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단장 죽이기 무라카미 하루키

 

작년 이맘때쯤에 구매한 책인데 지금에서야 다 읽었다. 첫 권의 절반 정도만 보다 말았었는데, 온라인 스트리밍 같은 유혹적인 매체 때문에 책에 손이 잘 안 가는 이유도 있겠지만, 다 읽고 나니 그때 읽다 만 이유가 생각난다. 등장인물들이 작가의 예전 작품들에서 본 듯한 기시감이 들어서. - 예를 들어 주인공 [태엽 감는 새]의 주인공 오카다와 비슷하고, 언덕 위의 고급 주택에 사는 멘시키[댄스 댄스 댄스]의 그 잘생긴 친구(이름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 다른 집 꼬마 여자 아이 마리에유키, 작중에 비현실적인 인물로 나오는 난장이 XXXX는 부활한 양 사나이처럼 보인다.

초반 이야기의 흡인력도 이전 작 보다는 좀 떨어지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1권을 다 읽고 나면 바로 2권으로 손이 갈 정도로 풀어내는, 작가 특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힘과 유혹적인 향을 풍기는 문장은 여전하다. 다만 이번 작은 꼭 사서 읽어보라고 권할 정도의 신선함은 덜하지 않는가라는 생각.


 

이 책은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드는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 작가의 다른 작품 [태엽 감는 새]와 그 구도는 비슷하지만 작가가 풀어 나가는 이야기 자체는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이혼 절차를 밝고 있는 30대 남자 주인공이 친구의 집(유명한 화가가 살던 집)을 빌려서 살게 되고, 그곳에 있는 한 개의 그림에 엮인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겪는 비현실적인 사건과 주변인들과의 관계를 거치면서, 결과적으로는 세상과의 관계에 대해 좀 더 성숙해지는 주인공을 그리고 있다.

과거의 비슷한 작품인 [태엽 감는 새]가 겉으로는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만든 안전한 성(), 가족이 비현실적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는 외부의 힘에 의해 찢겨나가고 그에 저항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로 보이지만 사실 그러한 불합리성이 아주 오래전 사람의 이기심과 욕망으로 가득 찬 전쟁과 같은 잔혹함이 우물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면, 이번 소설은 이전작의 그런 싸워 나가는 한 인간의 이야기쪽은 작은 편이다.

 


개인적으로 소설은 보통 한 번만 읽고 마는 편인데, 이 작가가 쓴 소설들은 두 번 이상 보게 된다. 처음 읽을 때에는 줄어드는 페이지를 아쉬워하며 빠르게 읽어간다면, 두 번째로 볼 땐 이야기의 흐름에 매몰되어 보이지 않던 디테일과 (바삭하지만 기름기는 쫙 빠진 왕새우 튀김 같은) 멋진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이렇게 다시 읽으면 등장인물들이 더 생생해지고, 숨어 있는 작은 이야기가 보이기라도 하면 (다시 읽는) 소설이 더 재미있어 진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가가 예전에 쓴 소설, [댄스 댄스 댄스]에 대해 한 줄 써야겠다.

 

어쨌든 춤을 추는 거야. 그것도 남보다 멋지게. 제대로 스텝을 밟아서

 

지금도 나는 작가의 작품 [댄스...]가 이 한 줄을 쓰기 위해, 이 한 줄의 문장에 당위성을 부여하기 위해 그 긴 장편소설을 썼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아슬아슬하게 스텝을 밟지만 제대로 된 춤을 추는 것.’

책을 읽고 나서, 특히 소설책을 통해 일종의 위로를 받았다고 느끼는 경우는 극히 드문데, 이 책 [댄스...]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면서는 약간 눈시울이 붉어졌었다. 읽으면서 그만큼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많이 했었던 것 같다 - 결국 좋은 소설이라는 이야기.


