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몇 발짝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키 큰 남자가 놀란 표정으로, 오른 손에 단추를 든 채 자기 앞에 서있는 작은 남자 쪽으로 다가갔다.

마치 마법처럼 사라졌어. 리암. 그는 어디에 있죠?”

키 작은 사내가 굳은 몸을 곧게 펴듯이 크게 몸을 뒤로 한 번 젖힌 후 그를 바라보면서 말을 했다.

아직 저기 그 자리에 있네, 자신이 소비한 여분의 시간만큼 몸이 극도로 작아졌지만 눈에 보이지만 않을 뿐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야.”

그게 가능해요? 그리고 눈에 안 보일정도로 작아졌다면 오히려 해를 끼칠 가능성이 더 늘어난 것 아닌가요?”

조나스, 그는 이제 아무런 해도 주지 못해. 아주 작고 반복적인 공간속에 갇혀있거든.” 리암이 키 큰 남자를 한 번 처다 보고선 말을 계속했다.

이해하기 쉽게 말하자면, 사방이 거울로 덮인 작은 집에 홀로 갇혀 있는 것과 같은 상태지. 집에서 탈출하기 위해 문을 열면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집 안 풍경이 보인다네. 창문을 열면 창문을 열고 있는 자기 뒤통수가 보이는, 여러 장의 거울 속에 자신이 비춰진 것과 같이 작고 반복적인 공간, 그곳에 그가 있는 것이지 홀트씨는 이제 거기서 빠져 나올 수 없어.”

조나스가 침을 꼴깍 삼키면서 크고 둥그런 눈을 반짝이면서 그를 쳐다보자 리암이 빙긋 웃으면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거기에 영원히 갇힌 거야. 그가 가진 무한의 시간이 지나도 그자는 이제 밖으로 나올 수 없어.”

내리는 눈발이 짙어지고 차가운 바람이 작은 소용돌이가 되어 두 사람을 스치고 지나가자 리암이 반쯤 잘려나간 자신의 코트 옷깃을 손으로 당기면서 조나스에게 이제 그만 움직이자는 눈빛을 보냈다.

조나스가 리암의 곁에 바짝 붙어 걸으면서 다시 그에게 질문을 했다.

그런데, 왜 시간 여행자들은 늘 자기 자신의 존재를 지우려고 하죠?”

 

리암이 우울한 얼굴로 브리지 아래를 보면서 걸어갔다.

그들은 모든 것을 보았어. 역사적인 국가의 생성과 종말에서 최초의 인간들이 탄생하는 순간. 지구의 탄생과 파괴, 그리고 생명의 시작과 끝. 심지어 시간이 시작된 순간과 그 끝이 어떻게 되는지도 알아.”

그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한 번 쳐다보고 말을 이었다.

생각해 보게. 홀트는 이 우주의 모든 것을 반복적으로 보고 느끼고 경험했네. 그런 일들을 직접 겪게 되면 아마도, 깨달음 같은 게 오는 것 아닐까. 모든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이제 내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단 한 가지만 빼고.”

마지막으로 남은 호기심 하나. 만일 내가 태어나지 않는다면, 시간 여행자가 되기 전인 자신이 사라진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

그래서 그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자신의 존재를 없애러 오는군요?” 조나스가 추운 듯 연신 손에 입김을 불어 넣고 양 손을 비비면서 말을 했다.

그래, 자기가 태어나지 못하도록 부모의 결혼을 방해하거나 아직 어린 자기 자신을 죽이러 오는 거야. 그렇게 하면 시간 여행자의 역설이 어떻게 해결될 지 궁금해 하면서. 그런데, 홀트 씨는 호기심 때문에 그런 게 아닌 것 같아. 아마도 말이야, 그 사람은......”

다리 위로 계속 쌓여가는 눈을 밟고 걸어가면서 리암이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어쨌든, 그런 시도는 용납할 수 없네. 시간 여행을 하는 사람이 과거로 돌아가 자신의 존재를 역사에서 지우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야.”

 

만일 누군가가 성공한다면 어떻게 되나요?”

리암이 가던 걸음을 멈추고 조나스를 올려다보았다.

이 세상이 사라져. 우주의 모든 존재가, 역사가 아예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일순간에 모두 지워지는 거야.”

그래서 오늘처럼 눈이 섞인 찬바람이 몰아치는 날에도 우리가 일을 하는 거죠? 여행자가 그런 일을 하지 못하도록.”

잘 아는군. 이제 좀 적응이 되나? 그건 그렇고, 시계 확인은 했나, 조나스?”

리암의 말에 조나스가 당황한 모습으로 주머니에서 낡은 회중시계를 꺼냈다.

. . 32520, 시계가 멈춘 시간이에요, 선배.”

잊기 전에 기록해 두게, 지금 당장.”

.” 짧은 대답을 한 후 조나스는 자신의 두꺼운 책을 펼쳐 방금 자신이 말한 시간과 일어난 사건을 그 책의 한 여백에 조심스럽게 기록했다.

