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냄새

 

  냄새가 났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마자 냄새부터 났다. 묵은 담배 진과 지하실의 곰팡이가 섞인 것 같은 냄새. 엘리베이터 앞에 선 낮선 사람의 낡은 트렌치코드에서 냄새가 올라온다. 오른 손을 올려 입을 가리려다가 그것이 신사적인 행동이 아님을 번뜩 깨닫고는 고개만 아래로 숙였다. 그가 신은 스키니 운동화가 눈에 들어온다. 한 방향으로만 닳은 밑창에, 급히 수선한 듯 신발 옆구리는 실밥이 미처 정리하지 못한 코털처럼 밖으로 쭉 삐져나와 있다. 
  그가 먼저 탄 나를 보고서는 인사하듯 고개를 숙이며 한 걸음 내딛어 내 앞에 선다. 나는 입가에 영업용 미소를 띠우고 그의 인사에 답하듯 고개를 까딱거렸다.

  사무실에 도착하면 방향제부터 뿌려달라고 해야지. 이 냄새가 배기 전에. 

  며칠 전부터 이런 사람들의 방문이 늘었다. 이 빌딩은, 얼마 전만해도 이 회색의 빌딩에 달린 엘리베이터는, 자부심으로 무장한 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들만 올랐다. 물론, 1층과 2층에 위치한 대형 카페와 한국식 레스토랑 때문에 길을 잘못든 손님들이 가끔 이 엘리베이터에 오를 때도 있었지만, 최소한 그들이 풍기는 냄새는 평범했다. 싸구려 데오드란트와 미처 털어내지 못한 그날 하루의 땀 냄새 - 거리를 오가는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언제나 맡을 수 있는 그런 냄새가 났을 뿐, 오늘처럼 이렇게 인상이 찌푸려질 정도의 역한 냄새는 아니었다.

  회사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임원인 변호사 한 명과 여비서의 횡령으로부터 시작되었다. M&A를 진행하던 우리 쪽 기업의 비밀계획을 상대편에 팔고선 내부 금고에서 공금까지 털어서 그 둘이 해외로 튄 것이다. 꼼꼼히 계획한 그들은 약 5백만 달러가 넘는 돈을 들고 하루 만에 아시아로 내뺐다. (지금쯤이면 이 둘은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동남아의 어느 해변에서 뒹굴고 있겠지) 법률회사로서, 이런 소문은 빠르게 다른 곳으로 확산된다. 회사의 평판은 땅에 떨어졌고, 그 많던 기업의 의뢰 수는 한 자릿수로 곤두박질 쳤다. 회사의 돈줄이 되어주던 기업들이 한 번에 빠져나가자 주주들은 사장을 들볶기 시작했고,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사장은 얼굴을 붉히며 우리에게 소리쳐댔다.  

‘모아야 하네. 한 명이라도 더 모아야 해.’ 

 회사의 파트너이자 나의 상사인 드레이크는 그렇게 이야기 했다. 한 건이라도 더 가져와라. 뭐든 좋아. 돈 냄새가 난다 싶으면 일단 들고 와.
  더 이상 예전처럼 기업들이 돈다발을 들고 찾아오지는 않는다. 나가서 계약을 따내야 했다. 그게 누군가의 유언장이든 간단한 민사 소송이든 부동산 임대 계약이든 무엇이든 돈이 될 만한 것들을 낚아야 했다 – 누구보다도 먼저 말이다.
  직원들은 예전이라면 이런 푼돈에 기웃거리는 자기 자신을 보면 한심하다고 여겼을, 그런 잡다한 일들을 하나 둘 씩 사무실로 가져오기 시작했다. 번들거리는 가죽 서류가방을 들고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로 채워지던 회의실은 점차 운동화와, (몇 년은 같은 옷을 입어서) 소매가 검게 때가 뭍은 트렌치코트를 입은 사람들로 빠르게 교체되었다. 그리고 그에 맞게 사무실에 흐르는 공기의 냄새도 달라졌다. 

  발 빠른 자들은 부동산 임대 관련 법률처리부터 잡았다. 일은 쉽고, 무엇보다도 계약금이 먼저 들어온다. 그러나 이쪽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푼돈의 임대료를 내면서 건물에서 나가지 않으려는 사람이나, 건물 한켠에 한 자리 차지하고서는 농성에 가까운 점거로 건물주의 기운을 빼는 거렁뱅이들, 즉 '노숙자'들을 다뤄야 할 때도 있었다. 물론 회사는 이런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일들을 우리 같은 '양복'이 직접 처리하도록 하지 않는 선에서, 회사가 완전히 무너진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직원들에게 보여 주었지만(회사는 이런 일에는 '어깨'들을 고용했다), 회사 입장에서는 이것도 비용이 나가는 일이고, 직원 입장에서는 이런 노숙자들과 직접 얼굴을 맞대어야 하는, 불편한 만남을 몇 번은 반드시 가져야 했다. 




  가벼운 모터소리를 울리면서 엘리베이터가 올라가기 시작하자 불편했던 생각들이 조금씩 사라진다. 다만 이제는 예전처럼 서류철 가방에서 올라오던 가죽냄새나 고급 디올 향수냄새와 빳빳한 새 명함에서 풍겨오는 잉크냄새와 함께 일을 시작할 수 없다는 현실을 생각하니, 잠깐 짜증이 밀려왔을 뿐이다.
 그래, 냄새 때문이야. 이 냄새 때문에 하루의 시작이 엉망이 되었군. 이제 몇 층만 올라가면 된다. 문이 열리면 마담 드비어에게 부탁하는 거야. 방향제부터 뿌려달라고 하는 거야. 이 냄새가 내 몸에 배기 전에.

 

< Turning Into You - The Offsp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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