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런던 브리지 위 어둑한 가스등 불빛아래에 검은 그림자 세 개가 바람에 흔들린다. 짙은 안개와 흩날리는 눈발이 다리위의 그림자에 무게를 더하듯이 차곡차곡 쌓여가지만 두꺼운 코드와 모자를 푹 눌러 쓴 세 남자는 차가운 겨울바람에 미동도 없이 어두운 다리 위에 꼿꼿이 서 있기만 했다.

양손에 가죽장갑을 끼고 작은 여행용 가방을 왼 손에 쥐고 있던 남자가 이윽고 자기 앞 길을 가로막고 있는 두 남자를 향해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 재미있군.”

고운 양털로 만들어진 그의 코트 소매에 간신히 매달려 있던 털실 한 가닥이 차가운 겨울바람에 살랑거리자 그에 박자를 맞추듯 가스등 불빛이 깜박거리면서 세 남자의 그림자를 좌우로 흔들었다.

가방을 든 남자의 맞은편에 있는 두 남자 중에 키가 작은 쪽이 먼저 입을 열었다.

홀트씨, 우리는 당신을 돕기 위해서 여기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당신들이…….” 홀트라고 불린 남자가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팔짱을 끼면서 말을 했다.

내가 여기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 이거지? , 정말 재미있어.”

두 남자는 말없이 그 남자를 계속 보고만 있다.

그렇다면, 당신들도 여행자?”

작은 키의 남자가 아니라는 뜻으로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럼, 어떻게 내가 여기로 올 줄 알고 있었지? 어떻게 안거야?”

선생님. 지금 하려는 일을 그만둔다면 말해 드릴 수 있어요. 이건 옳지 않아요.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중절모를 쓴 키가 큰 남자가 그를 설득하려는 듯 오른손을 내밀었지만 홀트가 그의 손을 매섭게 처냈다.

, 내가 하려고 하는 일이라고?” 홀트가 당황한 듯 그를 쳐다보면서 좌우로 고개를 저었다.

잠깐만. 그러니까 당신들은 내가 여기에 온 이유도 알고 있다고?”

키 작은 쪽이 움직이지 않고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런데, 어떻게 알고 있냐고. 내가 올 줄 어떻게 알았냐고!” 홀트가 화가 난 듯 주먹을 쥔 손을 두 사람을 향해 휘저으면서 말을 이었다.

이봐, 난 지쳤어. 이 일에 신물이 난다고. 당신들은 알고 있지? - 여기까지 올 정도라면 알고 있을 거야, 내가 왜 이러는지. 난 여기까지야. 오늘 여기서 이 모든 것을 끝낼 거야.”

잠깐만요, 선생님. 잠시만 제 말을 들어 주세요.” 큰 키의 남자가 한 발짝 다가서서 그의 손을 잡으려고 하자 홀트가 뒤로 물러섰다.

홀트씨. 당신은 달라요. 다른 사람들은 모두 부모 쪽이었지만 당신은……. 이봐요. 우린 기회를 주려고 하는 겁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생각? 내가 아무런 고민도 없이 여기까지 왔다고 보는 거야? 시간은 충분했어, 그놈의 망할 시간,,,,,,. 그 시간을 여기서 끝내겠다고. 여기에 올 정도면 내가 누군지 알겠지? 그럼 이해할 수 있을 거야, 내가 얼마나.......”

 

홀트가 위협적인 몸짓으로 앞에 서 있는 남자들을 양 손으로 밀어내고 자신의 왼쪽 손목에 달려 있는 단추를 문질렀다. 그를 덮고 있던 코트가 조각으로 바로 찢겨져 나가면서 몸 안을 감싸고 있는 얇은 옷이 드러났다. 관절을 제외한 온 몸에서 형광색 불빛이 얇은 천 사이에서 새어나오듯 반짝거리고 그곳에서 간신히 보일 정도의 작은 실이 나타났다. 몇 초도 안 되는 시간에 실이 길어지더니 칼날처럼 둥근 춤을 추면서 윙윙거리는 소리를 냈다.

이 방법 밖에 없어. 죽기 싫으면 물러나.” 홀트가 위협을 하면서 한 발짝씩 두 사람이 서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그가 한걸음 움직일 때마다 날카로운 실이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위협적인 바람소리를 냈지만 키 작은 사람은 오히려 그가 서 있는 방형으로 한 발 앞으로 뻗었다. 그 모습을 본 홀트가 잠시 주춤하다가 찡그린 얼굴로 그가 있는 방향으로 오른팔을 들였다. 홀트의 팔에서 튀어나온 실들이 키작은 사람의 코트를 스치듯 지나가고, 잘려나간 작은 천 조각들이 발 아래로 떨어졌지만 그는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채찍처럼 휘둘러대는 실 사이로 홀트의 오른팔을 낚아채서 그의 팔에 아직도 달려있는 양복 단추(Cuffs)를 손가락으로 눌렀다.

그와 동시에 공기를 가르던 실들이 모두 멈추면서 힘없이 아래로 쳐졌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듯 멍한 얼굴을 하고 있는 홀트의 오른팔에 달린 단추를 그가 다시 비틀어 떼어내자 홀트의 몸이 조금씩 작아지기 시작했다.

자신의 몸이 점점 줄어들어가고 있는 모습을 느낀 홀트가 긴 비명을 질렀다. 그렇지만 그의 울부짖는 절규소리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듯 그의 몸은 계속 줄어들어가고 점차 작아지는 목소리와 함께 몸 또한 작은 점이되어 이윽고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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