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식 키보드 스프레이 윤활 사용기

 

  키보드 애호가라면 한 번 쯤은 해 보고 싶어 한다는 스위치 윤활.

  키를 두들길 때마다 좋은 소리(애호가들의 용어로는 정갈한 소리라 한다)가 나고, 잘 윤활된 슬라이더는 키압에도 영향을 주어서 그 단단한 흑축도 적축처럼 가벼워지고, 너무 맘에 들어서 심지어는 잘 때도 안고 자고 싶어지는 키보드가 탄생한다는 기계식 키보드 윤활 작업.

 

  예전에는 윤활을 위해서는 모든 스위치를 디솔더링 한 후, 하나하나 분해하여 붓을 이용해 슬라이더와 키 하우징, 스프링에 전문 윤활유를 발라주는 식의(혹은 키보드 한 대 값 정도를 지불하고 공방에 맡기든가), 고된 작업이었으나 어떤 유저가 올린 한 편의 사용기에 의해 이제는 누구나 쉽게 기계식 키보드의 윤활에 도전할 수 있게 되었다.

 

<스프레이를 스위치에 뿌리는 방법은 영상에서 3분대에 시작함.>

 

 

준비물

  1. 슈퍼루브 1통 (약 8~9천원)
  2. 일회용 마스크 1개 (900원)
  3. 일회용 장갑 1개 (100원)
  4. 알콜 솜 여러 장 혹은 소독용 알콜 1개 (500원)
  5. 눈을 보호하기 위한 안경
  6. 기계식 키보드 여러 대

 

 

주의사항

  위의 유튜브 영상에서 수정할 부분이 있는데, 영상처럼 스위치 하우징 전체에 스프레이를 분사하면(접점부위까지 도포하면) 스위치가 잘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사각형의 키 스위치를 위에서 보면 [CHERRY]라는 상표가 양각으로 표시된 영역이 있는데, 이 부분은 금속 접점이 있는 곳으로 절대 이곳에 윤활유를 분사해서는 안 된다. 슈퍼루브는 비전도성 윤활유이므로 전기 신호를 위한 접촉부위에 코팅되었을 경우 키보드 작동이 제대로 안될 수 있다. 실제 윤활유를 분사해야 하는 부위는, 위의 유튜브 영상과는 약간 다르게, 상표가 표시된 부분의 반대편이다. 즉 스프레이는 스위치를 손으로 누른 후, LED를 꼽기 위해 구멍이 두 개 있는 부위쪽 위치에서 뿌려야 한다. 이렇게 해야 접촉부위의 고장이 발생하지 않는다.

 

 

  총 4대의 키보드(적축 2, 갈축 2)를 윤활했으며, 시중에 파는 슈퍼루브 1통으로 약 15-20대 이상은 윤활 가능할 것 같다.

 

 

Q/A로 알아보는 스프레이 윤활

 

1. 잘못하면 키보드 고장 난다는데...

  고장 안 난다, 물론 딱 정해진 위치에 살짝 뿌린다는 조건이지만. 웬만해서는 이 작업 때문에 고장 날 이유가 없다. 아래 사진을 보자.

 

<스프레이 윤활 후 24시간이 지난 스위치 분해 사진. 스위치에 분사 후 윤활유가 어떻게 묻어나는지 확인해 보았다>

 

 

  사진 상으로 확인이 좀 힘든데, 슬라이더와 하우징은 얇고 고르게 윤활유가 잘 도포되어 있다. 만져보면 정말 미끈미끈하다.

 

  위의 사진에서와 같이, LED방향 쪽으로 두 번이나 분사했는데도 접점부위에는 윤활유가 없다. 접점 부위뿐만 아니라 스프링에도 한 방울의 윤활유도 묻어있지 않은데, 체리 스위치의 구조(특히 슬라이더의 모양)를 보면 왜 그런지 이유를 추측할 수 있다. 키 슬라이더를 누르면(즉 키를 누르면) 슬라이더가 스위치의 하부 하우징을 잘 막고 있어서, 먼지나 윤활유가 바닥까지 내려가기 힘들게 되어 있다. 그래서 슬라이더 사이로 윤활유를 칙 뿌린다고 해서 스프링이나 접점 부위에 윤활유가 묻을 이유가 거의 없다. 물론 접점부위 바로 아래 방향으로 분사한다든가, 윤활유가 스위치 위로 넘칠 정도로 (치이이이이익) 뿌려댔다면 고장 날 가능성은 있겠지만, LED쪽으로 한두 번 스위치에 [~] 하고 짧게 분사했다고 해서 키보드가 고장 날 가능성은 높지 않다.

 

 

 

<10대 중 8대의 키보드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유튜버>

 

 

  위의 영상은 키보드 10대의 윤활작업 후, 8대가 정상작동 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유튜버의 영상이다. 고장 난 이유로 슈퍼루브의 성분이 국내와 다르다고 추측하는데.... 개인적으론 성분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물론 서양에서 파는 수퍼루브가 국내제품과는 다르게 플라스틱을 녹이는 물질이 일부 들어 있다면 그 주장이 맞겠지만, 그럴 것 같진 않다). 아마도 스위치 위로 넘칠 정도로 너무 많은 양을 분사해 놓고 고장 났다고 영상을 올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이렇게 재미있으면서도 손이 많이 가는 구성으로 영상을 만들어 스프레이 윤활의 단점을 이야기 해 놓고서는, 한 번도 작동 문제가 된 스위치를 분해해서 왜 정상작동하지 않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10대 중 8대의 불량이라면 스위치 하나 정도는 디솔더링 해서 이유를 찾아볼만 하건만...

