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가 멈추질 않는다. 단도에 옆구리를 살짝 베인 것뿐인데, 한 방울씩 떨어지던 피가 이제는 꿀렁거리는 뱀의 혓바닥처럼 맥박 치듯 흘러내리고 있다. , 이대로라면 얼마 버티지 못할 게다. ‘비정의 형제도 여기서 끝이다. - 이게 다 그 빌어먹을 애송이 도굴꾼 자식 때문이다. 젠장, 젠장, 젠장!

 축축한 곰팡이 냄새가 나던 더러운 여관에서 그 애송이가 원정 제안서를 내밀었을 때, 나는 내 동료이자 친구인 문둥이 어윈이라고 내가 이름 지어준 에게 그 자식과는 함께 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말했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난 그자식의 눈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뭐랄까, 분명 행복한 감정에 젖어 있어서 이 사람과 같이 있으면 나도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눈빛이긴 한데 용병으로서의 날카로운 맛이 떨어졌다. 의례 지옥 같은 전장에서 살아남은 용병이라면, 만취한 상태에서라도 상대방이 적의를 품으면 눈빛부터 달라지는 법이다. 그런데, 이 초짜 용병은 내가 신발에 숨겨둔 작은 칼날을 그의 사타구니에 슬쩍 들이 밀었을 때에도 마냥 즐거운 듯 웃고 있었다.

 ‘이건 좋지 않은 신호야.’ 내가 나지막이 어윈에게 속삭였을 때 의외로 문둥이 녀석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이미 그 애송이 도굴꾼의 손목을 잡고 있었다. - 용병이 각자의 손목을 잡는 행위는 계약이 성립되었음을 의미하며 서로 얼굴에 침을 뱉어 계약을 파기하기 전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내 파트너가 그런 애송이와 계약을 했다는 것 자체가 나로서는 이해 할 수 없었다.

 “이봐, 나는 빠질 거야.” 삐걱거리는 나무의자를 뒤로 물리면서 내가 말했다. “난 빼줘.”

 그때 어윈의 표정은 지금도 기억이 난다. 오랫동안 동료로서, 내 뒤통수를 온전히 맡길 수 있는 유일한 전사로서, 수많은 전투를 거치며 그의 얼굴을 보아 왔지만, 그때 그 문둥이가 지은 표정은 살기 따위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마치 죽음의 신이 바로 코앞에서 내 이름을 부르고 있는 듯한, 험악한 얼굴이었다. - 만일 내가 그때 여관을 나갔다면 즉시 내 머리통은 산산조각 났을 것이다, 분명히.

 첫 원정은 의외로 순조롭게 끝났다. 내가 치료자로서 수녀원의 성녀를 동료로 데려 갈 것을 주장했지만, 끝내 이름 모를 역병의사가 마지막 원정자로 선정된 것은 탐탁지 않았는데 의외로, 첫 원정은 싱겁게 끝이 났다. 물론 문둥이 어윈이 돌리는 장검의 날에 버틸 도적 따위가 있을 리 없었고 생각했던 것보다 도굴꾼이 던진 단검이 착실하게 적의 약점을 파고들긴 했지만, 나의 신들린 듯한 만돌린연주솜씨가 아니었다면 그들 모두 정신이 붕괴되어 저 깊은 동굴 속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는 한낱 괴물이 되어 있을 것이라는 점도 밝힌다- 사실 공짜 점심운운하며 애송이가 날 비난만하지 않았다면 그냥 조용히 넘어가려고 했는데......

 문제는 두 번째 원정이 시작되고 나서 일어났다. 어찌된 일인지 여관에서 사라진 여급의 이야기를 들은 그 애송이 도굴꾼이 이상증세를 보인 것이다. - 어쩌면 캠프파이어 중에 내가 그를 위로하기 위해 던진 농담이 그를 완전히 패닉상태에 빠지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번 원정만 끝내면 넌 전설로 남을 거야. 마녀를 작은 단도 하나로 끝장낸 용사라고 말이야. 그리고 여자들, 네 얼굴을 보기 위해서라면 귀족의 딸들도 여관의 창녀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지 - 속옷도 입지 않고 바로 널 보러 뛰쳐나온다니까.’

 이 이야기를 들은 그 애송이의 얼굴을 당신이 봤어야 하는데. 세상에나. 그렇게 절망적인 눈을 하고 있는 표정을 난 본적이 없다. 다시 생각해 봐도 내가 무엇을 잘못 했는가? 나는 그냥 용병들이 쓰는 일반적인 위로의 말을 건넸을 뿐이다.

 결국, 마녀와의 전투는, 예상했었지만, 최악이었다.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후방에 있어야할 역병의사가 먼저 앞장서더니 마녀의 끓는 항아리 속으로 끌려 들어가 버렸고 우리 세 명이서 마녀의 역겨운 공격을 버텨야만 했다. 마녀가 누군가의 눈알처럼 보이는 미끈거리는 구슬과 창자를 던지기 시작하자 문둥이도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는지 내 뒤로 숨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이 때, 애송이의 정신이 완전히 붕괴되었다.

 살기 가득한 눈으로 휘두르는 애송이의 단도가 내 옆구리에 파고들었고, 그것을 본 문둥이가 내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 미안, 어윈. 아마도 내가 최후의 일격을 내 파트너에게 날린 것 같다. 난 단지 애송이를 없앨 생각뿐이었는데…….


 일은 그렇게 된 것이다. 우리의 원정은 실패했고, 나 혼자 살아남아 죽을힘을 다해 이 동굴을 빠져나가고 있다. 내 평생 유일한 친구이자 과거 내 목숨을 살려준 파트너 어윈을 잃고, 상처투성이의 몸으로 이 어두운 동굴을 홀로 빠져나가고 있다. 물론 이 모든 일의 원흉은 그 애송이 도굴꾼이다. 그놈만 없었더라면, 우리 비정의 형제- 물론 자잘한 복수를 의뢰받는 일 뿐이었겠지만 - 계속 잘 나갔을 것이다. 의뢰를 해결하고 그 보수를 받으면 술집에서 어윈은 노란 색 맥주를 들이키고, 나는 그를 위해 신나는 곡을 연주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 애송이만 없었더라면.......

 내 뒤로 사람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끓는 솥 안에서 허우적대던 역병의사의 목소리인지 그 애송이가 지르는 비명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내 뒤에 누가 남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은 내 목숨이 중요하다. 어쨌든 난 여기서 살아 나가야 한다.

 붕대를 찾기 위해 배낭을 뒤지던 중, 금화 몇 개와 어윈의 필적이 담긴 편지 같은 두루마리를 찾았다. 문둥이가 언제? 왜 내게 이런 것을? 확인은 나중이다. 지금은 조금이라도 걸아야 한다. 출구가 멀지 않았다. 그래 조금만 더.

 그런데, 저 비명소리. 출구가 가까워지자 더 가까이 들리는 것 같다. 어찌 내가 다시 동굴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그냥 기분 탓일까? 그럴 거야, 그런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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