 복잡한 문제를 단순화 하기 

    당신과 우주가 야바위 게임을 한다고 생각해 보자. 

    각기 다른 색을 가진 두 개의 구슬을 하나씩 바닥에 두고 두 개의 구슬이 같은 색을 가지는지 각기 다른 색을 가지는지, 내기를 한다. 

    

    먼저, 당신은 두 구슬이 같은 색일것임에 내기 판돈을 걸었다. 그러자 우주가 내 놓은 답은... 

<구슬을 바닥에 까는 파란색 손이 바로 도박꾼 주인인 우주. 이번엔 우주의 승리>

 

    위의 선택으로 수십번의 판돈을 잃은 후, 이번엔 당신은 두 구슬의 색이 다를 것임에 판돈을 건다. 

<이번에도 우주의 승리>

  아무리 많은 횟수로 도전을 하더라도, 결코 당신은 우주라는 위대한 도박꾼을 이길 수가 없다. 생각해 보면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어떤 색의 구슬이 바닥에 깔릴것인지 당신이 먼저 선택한 상태에서는, 나중에 구슬을 까는 저 파란 손은 당신의 선택을 확인하고나서 그와 다른 색의 구슬을 바닥에 깔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파란색 손이 당신에게 사기치고 있다는 생각밖에는 안들것이다. 도박을 하면 100% 내가 지는데, 이건 도박판을 열고 있는 저 점주(여기서는 파란 색의 우주)가 내게 사기를 치고 있기 때문이라는 의심은 당연한 귀결이다.

    이것이 EPR의 핵심 내용이다.  즉, 우주는 당신이 선택하는 구슬의 색을 미리 알고 있기 때문에(얽힌 입자간의 정보가 이미 그 안에 내포되어 있기 때문에), 그래서 그 이유 때문에 당신은 결코 우주와의 내기에서 이길 수 없다. 즉 얽힌 입자의 특성은 이미 그것이 만들어질 때 이미 들어 있는 것으로 유령효과 같은 것은 없다 - 즉, 우주가 물주인 당신을 속이는 야바위 꾼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주는 진짜 사기꾼일까? 확인을 위해서 위의 도박 규칙을 좀 바꿔보자. 이번엔 파란색 손에게 먼저 구슬을 바닥에 깔라고 해 놓는다. 물론 바닥에 깔린 그 구슬 위를 천으로 덮어 내기에 판돈을 거는 내가 그 구슬의 상태를 모르도록 한다.  구슬이 먼저 깔린 상태이므로 이런 규칙에서의 내기 도박의 결과는 오로지 내 선택에 달린 문제이다.  

    그렇담 어떻게 우주에게 먼저 구슬을 깔고 그것을 볼 수 없도록 천으로 덮으라고 할 수 있을까? 말은 쉽지만 물리 실험을 구성하는 것은 야바위 도박과는 별개로 완전히 다른 문제가 된다. 


   실제 세계로 돌아와서, 물리학자 데이비드 보옴(David Bohm)은 위의 EPR문제를 좀 더 쉬운 다른 질문으로 변경해 보았다. 

   [입자는 임의의 축에 대하여 명확한 스핀값을 가지고 있는가?] 

   보옴은 입자의 위치와 속도에 대한 측정 문제를 입자의 스핀값으로 변경하여도 같은 결과를 도출한다고 증명하였다. 이것은 입자의 위치와 속도같은, 측정하기 까다로운 문제를 스핀값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같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므로 실험을 좀 더 단순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 보옴은 실제 실험을 제안하지는 못하였지만, 관측하고자 하는 특성을 조금 바꾸어도 그 의도는 입자와 속도의 위치에 초점을 맞추었던 EPR 역설의 내용과 동일한 것이었음을 증명하였다. 보옴의 제안 덕분에 우리는 위치와 속도를 스핀으로 바꿔 불러도 동일한 양자역학적 질문에 답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전자의 스핀과 양자적 얽힘 현상에 대한 설명 / 아쉽게도 한글자막 없음>

 

 

3. 스핀과 확률, 우리는 실체 자체를 실험할 수 있는가?  

    아일랜드 물리학자인 존 벨(John Stewart Bell)은 위의 물리학자 벨이 증명한 문제, 즉 스핀축만을 측정하여 얽힌 입자간의 상호작용 역설(EPR 역설)을 실험실에서도 증명 가능함을 논문으로 발표하였다. 이것은 위에서  '파란 색 손을 가진 야바위 사기꾼 우주'의 예를 들자면, 우주와의 도박에서 천으로 가리고 우주와 도박이 가능하도록 그 실험적 이론의 기반을 만든 셈이다.

