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오늘 밤은 어려울 것 같다. 한 달에 한 번 찾아오는 그믐은 그 오두막 얼굴에 곰보가 덕지덕지 붙은 주름투성이의 마녀가 사는 곳에 가는 날이지만 오늘은 추적거리며 내리는 이슬비에다가 바람도 많이 분다. 호롱불 하나에 의지해서 저 어두운 산길을 오르기에는 무리다.

 맥주가 가득 든 술잔을 테이블로 나르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내 엉덩이 쪽에 따가운 시선이 느껴진다. 새로 도착한 용병들이 짓궂은 표정으로 – 모두 셋인데 하나는 등에 커다란 활을 달고 있지만 머리카락이 위쪽으로 한 움큼 빠져있는 반 대머리고, 하나는 완전히 술에 쩔어 누런 이빨만 보이는 냄새나는 주정뱅이고, 나머지 한 명은 그나마 반들반들하게 젊고 잘생긴 사내인데 옷 위로 도드라진 근육이 없는 것으로 보아 전사는 아닌 것 같다 - 나를 쳐다보고 있다. 그나마 잘생긴 쪽을 향해 살짝 미소를 보이고는 다시 주방으로 들어간다.

 여관 주인이 내 옆에 서서는 슬쩍 물어 본다.

 “어떻게 할 거야? 오늘은 재들이야?”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모호한 표정을 지어 보이자, 주인이 초조해 한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고, 좀 있으면 그걸 줘야할 지도 몰라.”

 나도 안다는 표정으로 그에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내가 지불해야 할 것을 그보다 더 잘 알고 있다.


 이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음식 쓰레기를 주워 먹으며 하루를 버텨가고 있던, 도시에 사는 검은 쥐새끼와 같은 처지였다. 그런 나를 이 여관주인이 발견하고는 내게 잠잘 곳과 진짜 먹을 것을 주었다. 처음 그가 내 얼굴을 보고 지었던 표정이 지금도 생생한데, 마치 귀한 보석을 방금 캐 낸 것처럼 환한 미소를 지으며 크게 웃고 있었다.

 “이건 정말 행운이야. 신이 내게 주신 기회라고!”

 처음에는 그의 말이 무엇인지 잘 몰랐으나, 이내 영주의 집에 보내지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내가 기운을 차리고 몸에 살이 붙기 시작한 지 두 달 후에, 주인은 나를 불러서는 내가 영주의 집에 가야하며 그곳에서 어떤 물건을 가져와야 한다고 이야기 해 주었다.

 “집에 있는 책 한 권만 가져오면 된다고. 흔한 책 한 권이라 없어져도 아무도 모르지. 집에서 나올 때 그것만 가져다주게.”

 그러면서 전혀 위로가 될 것 같지 않는 한 마디 말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이건 네게도 기회야. 영주는 쭈그렁 주름투성이의 영감이지만 지역의 제일가는 부자라고. 네게도 충분한 보상이 주어질 거야.”

 영주의 집에 도착하자 그가 여관 주인과 똑같은 환한 표정으로 감탄사를 연발하며 나를 반겼다 부활이라고, 신의 기적이 틀림없다고.......

 아, 내 평생 그곳에서의 생활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귀한 음식들, 밤이면 끝없는 육체의 향연이 펼쳐지고, 곱게 갈아 만든 암송아지의 뼈 조각이 들어간 붉은 음료는 그 즐거움을 배가 해 주었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공짜 점심은 그렇게 무한정 지속되지는 않는다. 곧 내 결점을 보게 된 영주는 즉시 나를 집 밖으로 내쫓고야 말았다.

 여관에 돌아오자 주인은 즉시 그가 응당 받아야 할 것을 요구했으나 나는 그곳에서의 달콤한 생활에 빠져있어서, 그가 원한 것이 무엇인지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탄식과 비난에 젖은 그의 분노를 온전히 몇 시간 동안 감내한 후에야 가쁘게 숨을 몰아쉬던 그가 손에서 몽둥이를 내려놓으며 내게 새로운 제안을 했다.

 “오두막 마녀를 찾아가. 그리고 마녀가 시키는 대로 해.”

 이후, 매번 그믐이 찾아오면, 나는 마녀를 만나 작은 물병에 그녀가 주는 물을 받아 온다. 그리고 내가 뭔가 요구할 것이 있는 상대가 나타나면 나는 그 물을 마신다. - 그러면 서로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내 목소리는 나오지 않지만 상대는 내가 생각하는 것을 듣는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 준다, 마치 내가 주인인 것처럼.

 주방 한 구석에서 손으로 턱을 괴고 오래된 기억들을 더듬고 있을 때, 오늘 아침에 새로 도착한 신입 용병이 문을 열고 들어 왔다. 아침에 오는 길목에서 도적과 한바탕 일이 있어서 동료가 죽었다고 했던가. 허름한 옷에 왼쪽 혁대에 작은 단검만 차고 걷는 모습을 보니 수중에 금화 따위는 없는 것 같다. 그런데....... 그 사람이 의자에 앉는 순간, 나는 봤다.

 뱀의 눈처럼 생긴 검고 붉은 루비 - 생명의 부름이라고 불리는 귀한 보석이다! 마녀가 찾고 있던, 그것만 준다면 자신이 가진 어떠한 능력이라도 주겠다고 했던 귀중품이다! 저것만 있으면.......

 침착하자. 가슴속에 숨겨둔 비약이 남아 있는지 확인부터 해 보자. 그래, 있다! 한 모금 정도 남았지만 그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절대 약병을 완전히 비우지 말라는 마녀의 경고 따위는 무시하자. 저 보석만 있으면 이런 미약은 평생 쓸 만큼 많이 만들 수 있다.

 약병을 모두 비우고 그에게 다가가자 즉시 약효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의 동공이 커지면서 놀라는 모습이다. 잠시 윗입술을 핥더니 일어서서 내게 다가온다. 여관 구석으로 자리를 옮기자 그가 은화 한 닢을 들이민다. 뭘 원하는가 싶었는데, 가슴이 살짝 답답한 기분이 든다. 앞섶의 끈을 풀었더니 그가 내 가슴을 보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보인다. - , 그렇군. 은화 한 닢 따위에 이런 일은 하지 않지만 뭐 보석정도라면……. 이봐, 뜨내기 용병 양반, 너의 보석은 이미 내 주머니에 있다고.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그를 두고 나는 조심스럽게 바로 여관을 빠져 나온다. 주인이 나의 부재를 조만간 눈치 채겠지만 이제 그건 중요하지 않다. 미혹의 술잔만 있으면 나는 다시 영주의 집으로 갈 수 있다. 거기서 평생 가짜가 아닌 진짜 안주인으로 살 수 있다. 미약을 사용하며 영주를 평생 내 남편이자 하인으로 만들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빨리 마녀를 만나야 한다. 비와 바람이 섞인 날씨 탓인지 자꾸만 눈앞이 흐려지지만 길을 잃을 정도는 아니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왔던 길을 틀릴 리가 없다. , 저 멀리 오두막의 불빛이 보인다. 조금이다 조금만 더.

 이제 다 왔다고 생각할 때 비에 젖은 돌계단에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오두막 안에서, 마치 보고 있다는 듯 마녀의 킥킥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이상하다. 여관을 나설 때부터 왜 엉덩이 꼬리뼈 쪽이 가려운걸까 - 그곳에서 뭔가 꿈틀대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불빛 탓인지 자꾸만 다리가 겹쳐 보인다. 마치 네 개의 다리가 달린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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