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이쪽으로.”

라이플을 양 손에 쥐고서 한 발짝씩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입구로 들어오고 있는 군인들을 본 클로이가 내 손을 잡고 비상계단이 있는 방향으로 잡아 당겼다. 군인들은 브리짓이 쓰러트린 가드들의 얼굴을 하나씩 확인하면서 이미 클럽의 입구를 막고 있었고, 홀 중앙에서 춤을 추던 사람들은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해 하는 표정으로 가만히 서서 그 군인들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나는 브리짓의 어께를 클로이 쪽으로 한 손으로 밀면서 그녀에게 먼저 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잠깐 기다려.” 가쁜 숨을 몰아쉬던 브리짓이 갑자기 자신의 피스톨을 꺼내어 내 오른 손에 쥐어주면서 내가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을 해 달라면서 말을 했다.

난 같이 갈 수 없어. 날 쏘고 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겨냐고 그녀의 팔을 쳐내자 그녀가 총구를 자신의 배에 대고서는 절망적인 얼굴로 다시 내게 부탁을 했다.

조니, 마이클을 거기에 혼자 둘 수는 없어. 지금은 이게 최선이야.”

내가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자 그녀가 내 오른손에 걸려있는 방아쇠를 자신의 손가락으로 당겼다.

총소리와 함께 브리짓이 바닥으로 쓰러지고 군인들이 총 소리가 난 우리 쪽을 돌아다보는 순간, 마치 누군가가 무선재머를 켠 것처럼 실내의 전등이 깜박거리면서 일시에 모두 터져나갔다. 예상치 못한 어둠에 당황해하는 병사들이 총소리가 난 우리 방향으로 자신의 무기를 난사하기 시작했다. 홀 안에 있던 몇 명의 사람들이 그 총에 맞은 듯 비명소리가 실내에 가득차자 여기저기서 도망가려는 사람들의 검은 형체를 향해서도 그 군인들이 다시 총을 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공간의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로 브리짓의 상처를 확인하려고 그녀가 있는 위치 쪽으로 손을 뻗자 그녀가 내 손목을 꼭 쥐면서 이를 악문 채 이렇게 말을 했다.

조니, 약속해 줘. 반드시 우리를 구하러 오겠다고.”

나는 반드시 그렇게 하겠다고 내 손을 잡고 있는 그녀의 손을 세게 쥐면서 말을 했다. 반드시 너희들을 찾으러 가겠다고.

 

클로이가 서둘러야 한다면서 다시 나를 끌고 가듯 팔을 세게 당겼다. 브리짓의 상처가 걱정되어 자꾸만 뒤를 돌아보자 클로이가 그녀는 괜찮을 것이라면서 여기서 당신마저 잡히면 우리 모두가 위험해 진다면서 나를 다그쳤다.

탈출 장소로 잡았던 비상계단의 문이 갑자기 열리면서 일련의 병사들이 그쪽으로도 들어오고 있었다. 그것을 본 클로이가 탈출로를 다른 방향으로 바꾸었다. 그녀의 손에 이끌린 채 칠흑처럼 어두운 중앙 홀을 기어서 지나 주방으로 생각되는 장소에 다다르자 그녀가 바닥 구석에 있는 오븐의 문을 열고 그 안에 나를 구겨 넣듯이 밀었다.

 

조니가 여기 있다.” 멀리서 브리짓이 외치는 소리를 들으면서 열린 오븐 바닥 밑으로 떨어졌다. 떨어질 때의 충격으로 붕대를 감은 가슴 쪽에서 무엇인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지만 통증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잠시 후 클로이가 내가 누워있던 장소 바로 옆으로 떨어지면서 끙 하고 신음 소리를 냈다. 떨어진 장소가 오븐에서 꽤나 낮은 위치에 있었는지 낙하 충격으로 잠시 정신을 잃었던 것 같다. 클로이가 내 얼굴을 흔들면서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눈을 뜨고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가 어느 틈엔가 손에 작은 플래시를 들고서는 근심어린 표정으로 내 얼굴을 쳐다보면서 작은 목소리로 계속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계속 가야해요.” 내가 눈을 뜨자 그녀가 서둘러야 한다면서 작은 배수관처럼 생긴 파이프 쪽으로 나를 먼저 밀어 넣었다. 역한 냄새가 나는 배수구를 최대한 빠르게 기어가면서도 이상하게도 내 머릿속에는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상하게 꼬여버린 오늘 일진으로 차 안에서 내게 종일 짜증을 내던 브리짓이 내 손에 총을 쥐어준 채로 방아쇠를 당기면서 짓던 절망적인 그녀의 표정도, 조직에 몰래 들어와 이제는 그들 손에 자신의 목숨이 달린 마이클에 대한 걱정도, 내 미래의 계획들이나 지우고 싶었던 과거의 아픈 상처들, 그 모두가 지금 이 순간 내 머릿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다만 좁고 더러운 이 하수구의 썩는 냄새와 노란 플래시의 불빛 사이로 가끔 나타나는 작은 벌레들만이 갑자기 너무 싫어졌다. 내 앞을 가로막듯이 재빨리 기어가는 이 작은 벌레들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미웠다.

숨을 헐떡이며 기어가는 중에도 그런 생각들이 나자 입으로 작게 욕지기가 나왔다. 나는 너희들이 너무 싫다, 너희 작은 존재들을 모두 내 손가락으로 으깨서 없애고 싶다, 멸종할 때까지 내가 하나씩 너희들을 잡아 이 두 손으로 찢을 것이다.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면서 기어가고 있는 내 모습을 뒤에서 보던 클로이가 조용히 내 발을 손으로 잡고는 이렇게 말했다.

 

조니, 당신 탓이 아니에요. 우리 모두가 스스로 결정한 일이예요,”

 

나는 뒤를 돌아보고 그녀를 향해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내 탓이다. 파트너의 일도, 오늘 브리짓의 총상도 모두 내가 책임져야 한다. 그리고…….

다시 정면을 보고 기어가려고 했더니 그녀가 내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고개를 뒤로 돌려 그녀의 얼굴을 다시 쳐다보았다. 눈 가에 물기가 맺힌 듯이 조금 흐려진 눈망울을 한 채로 그녀가 나를 앞으로 가지 못하도록 다리를 붙잡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고 있으니 지금 내 자신이 한심해 보였다. 어떻게 보면 나보다도 그녀가 더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 내가 알지 못하는 그들만의 추억이 더 많고 더 진할 것이다. 그런 그녀도 지금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면서 나를 위해 이 위험한 탈출극을 감행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단순한 감정에 휘말려 어떻게든 화풀이할 대상만 찾으면서 내 감정의 바닥을 그녀에게 보이고 있었다. 한숨이 나오는 상황을 내가 만들고 있었다. 지금은 이렇게 자신을 책망하고 있어서는 안 되었다. 한심한 내 자신의 모습을 비난하는 것은 뒤에 남은 자들을 구하고 난 이후에도 충분한 시간이 있을 것이다. 지금은 어떻게든 앞으로 가야 한다. 다행이도 또 한 명의 동료가 내 뒤에서 나를 향해 앞으로 가자고, 지금은 자신을 책망하기보다는 같이 앞으로 가야 한다고 내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래, 그녀가 옳다. 지금은 어떻게든 앞으로 나가야 한다.

바보 같은 생각에 꽉 막혀있던 나를 일깨워준 그녀를 향해서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그녀도 예전의 미소를 담아서 나대신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를 만큼 앞으로 계속 기어가자 점차 앞의 하수관이 넓어지더니, 얼마 후 일어서기에 충분한 공간이 앞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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