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복을 입고 거울에 서 본다.

 

  예전에는 정장을 입고 서 있으면 잘생긴 젊은 변호사처럼 보인다는 이야기를 그것도 젊은 처자에게서 들은 적도 있었는데, 이제는 알통처럼 배만 불룩한, 반쯤 머리가 벗겨지고 눈주름이 가득한 낮선 아저씨만 거울에 비친다.

 

  생각난다. 처음 정장을 입어 보았던 날. 입대 전에 두 달간 일했던 어느 학원. 아버지가 입던 낡은 양복에 약간 노랗게 익은 셔츠와 나이에 맞지 않는 알록달록한 넥타이를 목에 걸고 덥고 습한 지하철을 긴 시간 타고 가야 하던 그 작은 학원. 두 달간의 강의를 끝내고 이제 군대 가야 한다고 했던 그 강의 마지막 날에 받은 장미꽃도 생각나고... 그때는 장미꽃이 주는 의미가 어떤 것인지 몰랐었지... 그렇게 예전에는 양복을 입으면 좋은 일이 많았다 - 아니 좋은 일을 기념하기 위해 정장을 빼 입었었다.

 

  이제는 고인을 기리기 위한 장소에 방문하기 위해 정장을 찾는 일이 오늘처럼 - 더 잦다. 결혼식장보다는 장례식장에 가는 횟수가 많아지면 늙어가고 있는 것이라고 하더니, 이제 이렇게 옷 한 벌을 통해 나이를 느끼나 보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보다는 훨씬 더 어렸을 때, 죽음에 대한 고민과 생각을 더 많이 했던 것 같다. 삶과 죽음. 지금 돌아보면 그저 그런 뻔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때 읽었던 몇몇 내용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그래서 슬퍼할 유가족들을 위해, 아니 무엇보다 오늘 같은 날, 나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서 그 내용을 여기 적어본다.

 


아난다여,

이제 나는 늙어서 노후하고

긴 세월을 보내고 노쇠하여

 

내 나이가 여든이 되었다.

 

마치,

낡은 수레가 가죽 끈에 묶여서 겨우 움직이는 것처럼

나의 몸도 가죽 끈에 묶여서 겨우 살아간다고 여겨진다.

 

그만 하여라, 아난다여

슬퍼하지 말라, 탄식하지 말라, 아난다여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모든 것과는

헤어지기 마련이고

없어지기 마련이고

달라지기 마련이라고

그처럼 말하지 않았던가.

 

아난다여,

태어났고 존재했고 형성된 것은 모두 부서지기 마련인 법이거늘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것을 두고 '절대로 부서지지 마라'고 한다면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난다여,

그런데 아마 그대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제 스승은 계시지 않는다. 스승의 가르침은 끝나 버렸다."

 

아난다여,

내가 가고 난 후에는

내가 그대들에게 가르치고 천명한 법과 율이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

 

아난다여,

그대들은 자신을 등불(섬)로 삼고

자신을 의지하여 머물고 남을 의지하여 머물지 말라

진리를 등불삼고 진리에 의지하여 머물고 다른 것에 의지하여 머물지 말라

 

내가 설명한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괴로움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원인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방법이다.

 

참으로 이제 그대들에게 당부하노니

형성된 것은 소멸하기 마련인 법이다.

게으르지 말고 해야 할 바를 모두 성취하라

이것이 여래의 마지막 유훈이다.

 

- 부처의 마지막 유언 중 -


 

 

부디

편히 잠드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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