 

 

2. 윤활하면 좋은 소리가 나는가?

  애매하다. 사진에서와 같이 스프레이로 윤활되는 부분은 대부분 슬라이더와 그에 맞물리는 상부 하우징 쪽이고 그래서 슬라이더의 그 서걱거리는 느낌이 조금 감소한 부분은 있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다. 키를 두들길 때, 특히 리니어 형식의 스위치는 슬라이더가 키 하우징의 마찰에 의해 서걱거리는 소리와 마찰의 느낌이 손끝에 전달되는데, 이것이 윤활로 어느 정도는 보정(혹은 개선)되는 것은 맞는 것 같다. 그러나 스프링 소리 개인적으로 그렇게 오래 기계식 키보드를 두들겨 댔지만 스프링 튀는 소리를 들은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스위치가 바닥을 치는 소리와 위 뚜껑을 때리는 소리(딱딱), 그리고 슬라이더의 서걱거림 정도는 느껴보았지만, 스프링 튕기는 소리는 솔직히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다 , 사진에서 보다시피 스프레이로 윤활하기 힘든 부분이며, 그래서 혹시라도 스프링 소리를 잡고자 하는 분이 있다면, 이 스프레이 방식으로는 개선이 힘들 것 같다.

 

 

 

3. 작업 시 주의 사항은?

  스프레이 뿌릴 때, 입과 눈으로 액체가 많이 튄다. 정말 많이 튄다. 그래서 마스크와 일회용 장갑, 눈 보호대(안경 쓴 분들은 안경만 좀 닦으심 될 듯) 같은 보호 장구를 꼭 착용한 후 작업을 해야 한다. 틈이 많지 않는 막힌 공간의 모서리에 액체를 분사하니 이 미끌거리는 액체가 온 사방으로 튄다. 입과 눈에 들어가지 않도록 보호 장구는 필수! 그리고 냄새가 많이 나므로 탁 트인 환기가 잘 되는 공간 확보도 필수.

 

 

 

4. 좋다! 그럼 나도 한 번 해 볼까?

  유튜브 영상에서는 설명하지 않은 부분인데, 스프레이 윤활은 윤활 자체 작업보다 그 뒤처리에 더 많은 시간이 든다. 윤활제는 사방으로 튀고 이렇게 키보드 여기저기 묻은 윤활제는 일반적인 물티슈로는 제거가 쉽지 않다. 알콜로 닦아야 그나마 빠르게 제거가 되고(그래서 준비물로 소독용 알콜을 넣었다), 그리고... 그리고 그 냄새. 아 화학제품 냄새. 약품냄새 정말 많이 나고, 닦아낸 다음에도 그 다음날에도 남아 있는 화공약품 냄새, 아 싫다.

 

키보드 하우징을 분해할 수 있으면 하우징을 따로 분해 후, 아래 사진처럼 보강판&스위치만 떼어내서 스프레이 작업하는 것을 추천.

 

 

5. 결론은?

  지금 사용하고 있는 기계식 키보드에 불만이 있는 경우, 특히 사용한 지 5~10년 정도 되어서 자주 사용한 키와 그렇지 않은 키 간의 편차가 느껴지는 경우에는 스프레이 윤활을 추천. (네 대의 키보드 중 갈축을 사용한 두 대의 키보드가 그런 경우인데, 자주 사용한 키와 그렇지 않은 키 간의 구분감, 즉 텍타일이 차이가 나는 키보드는 윤활을 하면 모든 키가 거의 동일한 (더 약해진) 텍타일 느낌을 준다.)

 

  그 외에 현재 사용하고 있는 키보드에 딱히 큰 불만이 없다면, 굳이 할 필요는 없다. 키보드 스프레이 윤활은 뿌리는 작업 그 자체보다 뒤처리가 매우매우 귀찮다. 윤활제와 화공약품 냄새로 떡칠된 키보드 네 대를 쭈그린 자세에서 알콜로 닦다보면, 과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 기대치를 높게 잡았던 탓도 있겠지만, 결과도 기대보다 별로고 남들은 윤활한 키보드가 훨씬 좋다고 하는데 - 개인적으로는 꼭 해야 할 작업은 아닌 것 같다. 특히 새로 산 키보드에는 굳이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번 작업으로 얻은 교훈이 있다면,

1. 풀 윤활에 대한 환상이 사라짐.

  비싼 비용을 들여서라도 풀 윤활(스위치를 각각 분해하여 윤활)하고 싶었었는데, 이번 작업으로 그 환상이 사라졌다. 하면 나쁘지는 않겠지만 시간 혹은 고비용을 들여가며 풀 윤활까지는 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

 

2. 순정 체리 스위치는 꽤 좋은 스위치. 그렇게 세게 뿌려댔는데도 접점부에 액체 하나 없을 정도로 훌륭한 방진설계. 그렇게 두들겨대며 혹사시켜도 10년이 넘게 고장이 안 나는 이유.

 

<윤활과 세척이 끝난 적축 키보드>

 

<오래된 갈축, 윤활 후에는 스위치간의 구분감 편차가 적어진다.>

 

 

 

오늘은 Rubinoos가 부른  I Think We're Alone Now 를 들으면서 리뷰를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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