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우제(三虞祭)를 마치고 집으로 왔다.

 

짧은 묵념과 기도, 그리고 약간 지루한 추도사가 낭독되는 오전의 그 맑은 하늘 아래에서 나는, 줄곧 가족과 함께 웃고 있는 그의 사진만 쳐다보았다.

 

꽤 긴 시간동안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와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사워를 한 후, 의자에 기대어 앉아 눈을 감고 생전의 그의 모습을 그려 본다. 여유 있으면서도 너털하는, 단단한 미소로 화답하는 그의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런 상상만으로도 내 입 가장자리가 살짝 올라간다.

생각해 보면 긴장하여 굳어 있는 그의 표정을 본 적이 나는, 거의 없다. 아마도 스스로의 힘으로는 답을 찾기 어려운 문제들 해결하기에 다소 귀찮은 이런저런 고민거리를 가져가는 쪽은 언제나 나였고, 그는 마치 마법사처럼, 늘 옳은 답을 구해 주는 훌륭한 형과 같은 역할을 줄곧 해 왔기 때문 이였으리라.

...

남겨진 가족을 생각하면 그가 몹시 밉다. 그러나 그런 미움의 감정은, 그 또한 침묵의 소리를 갖고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이기적이고 게으른 나 자신을 인정치 않으려는 본능적인 몸부림에 불과할 뿐임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잠깐이나마 그가 생각나면 마음이 아프다.

 

 


 

때가 되면, 그때면,

탁자 가운데에는 커다란 크리스털 재떨이를,

큰 얼음 두 개 넣은 고급 양주를 서로 홀짝이면서,

파란 담배연기 가득한 쪽방에 앉아서 재미난 농담을 서로에게 던지고,

미처 남기지 못한 이야기와 듣지 못한 새로운 이야기들을 서로에게 풀어낼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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