잡담이 또 길어진 듯

우리 모두는 스윙 댄스를 멋지게 추는 왕과 같은 존재라는 의미를 담아, Dire StraitsSultans Of Swing을 들으면서 오늘의 잡담을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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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도서실에서 빌린 책을 잃어버렸다고, 막내가 울상이다. 도서실에 분명 반납을 했는데 아마도 반납 기록이 빠지고 책은 어디론가 사라진 모양이다. 새 책을 사서 도서관에 주자고 했더니 빌린 책이 절판되어 온라인 서점에서는 더 이상 구할 수 없다고.

학교 도서실 반납 테이블 위에 분명히 올려두고 왔다면서, 절판소식을 듣자 발을 동동 구른다. - 잃어버린 책을 다시 구할 수 없을지도 몰라 - 절판이라, 걱정 될 만 하다.

 

이젠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디서 찾았는지 중고 서점에서 그 책을 팔고 있다고, 밝은 얼굴로 핸드폰으로 그 매장을 보여주면서 이야기 한다. 그런데 문제는 온라인으로는 구매가 불가능. 방문 판매만 한다고. 토요일에 같이 가서 사기로 약속을 했다가....... 잊었다, 우리 두 사람 다.

 

결국, 점심시간에 맞춰 그 서점, 알라딘 중고서점 대학로에 혼자 서둘러 갔다.

 


의례히 중고서점이라고 하면 노란색으로 물든 책들이 먼지 냄새를 풀풀 풍기면서 한켠에 잔뜩 쌓여있는 풍경 - 동대문 헌책방만 생각나는데, 여긴 예전의 동네 책방보다도 시설이 잘 되어 있어서 놀랐다. 지하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공간을 비워도 가계세가 나오는가? 중고서점인데, 흠흠.

어쨌든, 핸드폰으로 원하는 책이 있는 위치를 미리 찾아놓은 덕분에 찾던 책을 바로 발견할 수 있었다. 조금 시간이 남아서 주변을 둘러봤는데, 평일이라서 그런지 내부의 손님은 별로 없고 한산한 편.

이왕 온 김에 내가 읽을거리도 좀 찾아보자. 매장을 빠른 걸음으로 한 바퀴 돌다 보니 역시 눈에 띄는 책은 바로 최저가. 2-3천원으로 가격이 매겨진 물론 그만큼 세월의 냄새도 좀 나는, 그런 책들만 자꾸 눈에 들어온다.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책 한 권 발견 - 존 그리셤(John Grisham)의 소설, ‘파트너 2.’ 주변을 뒤지니 ‘1도 나온다. 게다가 이젠 절판된 문학수첩에서 출판된 고백도 발견! 가격도 적당하고, 얼른 집어서 계산대에 올려두었다. 이만 원이 넘으면 내년 달력을 이천 원에 드려요 라는 점원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젓고 서둘러 계산.

 


보통은 소설은 한 번 읽고 마는 편인데, 어떤 작가들이 쓴 소설은 다시 읽고 싶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 소설가가 쓴 책도 그런 쪽.

아마도 소설 내에서 그가 사용하는 빠른 사건 전개와 독특한 인물 표현 방식 때문인 것 같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화가 나 있다는 것을 평범한 소설에서는 그냥 얼굴이 붉어진다는 등의 단편적이고 짧은 표현으로 지나간다면, 이 작가는 그 사람의 행동을 기술하면서 읽는 사람에게 그가 화가 나 있다는 느낌을 받도록 한다는 것. 쉽게 이야기하자면, 문장이 좋다. 그래서 이미 줄거리를 알고 있어도 다시 읽어보면 또 다른 새로운 맛이 느껴진다는 것. (그래서 이 사람의 책은 일인칭 시점에서 쓴 글들이 재미있다.)

 

어쨌든, 혹시라도 이곳을 방문하실 분들을 위해 책 방 내부 지도를 아래에 첨부

50m내에 CGV영화관이 있어서(지하철, 혹은 버스에서 내려서, 영화관 쪽으로 죽 올라가서, 영화관 지나고 약 50m 근처에 간판이 보임) 영화 예약해 놓고 시간이 남는 분들은 이곳을 한 번 방문해 보는 것도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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