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커튼을 살짝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요란한 소리를 내는 구급차와 경찰차 여러 대가 그 클럽 입구를 둘러싸듯이 진을 치고 있었고, 여러 명의 부상자와 사망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들것에 실려 나가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오가는 사람들을 계속 지켜보았지만 B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오븐의 구멍으로 떨어질 때 들었던 그녀의 마지막 외침소리로 추정하자면 이 소동이 일어났을 때 그녀가 제일 먼저 체포되어 조직으로 끌려갔을 것이다.

창문에 반쯤 기대어 밖을 내다보고 있었는데, 어느새 클레이가 깔끔한 옷으로 갈아입고 내 옆에 서 있었다. 자신이 계속 확인을 하겠다면서 그녀가 얼른 옷부터 갈아입고 오라고 말을 했다.

화장실 한 구석에 있는 샤워기로 내 몸에 배기기 시작한 하수구의 냄새를 씻어내면서 지금의 상황을 머릿속으로 다시 한 번 정리했다.

 

꽤 오랫동안 하수구를 기어갔다고 생각했는데 클레이가 말한 안전가옥은 클럽과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맨홀 뚜껑을 올리고 건물 옆에 있는 비상계단을 내려 건물의 3층으로 올라가자 클레이가 번호를 입력하고 방문을 열었다. 일인용 침대 하나와 책상과 소파 하나, 그리고 유선으로 연결된 전화기만이 그 방의 유일한 전자제품이었고 TV나 흔한 커피포트조차 그 방에는 구비되어 있지 않았다. 도착하자마자 클레이가 자신과 내가 무사하게 안전가옥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듯한 전화를 어디론가 걸었다. 전화를 끊고 그녀는 앞으로 한 시간 이내에 누군가가 도착할 것이며 그 사람만이 내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다고 말을 했다. 그녀가 속한 기관과 그곳에서 하고 있는 일들, 그리고 그 목적에 대해서는 그 사람이 모두 알려 줄 것이라면서 자신과 이야기하는 것은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내 질문에 고개를 저으며 말을 했었다.

 


 

샤워를 마치고 한쪽 구석에 곱게 개어져 있는 옷을 입어보았다. 몸에 약간 작은 듯 했지만 활동에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화장실에서 나오자 창문 밖을 내다보던 클레이가 내게 말을 했다.

상황이 정리되고 있는 것 같아요. 하나 둘 씩 차들이 빠져나가고 있어요.”

그녀 옆에 서서 커튼을 조금 더 열어서 밖을 내다보았다. 그녀 말대로 아까 보았던 것 보다 지키고 있는 경찰과 군인 수가 많이 줄어들었고, 지금은 경찰차 세 대만이 입구에 세워져 있었다.

 

멀어져가는 마지막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를 들으면서 창문에서 떨어져 소파에 앉아 정면에 걸린 그림을 쳐다보았다. 색색으로 칠해진 사각형들이 각각의 크기로 캔버스를 가득매운 그림을 잠시 쳐다보다가 눈을 감았지만, 무지개 색 사각형들이 잔영으로 남아 굳게 감은 내 눈 주위를 조롱하듯 돌아다니고 있었다.

어느새 창가에 있던 클레이가 조용히 와서는 내 옆자리에 같이 앉았다. 우리 둘은 서로 말 없이 앞에 있는 그림만 쳐다보았다. 한참을 사각형들만 보고 있었더니 이윽고 클레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마이클은 내 옆집에 살던 친구였어요.”

내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보자 그녀가 나를 한 번 보고 다시 말을 했다.

“B, 그러니까 브리짓은....... . 마이클이 병원에 있을 때 만난 사이이구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잠시 후 그녀가 천정을 향해 길게 숨을 내쉰 후에 바닥을 내려다보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

그 사고가 났을 때……. .”

, 내가 그의 집에 갔을 때, 그는 혼자 소파에 앉아 있었어요. 초점 없는 눈으로 자신의 양 손만 바라보고 있었어요. 내가 다가가서 그를 흔들어도 그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죠, 마치 좀비처럼 자기 손만 쳐다보고 있었어요.”

그런 그를 기관에서 치료해 줬어요. 뇌에 삽입된 생체단말을 제거하고....... 그가 간절하게 그걸 제거하기를 원했거든요. 그리고……. 그는 기관에 들어오게 되었어요, 자의든 타의이든.”

마지막 말을 하면서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녀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저기, 조니.” 그녀가 고개를 돌려 내 얼굴을 정면에서 바라봤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 자기만의 사연이 있어요. 그리고 어쩌면, 그런 우연한 사건들이 모여 같은 목적을 가진 집단이 만들어지기도 해요, 우리처럼. 그런데 뭐랄까, 우연이 너무 겹치면 그 사연들이 필연인 것 같단 말이에요. 오늘 일만해도 그래요. 예상치 않게 브리짓이 같이 오고 그리고 그 군인들........ 내 생각에 이번일은 우연이 아닌 것 같아요. 마치 당신을 일부러 끌어들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클레이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문을 세 번 노크하는 소리가 나고, 잠시 후 누군가가 조용히 입구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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