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캡 염색
오래전부터 구하고 싶었던 키캡을 인터넷을 통해서 싼 가격에 혹해서 샀다. 승화인쇄에 체리 프로파일(낮은 높이)을 가진 두꺼운 PBT 키캡이 흔치않았던 예전에는 이베이를 통해서 오래된 키보드를 비싼 값에 해외 배송해야 만질 수 있었기 때문에, 기회가 생기자 얼른 샀다.
그런데 도착한 제품을 본 순간, 역시 싼건 이유가 있는 법. 키캡 색이 도무지 맘에 들지 않는다. 하나는 칙칙한 회색에 나머지 하나는 붉은 기가 도는 옅은 커피색으로, 진하고 멋지게 승화 기법으로 인쇄된 글쇠와는 다르게 색이 맘에 들지 않았다.
<대충 이렇게 우중중한 색>
이걸 어떻게 처분할 수도 없고....... 고민하다가 나도 염색이라는 것을 함 해볼까 하고, 잘못되면 버리는 샘 치지 뭐, 이런 생각으로 도전해 보기로 했다.
아니, 다시 말해서 서부시대의 유명한 총잡이들이 그 시대를 대표하는 총 하나쯤은 갖고 있었던 것과 같이, 정보화 사회라고 일컬어지는 현 시대에서 책상 구석에 하나쯤은 비치되어 있는 컴퓨터에 연결된 키보드는 우리시대의 새로운 무기(Gun)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비정한 정글과 같은 이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자신만의 커스텀 키보드(Pistol)쯤은 하나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색이 좀 이상하더라도 뭐 어떤가? 그래도 나는 세상에서 단 하나 뿐인 제품을 가지고 있는데.......
이런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갖고 키캡 염색에 도전해 보았다.
1. 준비물
1) 냄비 큰 것 – 1개
2) 유리병 – 색깔별로 1개씩 (x2)
3) 다이론 염료 – 색깔별로 1개씩 (x2)
4) 플라스틱 숟가락 – 색깔별로 1개씩 (x2)
5) 종이컵 – 다수 (x5)
6) 소금 – 색깔별로 한 숟가락 (x2)
7) 밝은 색 계열의 PBT 키캡 새것 (x다수)
괄호안의 숫자는 본인이 염색에 사용한 부품 개수로 붉은 색(스칼렛)과 파란 색(블루) 두 가지 색만 사용하였다.
<염색할 키캡은 퐁퐁으로 잘 씻어서 종이컵에 따로 넣어 분류해 두었다 - 나중에 헷갈리지 않도록>
2. 재료가 준비되었으면,
유리병에 종이컵 두 분량의 따뜻한 물과 한 숟가락 분량의 소금을 넣고 소금이 완전히 녹을 때 까지 잘 저어준 후, 다이론 염료를 전부 넣고 염료가 완전히 녹을 때 까지 잘 저어준다.
건더기 없이 재료가 완전히 녹았다면 물을 채운 큰 솥에 유리병을 넣고 끓인다.
<사진과 같이 유리병을 중탕 식으로 데운다>
3. 솥 안의 물이 끓기 시작하면 미리 분류한 키캡을 넣고 플라스틱 수저를 사용하여 살짝 잘 저어준다. 계속 저을 필요는 없고 약 1분에 한 번씩 염료가 뭉쳐있지 않은지 확인하면서 하면 되며, 염색 시간은 약 15분 ~ 20분 정도.
(주의) 열에 의해 유리병이 깨질 수도 있으니 조심하세요.
4. 중간 중간 염색 상태를 반드시 확인하고 원하는 색으로 되었다면 찬물에 씻고 그늘에 하루 정도 잘 말리면 완료!
<하루 정도 말려야 염료가 번지지 않는다.>
<염색 후 키캡의 상태비교. 맨 위쪽이 원래 색이고 아래쪽 두 개가 염색된 상태. 모두 20분 정도 삶았다.>
<키캡 꼽기 전. 이왕 꺼낸 김에 스테빌라이저 쪽 윤활작업도 진행>
<두 대 모두 염색 완료!>
염색시 주의할 점
1. 키캡은 반드시 PBT 재질로 만든 것으로, 표면이 맨들맨들한 것으로 할 것.
일반적인 키보드에 달려있는 얇은 ABS재질 키캡은 뜨거운 물에 녹고 염색이 잘 되지 않는다. 또한 울퉁불퉁한 표면은 꺼낼 때 숟가락 등으로 문질러져서 얼룩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2. 사용하던 것이나 상처가 난 것은 결과가 썩 좋지 못하므로 가급적 새 키캡으로 한다.
<키캡을 빼다가 난 상처. 염색을 하고나면 이런 부분이 더 도드라져 보인다.>
<오른쪽 쉬프트 쪽에 얼룩이 생겼다. 거의 새것과 같은 상태였는데 조금이라도 사용하던 것은 사진과 같이 얼룩이 남는다.>
3. 염색이 완료된 키캡을 찬물에 씻을 때에는 손으로 문대지 않도록 조심하고 바로 키보드에 꼽지 말고 하루정도는 말려야 염료가 번지지 않는다.
4. 염색 시간은 약 20분 정도가 적당한 듯.
가열시간이 오래될수록 색이 진하게 나오므로 파스텔 톤을 좋아한다면 너무 오래 익히지 말자.
<위에서부터 약 15분, 20분 가열한 키캡의 색 비교용. 맨 아래는 붉은 색 염색 후 파란 색에 5분간 더 목욕시킨 후의 Caps Lock의 색>
5. 어두운 색은 밝은 색으로 염색되지 않는다.
검정색 키캡은 어떠한 방법을 써도 염색이 되지 않으므로 흰색 계통의 키캡을 사용해야 한다.
.......
염색이 완료되고 나니, 뭔가 어울리는 장식물이 생각났다.
<하얀 악마 같은 글이 자동으로 써질 듯한 카리스마를 뿜어내고 있다.>
<세 배는 빠르게 작업을 끝낼 수 있을 것 같은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파란 녀석 단독 샷으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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