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의 기회가 있는 거야. 두 번도 아니고 딱 세 번."


 오랫동안 제대로 씻지 않아 검고 누런 냄새가 나는 딱지가 들러붙은 맥주잔을 흔들면서 그 사람은 내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세 번 이거든. 여기 이 땅을 - 저주 받을, 툇 – 물려받은 어린 도련님도, 남은 술을 몰래 섞어 파는 저 더러운 술집 주인도, 너 같은 창녀의 자식도 모두 똑 같은 기회가 있는 거야. “ 마지막 말을 하며 그가 히죽대며 웃었다.

 영주의 심부름을 위해 언덕 위의 오두막 길을 가던 중 갑자기 쏟아지는 빗줄기를 피해 들어 온 술집에서, 그 사내는 짐짓 기분 좋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하인들을 매섭게 매질하고 높은 이자로 금화를 빌려주었다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남의 땅을 뺏기로 유명한 늙은 영주가 무슨 일인지 그에게 꽤나 좋은 보수를 내걸고 단순한, 정말 단순한 심부름을 제안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기회가 오면 알려 준다고, 저 높은 곳에서 기분 나쁘게 내려다보면서 그 염병할 신이라는 작자가 말이지.“



 내가 아버지라고 부르던 그 남자는 작은 술집에서 몇 명의 여자를 데리고 영업을 하던 포주였다.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에 질 좋은 럼주를 만들어 그 동네에서는 한동안 장사가 잘 되었다고 한다. 그러던 와중에 내가 태어났고, 이후부터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고 한다. 몸을 팔던 여자 한 명이 병에 걸렸는데, 그게 도시 내에 퍼져 살던 지역이 쑥대밭이 되었고, 어쩔 수 없이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멀리 여기까지 도망 오게 되었다고 한다. 이일 이후부터 나는 재수 없는 아이가 되었고 그에게 무언가 기분 나쁜 일이 있을 때면 늘 매질을 당하곤 했다. 

 재수 없는 놈, 지어미를 잡아먹은 놈.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는 나를 집 밖으로 아주 쫓아버리지는 않았는데, 그 이유를 지금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를 싫어했는데……. 


 어쨌든 그 사람이 말했던 세 번의 기회가 내게도 찾아 왔다 - 첫 번째 행운은 그것을 정말 운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알쏭달쏭하지만, 이번만큼은 확실한 것 같다. 그래 아마 이것이 하늘이 내게 준 또 하나의 기회일 것이다.

 용병에 참가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처음 들었을 때에는 별로 내키지 않았음을 밝힌다. 나는  혼자가 편하다. 다른 사람들과 같이 짝을 이루어 의뢰를 해결하는 것은 내 스타일이 아니다. 어떻게 다른 사람을 믿을 것인가? 내가 자고 있을 때 슬금 다가와 철퇴로 내 두개골을 쪼개지 않을 것이란 보장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 혹은 전장에서 한창 단검을 날리고 있는 와중에 내 뒤통수에 화실을 쏘지 말란 법이라도 있던가? 더욱이 보수를 두둑이 받아 주머니에 금화가 가득 있는 상황이나 혹은 남은 머릿수 비율로 임금을 지불하는 용병 단에 속해 있다면 말이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내가 지켜온 철칙을 깨기로 했다. 혼자서는 불가능한 임무다 – 그리고 그만큼 보수도 크다. 


 영주가 용병 단을 모집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금세 마을에 알려졌고, 여기저기 힘깨나 쓴다는 풋내기 기사부터 오랫동안 용병생활에 잔뼈가 굵은 나이든 용사들까지 모두 여기에 동참하기로 했다는 이야기가 퍼졌다. 돈 많은 영주가 쓸 만한 용병을 구하기 위해 깨작거리는 가짜 이야기야 흔하고, 나로서는 그것보다 새로 발굴된 거대무덤 쪽에 마음이 동했지만, 내게 동참을 제안한 그 기사는 이미 한 번 그곳을 가본 적이 있는 경험자였다. 그리고 그가 보여준 그 보석들....... 한 번 보기만 해도 누구나 알 수 있다. 그 가치는 기껏 금화 몇 닢에 비할 것이 아니라는 것을, 무덤의 부장품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는 것을.



 영주의 저택으로 가는 길에 마차가 전복되었고 – 아마 산적들이 함정을 설치했을 것이다. 영주로 가기 위해서는 외길밖에 없으니까 - 같이 온 용병은 전복 시 입은 부상과 도적들이 던진 독화살에 목숨을 잃었다. 내가 아쉬울 것은 하나도 없다. 어차피 우리들 세계에선 누가 죽든 남은 사람이 모든 것을 가져간다. - 단 하나, 편지만 빼고.


 술집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같이 동참할 용병들을 살펴본다. 다들 긴장감을 애써 없애기 위해 술잔을 들고 크게 웃으며 자신의 실력을 뽐내고 있지만, 진정한 프로는 혼자 조용히 마시며 관찰한다. 믿을만한 실력 있는 동료를 찾는 것, 그것이 전장에서 살아남는데 가장 중요하므로.


 술집 여급이 나를 보고 웃는다, 이상하리만치 가슴이 아리다. 지금껏 용병생활에서 많은 여자를 만나보았지만, 이런 느낌은 처음이다. 아버지의 일 이후로 가정이나 아이는 갖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스베틀리나, 예쁜 이름이다. 은화 한 닢을 주고 가슴을 만져 보았다. 나쁘지 않다. 아이를 여럿 키울 수도 있겠다. 같이 살 수 있냐고 물어 보았더니, 이 여관을 가지고 싶다고 한다. 주인에게서 여관을 인수하여 안주인으로 살고 싶다고 한다. 생각해 보니 그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이곳을 운영하며 이 여자와 같이 살 수도 있다 – 여긴 늘 사람들이 죽고 그만큼 새로 오는 곳이니 장사는 잘 될 것이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저 어두운 던전을 몇 번이고 갔다 와야 한다. 누구도 가지 못했던, 그믐보다도 더 어둡고 어두운 곳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상한 생물과 마주쳐야 할지도 모른다. 사실 처음 여기에 왔을 때는 약간의 보석과 신비한 주문이 적혀 있는 책 한권만 훔쳐가려고 했었다 – 오래 있다가는 나도 저 정신병원에 있는 사람들처럼 미쳐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스베틀리나를 만나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저 여자와 같이 여기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몇 번이나 목숨을 담보로 괴물과 마주치더라도 그녀와 같이 살 수만 있다면 해 볼만하다는 생각으로 가득하다. 그래, 내일이라도 당장 용병을 고용하며 저 동굴에 들어갈 것이다. 진귀한 루비와 다이아몬드를 구하기 위해서는 목숨을 담보로 해야 할 지도 모른다. - 세상에 공짜로 점심을 주는 곳은 없으니까


 그러나 스베틀리나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겠다. 그것이 내가 오늘 이 여관에서 내린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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