“182714, 새벽 32520. 런던 브리지 다리 위 세 번째 가스등에서 리암니슨이 니콜라스 홀트씨의 오른쪽 소매 단추를 눌러 칼날을 멈추게 함. 이후 그것을 돌려 떼어냄. 홀트씨는 점차 작어저서 결국 소멸.”

조나스가 자신이 쓴 내용을 확인하라는 듯 여백에 쓴 글을 리암에게 보여주자 리암은 그가 쓴 내용은 확인하지 않고 조나스와 똑같이 생긴 자신의 책을 꺼내어 한 페이지를 펼쳐 그에게 내밀었다.

이것 보게. 자네가 방금 쓴 내용이 그대로 들어 있지? 정자로 글씨체도 괜찮군, 잘 썼네.”

, 이럴 수가. 정말 그렇군요. 아까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았었는데. 정말 제가 쓴 그대로 똑같이 써져 있어요.”

그래, 그럼 이제 이것도 이해가 가지? 두 책은 원래 하나다. 다만 존재하던 시간만 다를 뿐이라는 것.”

잘 모르겠다는 듯이 조나스가 멋쩍은 미소로 머리를 긁적거리자 리암이 작게 한 숨을 쉬었다.

전에도 이야기 했듯이 이 책은 태초의 여행자가 만들었다고 전해지네. 시간의 역설이 발생하는 최악의 사태는 막아야하기에 시간여행자들이 원형 고리로 만들어버린 자신의 시간을 깨뜨리려고 하는 위치와 시간이 기록되도록 만들었지. 같은 모양의 책이 두 권인 것 같지만 사실 이 책은 한 권만 존재해. 다만 기록하는 자와 보는 자가 다를 뿐이야. 지금은 나, 리암이 읽는 자. , 조나스는 쓰는 자. 내가 미리 사건을 보고 준비하고, 불량한 여행자에 대한 처리가 완료되면 네가 기록하는 거야.”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조나스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데, 분명히 이렇게.......” 그가 자신의 책과 리암이 왼손에 들고 있는 책을 겹쳐보면서 그에게 항의하는 투로 말을 했다.

분명히 이렇게 두 권이 있는데 어떻게 이게 하나라고 이야기 하는 거죠?”

분명히 한 권의 책일세. 존재하던 시간대가 다를 뿐이야. 처음엔 받아들이기 힘들긴 하지. 하지만 방금 보았지? 자네가 오늘 사건을 기록하자마자 여기에......” 리암이 그가 가지고 있는 책을 다시 조나스에게 보여주었다.

자네가 쓴 내용이 나오지 않았나? 네가 쓰면 나는 보고, 내가 본 대로 행동하면 다시 네가 쓰는 거야.”

바닥에 쌓인 눈이 길고 날카로운 바람에 쓸려 하늘로 올라가면서 그의 얼굴을 스치며 지나가자 조나스가 얼굴을 찌푸렸다.

회전하는 시간의 고리에 엮인 이상한 물건이기는 하지만 그 존재가 불가능하거나 금지된 것은 아니지.”

 

혼란스럽다는 듯 계속 인상을 쓰고 있는 그를 처다 보던 리암이 다시 앞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눈발과 바람이 점점 매서워지는군. 이제 좀 따뜻한 곳으로 가지 않겠나? 여기서 계속 서서 이야기만 하다가는 몸이 완전히 얼어붙겠네.”

조나스가 자신의 책을 얼른 품에 넣고 리암의 왼쪽으로 자리를 옮기고 나서 두 사람은 다리 위를 다시 걷기 시작했다.

 

전에 하다 만 이야기 계속 해 주세요.” 조나스가 리암의 얼굴을 보고 걸어가면서 다시 이야기를 재촉했다.

, 그 오 분 전 과거로 반복해서 이동해서 자신을 계속 복제하던 시간여행자 말인가?”

조나스가 바로 그거라는 의미로 입가에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분신이 계속 나타나자 어떻게 되었는지 아나? 서 있을 공간조차 없어질 정도로 수가 늘어나자 자기들 끼리 싸움이 붙었지. 모두가 내가 진짜 본체라고 주장하면서 말이야. 그러다가.........”

 

브리지 위에 걸려 있는 마지막 가스등이 모자를 푹 눌러 쓴 두 사람의 그림자를 다리 끝까지 길게 늘이려는 듯이 한 점으로 밝게 타올랐지만, 뿌득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쌓인 눈길을 바쁘게 걸어가는 그 두 사람은 가스등 따위는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듯 작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계속 걸어가기만 했다.

두 사람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발자국들이 계속해서 떨어져 내리는 눈과 바람에 점차 지워지고 해가 지평선에서 살짝 고개를 내밀 때쯤,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다리위에는 쌓여있는 눈 이외에 그 세 사람이 그곳에 있었다는 흔적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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