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약속장소로 같이 가자고 했더니 잠시 고민하던 B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M은 오늘 못 만나. 난 따로 할 일이 있어.”

 

클럽으로 들어가기 전에 목발을 짚고 서서 뒤를 돌아봤다. 출발할 때 보였던 침울한 분위기에서 이제는 벗어난 듯 힘찬 걸음으로 내 반대방향으로 걸어가는 B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으면서, 지금과는 좀 다른 상황에서 이 두 사람을 만났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라는 생각을 했다.

 

도시의 최하층에서 살던 나 같은 사람이야 소속된 조직이 있는 것 자체에 감지덕지할 만한 일이지만 이 두 사람이 오랫동안 같이 살아갈 안식처라는 면에서 볼 때, 회사는 그리 좋은 장소가 아니었다. 조직은 자신의 노선을 따르지 않는 직원에게는 자비 없는 감시와 처벌을 가했고, 그 의도가 어떠하든 자신들의 허락을 받지 않고 몰래 진행한 일에 대해서는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모질게 대했다 - 만일 나중에라도 이 둘의 정체가 들통 난다면 조직은 배신자의 끝이 어떻게 되는지 본보기를 보이기 위해서라도 수단을 가리지 않고 이들에게 가혹한 복수를 하고도 남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우리 조직과는 다르다고 B가 말한, 그들 공동체의 정체가 몹시 궁금했다. 그리고 그들이 나를 원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직접 책임자의 얼굴을 보면서 대화하고 싶었다.


 


클럽의 문을 열자마자 실내를 집어삼킬 듯 울리는 음악소리에 귀가 먹먹해졌다. 홀 한가운데서 가면을 쓰고 서로 몸을 비벼대고 있는 사람들 사이를 목발로 휘휘 저으면서 그나마 좀 조용한 구석으로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계획대로라면 이곳에서 M을 만나 아직까지 해결하지 못한 궁금증을 풀 예정이었으나 회사의 윗선에서 그의 외출을 허락하지 않았다. 꽤나 높은 위치에 있다는 조력자의 힘으로도 어쩔 수 없었다고, B가 이야기 해 주었다.

느낌이 좋지 않아.’ 손가락으로 이마를 짚고 얼굴을 찡그린 채로 자동차 안에서 그렇게 말하는 B에게, M은 잘 대처하고 있을 것이라고 위로의 말을 해주었지만, 사실은 나도 좀 걱정이 되었다. 무슨 이유인지 회사의 고위직들은 예상보다 오래 M을 잡고 놔주지 않았다. 만일 그날 우리가 몰래 했던 일들 중에 하나라도 그들이 알게 된다면, 머릿속에 숨긴 비밀을 끄집어내기 위해서 우리의 두개골을 열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그들은 아무런 죄의식 없이 그런 일을 저지르고도 남을 자들이다.

시끄러운 음악소리를 무시하기 위해 눈을 감고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내가 앉아있는 의자 너머로 누군가가 술잔을 테이블로 탁탁 치는 소리가 들렸다.

한 잔 할까요?”

검정색 비닐 같은 재질로 만든 고양이 가면을 쓴 여성이 건너편 의자에 앉아 나를 보면서 술잔을 흔들고 있었다.

지금은 누구를 만나기로 되어 있다. 그 자리는 비어있지 않다고 말하면서 다른 자리로 가라는 의미로 고개를 저었다.

정말요? 내가 당신을 살렸는데 술도 한 잔 안 사나요?”

눈을 크게 뜨고 다시 고양이 가면을 쳐다봤다. 그제야 그녀가 입가에 미소를 띤 채 얼굴의 가면을 벗었다. 금발의 진한 미소를 가진 천사! 그녀였다. 오두막에서 나를 치료해주었던 낡은 줄무늬 남방을 입은 여자!

 

당신이 아는 얼굴이 나 밖에 없어서, 그래서 내가 나왔어요. 모르는 사람은 신용하지 않는 성격이라고 해서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들 집단에 속한 사람 중에 내가 얼굴을 아는 사람은 MB, 그리고 그날 나를 치료해 준 그녀뿐이다. M은 아직 잡혀있고, B는 깊은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내가 머리카락이 그날보다 좀 짧아진 것 같다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더니 그녀가 웃으면서 좀 거추장스러워서라고 말을 받았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그녀에게 그날 구해준 것에 대해서 내 진심을 담아 감사의 인사를 했다.

그녀는 좌우로 고개를 저으면서 으응. 나는 할 일을 했을 뿐이에요. 인사는 마이클이 받아야 해요. 물론 이후에 서로 얼굴은 보았지요?” 라고 말했다.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나서, 그날 당신이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면서 언제부터 내 이름을 알고 있었는지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그날 오두막 앞에서 마이클이 당신 이름을 알려 줬어요. 어떻게든 조니를 살려야 한다면서 필사적으로 당신의 생명을 구하려고 했었거든요 - 좋은 친구를 뒀어요, 조니.”

완전히 동의한다는 의미로 다시 큰 동작으로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보니 아직 내 소개를 하지 않았네요.” 그녀가 웃으면서 자신의 이름을 말 했다.

클로이, 클로이 모레츠(Chloe Moretz). 아는 사람들은 나를 로이라고 불러요.”

조니 타일러(Johnny Tyler)라고 내 이름과 성을 말하자, M과 처음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조니 타일러 좋은 이름이네요. 라면서 그녀가 멋진 미소를 내게 다시 보여주었다.

 

여기에 브리짓도 같이 왔다고 알고 있는지 물었더니 그녀가 놀라면서 브리짓은 어디에 있는지 내게 되물었다.

다른 볼 일이 있다고 어디론가 가더군요.”

내 말을 들은 그녀가 약간 풀이 죽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사실은........”

 

그녀가 말을 시작하자마자 갑자기 클럽 입구에서 큰 소음이 났다. 입구를 지키고 있는 가드와 클럽 안으로 무단으로 들어오려고 하는 한 여자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진 듯 입구에서 서로 고성이 오가고 있었다. 여성의 목소리가 귀에 익다 싶었는데……, 브리짓이었다. 그녀가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 있는 가드들을 주먹과 발을 써가며 하나씩 쓰러뜨리고 있었다. 힘찬 발길질로 덩치 큰 남자의 가랑이를 한 방 멋지게 먹인 것을 마지막으로 브리짓이 우리를 보고선 이쪽으로 쏜살같이 달려왔다.

무슨 일이냐고 묻기도 전에 그녀가 상기된 표정으로 내게 외치듯이 말을 했다.

 

큰일 났어. M이 삭제한 AI 대화내용을 조직이 복구했어. 지금 그들이 오고 있어, 조니. 빨리 도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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