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연선택과 양자 지우개 실험의 다른 해석

 

  일전에 올렸던 [지연선택과 양자 지우개 실험]의 결론에 대하여 다른 의견이 있어서 오늘은 그것을 소개.
 
  먼저, 양자 지우개 실험을 짧게 정리하자면, 

  1. 빛 혹은 입자는 측정이 행해지기 전까지는 파동의 속성을 갖는다.
  2. 이중 슬릿을 통과한 입자들(혹은 빛)을 작은 크리스털을 사용하여 절반씩 쪼갠(얽힘 상태) 후, 얽힌 반쪽의 입자를 측정하면 (Delayed Choice) , 나머지 반쪽도 즉시 입자로서 행동하며, 
  3. 어느 슬릿을 통과하였는지 나중에 그 정보를 지울 수도 있도록(Quantum Eraser) 조작을 가하면 그 반쪽 입자는 다시 파동의 성질을 띤다는 것을 확인하는 실험. 

  실험의 간략한 개요는 아래와 같다.

자세한 내용은 일전에 올린 글(https://nofreelunch.tistory.com/113) 참고.

 

  위 실험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바로 인과성 위배이다. 이전에 설명했던 것과 같이, 스크린(위의 사진에서 interference screen이라고 표시된 부분)과 감지기 C, D의 거리가 스크린보다 더 멀고, 이것은 스크린에 이미 도착하여 입자로서의 특성을 보인 빛이, 시간이 지난 후에서야 자신의 얽힌 입자에게 가해진 측정치가 사라짐을 느낀 후,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가서 자신의 특성을 파동으로 다시 바꾸었다는 이야기이다. 즉, 현재의 측정이라는 행위를 통해 입자가 자신의 과거 사건을 바꾼 것과 같은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많은 과학자들이 꺼려하는 것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빛보다 빠른 입자의 존재가 자신의 이론에 나타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인과율 위배가 생겨나는 것이라고 한다. 빛보다 빠른 입자의 증명은 아인슈타인의 이론 - 특수 상대성 이론과 대결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지금까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 그리고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로 옮겨와 미래로 흘러가며 인과율의 영향도 그 순서대로 진행된다. 시간은 시위를 떠난 화살과 같다. 미래나 현재의 일이 과거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앞으로 가고 있는 화살이 과거의 자신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며, 이것은 우리가 아는 인과율이 즉시 와해될 것이라는 이야기의 다름 아니다. 

 

  각설하고, 일단 다른 쪽에서는 양자 지우개 실험의 이 인과율 위배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들어보자. 

 

  영상에서는 두 가지 전제를 이야기하는데, 하나는 이중슬릿 실험에서 하나의 슬릿만 통과한 빛(입자의 성질을 띤)은 입자가 아니라 하나의 슬롯을 통과한 파동이라고 설명한다.

<측정 시 빛은 하나의 슬릿을 통과한 파동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양자 지우개 실험의 스크린에 나타나는 빛의 모양은(측정당한 빛임에도 불구하고) 위의 그림과 같이, 이중 막대기 모양이 아니라 하나의 얼룩 (blob) 같은 덩어리 모양으로 나타난다. 

  다른 하나는 얽힌 입자에 대한 설명이다. 얽힌 입자는 각각의 정보(spin)를 공유하고 있지만 어떤 정보를 가지고 있는지는 측정이라는 행위가 있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얽힌 입자의 스핀의 합은 제로이다. 즉, 한 쪽의 스핀값을 알게되면 다른 쪽 얽힌 입자의 스핀값은 측정하지 않아도 그 반대라는 것을 알게 된다. 

<얽힌 입자간의 스핀의 합은 제로이다>

 

  영상은 양자 지우개 실험을 다시 재현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미 아는 이야기이니 넘어가도록 하자. 다만 설명에 사용한 전체 실험의 다이어그램은 매우 간단하면서도 직관적이니 아래 그림을 사용하도록 하겠다. 

<양자 지우개 실험의 간단한 도식. 빔 스플릿이 감지기 D3와 D4사이에 있어서 빛이 어느 슬릿을 통과했는지 알 수 없게 만든다>

  우리가 익히 아는 바와 같이, 감지기 D3나 D4를 켜면 아래와 같은 간섭 무늬(interference pattern)를 볼 수 있다. 