 

    이 논문이 대단한 것은, 우리가 측정이라는 행위(도박에서 판돈을 미리 거는 행위)를 하기 이전에 그것을 예측 및 그 확률값을 비교하여 이것, 즉 얽힌 입자의 거리를 초월한 상호작용이 실체인지(즉, 이 우주가 도박판에서 항상 이기는 이유가 우주가 사기꾼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우주 자체가 원래 그러한지)를 실험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그 기반을 제공하였다는 점이다. 

 

<벨의 부등식 해설 중 / 첫 번째 유튜브 영상에서 발췌>

 

   벨은 자신의 부등식을 통해 얽힌 입자, 즉 두 전자의 스핀값이 확률적으로 일정 수치(50%)를 넘기게되면, 아인슈타인이 주장했던 것처럼, 어떤 정보가 입자 안에 이미 존재한다고 보았다.(부등식과 관련한 내용은 처음 링크한 유튜브 영상에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얽힌 입자의 그 순간적인 정보전달 같은 현상, 즉 양자역학이 잘 설명하지 못하는 스푸키 액션은 하나의 환상이며,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정보가 이미 입자에 내재되어 있다고 보았다. 

   

 

    실험의 결과는 EPR 역설은 틀린 이론으로 판명되었다. 즉 얽힌 입자간의 상호작용은 입자가 탄생할 때 우리가 모르는 어떤 숨은 변수가 있어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두 입자간의 상호작용은 시간과 거리에 상관 없이 그 즉시 이루어지는 현상이었다. 양자역학이 옳았다 - 우주는 도박의 사기꾼이 아니었다. 야바위 게임에서 우주가 먼저 바닥에 구슬을 깔아놓아도, 어떠한 방식의 규칙으로 바꾸더라도 우리는 늘 잘못된 배팅밖에는 할 수 없었다. 이것이 우주의 본질이었다. 우주는 월화수요일에는 파동으로, 목금토요일에는 입자로서 움직이는 것이 분명했다(일요일은 우주도 쉽니다). 우리는 확률이라는 근사치를 통해서만 그것들의 물리량을 기술할 수 밖에 없으며, 이것은 우리뿐만 아니라 우주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초월 지성체들에도 동일한 한계값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의미했다. 

 


    빛의 속도를 넘어 작용하는 어떤 힘(?)의 존재가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으니, 그렇다면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은 파기되어야 마땅한가? 그렇지 않다. 특수 상대성 이론은 빛을 포함한, 이 우주의 정보 전달 속도가 한계를 가진다고 정의한다. 비록 얽힌 입자 사이의 어떤 힘(?)이 빛의 속도를 넘어 전달된다고해서 이것이 상대성이론을 부정하는 것은 아닌데, 왜냐하면 얽힌 입자의 스핀값은 측정할 때마다 무작위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 측정시 우리는 스핀값을 임의로 선택할 수 없다. 0과 1의 값은 그때그때의 우주의 기분에따라 임의로 결정되므로 우리는 이것을 이용하여 정보를 전달할 수 없다. (이래서 양자역학적 얽힌 입자를 사용하여 범우주간 통신기를 사용하는 SF소설은 모두 망한것 같다) 그래서 양자역학이 옳다고 하더라도 특수상대성 이론을 폐기해야 할 필요는 없다.

 


   결국 양자역학은 옳은 이론으로 판명났다. 우리는 우주가 확률게임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는 없으며 이것을 통해서만 그 실체에 다가갈 수 있다. 게다가 물질이라는 것이 파동으로 존재하면서도 관찰이라는, 모호하기만한 작용을 통하여 실체를 가진다는 논리를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고 경험하고 있는 세상, 이 우주적 실체가 일종의 허상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한 사상이다 - 실제 양자역학 이론을 자신의 종교사상에 억지로 끼워넣어 마치 합리적인듯 꾸미는 종교단체가 있기도 했다. 

   과학이 종교와 다른 점이 있다면, 과학은 틀릴 수 있다는 전제를 가지고 출발한다는 것이다. 틀린 것으로 판명된 이론이 오히려 과학에는 도움이 되는 경우도 많은데, 이번과 같은 EPR역설이 가장 큰 예이다. 비록 잘못된 이론으로 판명이 되었지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의 원리를 이해하는데 큰 한 걸음을 띄게 만들었으며, 또한 재미난 상상을 펼칠 수 있는 좋은 재료가 되어 주기 때문이다. 


   양자역학에는 이처럼 <광속을 초월하는듯이 보이는 얽힌 입자들 간의 작용>에 대한 내용 뿐만 아니라, <미래의 사건이 과거의 사건을 바꾸는 기이한 현상>도 존재한다. 다음 주제는 이 "양자 지우개"에 대한 글을 쓰려고 한다는 말과 함께 오늘의 잡담을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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