<각각의 감지기는 이중 슬릿을 통과한 것 처럼 간섭무늬를 만들어 내지만 자세히 보면 서로의 무늬가 다르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이야기. D3와 D4의 패턴은 서로 조금씩 다르며 그 둘을 합하면, 아래 그림처럼 얼룩 (blob) 같은 덩어리가 나타난다

<D3와 D4를 합하면 결국 하나의 blob 패턴이 만들어진다>

  다시 실험을 감지기별로 하나하나 살펴보자. 

  위의 그림에서 감지기 D1나 D2를 켰을 때 생기는 무늬는 간섭이 없는 형태이다. 그렇지만 그것도 스크린에서 만들어진 무늬의 부분집합일 뿐이다. 즉, D1과 D2의 패턴을 합하면 그것은 스크린에 나타난 무늬와 일치한다. 다만 D1과 D2에서는 간섭무늬가 아닌 하나의 덩어리 모양의 무늬가 나타났을 뿐이다. 

  감지기 D3나 D4를 켰을 경우에는 간섭 무늬가 나타난다. 하지만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그 두 개를 합하면 (즉, 두 개의 감지기를 모두 켜면) D1+D2 무늬와 동일하게 뿌연(blob) 덩어리 무늬가 나타난다 - 영상의 저자는 이것이 다른 유튜버들, 즉 양자 지우개를 설명하는 과학 유투버들의 영상에서 설명하지 않은 부분이라고 말 한다. 그래서 사람들을 헛갈리게 만들었다고...

<D3+D4는 D1+D2에서 나타난 무늬처럼 뿌옇게 나타날 뿐이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해서, 영상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양자 지우개 실험은 첫 번째 스크린에 나타난 빛의 패턴의 부분집합(subset)을 나타내는 것일 뿐, 인과율 위배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주장이다. 그 과정이 복잡해서, 실험 자체가 너무 복잡해서 헛갈리기 쉽지만, 미래의 사건이 과거의 사건을 변경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 실험은, 처음 스크린에 나타난 blob패턴의 subset을 채취하는 복잡한 과정일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사실 위의 영상을 보게 된 것이 조금 오래되었는데, 글을 쓸까 말까 하다가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이전 글을 보고 있어서  (A/S는 해야 할 것 같아) 후속으로 이런 의견도 있다는 글을 준비하게 되었다. 글을 쓰면서 이것저것 좀 찾아 보았는데, 예를 들어 영상에서 이야기하는 하나의 슬릿을 통과한 파동(책에서는 빛을 파동으로 설명하면서도 측정이라는 행위가 들어간 빛은 입자처럼 행동한다고 설명함)이라는 개념이, 사실 측정이라는 행위에 대한 결과의 여러가지 해석 중의 하나라는 것, 즉 현대 과학은 아직도 측정이라는 행위가 물리학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한 해석도 각기 다르다는 것을 배우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위의 영상을 보면서도 아직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감지기와 스크린의 거리, 즉 시간차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이다. 분명히 시간차(6ns, 다른 곳에서는 8ns)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간섭 무늬 혹은 간섭이 없는 무늬가 선택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분명 이상한 일이다. (물론 위의 영상에서는 그런 것을 '쓸데없이 복잡하기만 하고 아무 의미도 없는 것'으로 치부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아직 이 실험의 인과율 위배에 대해 그것이 실제임을 설명하려는 과학자들도 있는 것 같다. (https://ko.wikipedia.org/wiki/%EC%A7%80%EC%97%B0%EC%84%A0%ED%83%9D_%EC%96%91%EC%9E%90_%EC%A7%80%EC%9A%B0%EA%B0%9C)

 

  추가적으로, 이 실험에 대한 해석에 관심있는 분들은 아래에 링크된 블로그 글과 또 다른 영상(실제 스크린에 어떠한 무늬가 어떤 순서로 나타나는지 자세히 설명. 추천함)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 블로그 글은 위의 영상 말미에 소개된 그 블로그이다.

Sean Carroll

https://www.preposterousuniverse.com/blog/2019/09/21/the-notorious-delayed-choice-quantum-eraser/

  이상으로 오늘의 잡담을 종료.

 

<그리고, 오늘의 음악>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