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그런 상처로 어딜 돌아다니겠다는 거야? 난 허가 못하네.”

인사담당자 사무실에서 이십 분이 넘게 Z와 실랑이를 하고 있다. 내가 신청서 상단 오른쪽에 확실히 기록되어 있는 상급자의 허가 싸인 란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서류는 문제가 없음을 지적해도, 그는 그렇더라도, 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았다.

알아, 알아, 그래. 거기 싸인이 있는 것은 나도 봤다고. 그래도 밖으로 보낼 것인지 말 것인지 최종 결정은 내가 하는 거야, 내꺼거든.” 특유의 히죽거리는 표정을 하면서 그가 내 얼굴을 다시 쳐다보았다.

 

일반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사람들은 말을 할 때 상대방 얼굴의 특정 부위를 처다 보며 이야기를 한다. 보통은 눈을 보면서 얼마나 내가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을 해가며 자신의 말을 이어가지만, 몇몇은 빨리 답을 알려달라는 듯 내 입을 보고, 특별히 중요하지 않은 잡담 형식이라면 내 눈과 귀, 혹은 코 주변과 같이 자기가 선호하는 부분을 보면서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이 인사담당자 Z는 말을 할 때에 내 얼굴 어느 한 곳에도 집중하지 않고 있다. Z와 이야기를 하다보면 그가 마치 내 얼굴 전체의 윤곽을 품평하고 있는 듯한 기분 나쁜 느낌이 들었다. - ‘이 친구는 두개골 왼쪽이 짱구네. 이 녀석은 턱이 튀어나왔어. 집 진열장에 올려두기에는 적당치 않아.’

아마도 Z는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하던 내 말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다만 자기가 지껄이는 말이 상대방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그것만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끝날 것 같지 않은 줄다리기를 Z와 하고 있는 중에, 갑자기 인터폰에서 그를 호출하는 띠리링소리가 났다.

Z는 내가 보지 못하도록 뒤로 돌아서서 수화기를 왼손으로 막고는 연신 , 만 말하고 있었다. 통화가 끝나자 그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일 진행이 안 되었나 보다.

위에서 자네의 휴가를 허가하라는 명령이 내려왔어.”

한 번 더 한숨을 쉬면서 내 신청서류에 반 쯤 싸인을 써내러 가던 그가, 또 뭔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나를 보면서 기분 나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곤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노크소리와 함께 브리짓이 방문을 반쯤 열고 고개만 빠끔히 내밀고 무슨 일이냐며 우리를 처다 보고 있었다.


, 위에서 그러라니까 보내긴 하겠는데....... 혼자는 안 되네. 알고 있지? 닥터 혼자서 돌아다니는 것은 위험해. 규칙에 있다고. 둘은 한 팀으로 움직인다. 가더라도 카탈리스트와 같이 가.”


 


 

뭔가 내가 잘못한 것이 있나보다. Z의 방에서 나오고서부터 브리짓은 굉장히 화가 난 듯 내게 이유 없이 성질을 부리고 있었다. 미리 맞춰놓은 목적지까지 달리는 차 안에서도 그녀는 팔짱을 낀 채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입만 삐죽이 내밀고 있었다. 그녀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조심하면서 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어찌 오늘도 일진이 잘 풀릴 것 같지가 않다.

 

달리는 차 안에서, 나도 팔짱을 끼고 그녀를 보지 않도록 눈을 감고 있었는데 그녀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그거 알아? 나는 닥터가 되고 싶었어.” 의자에 기댄 채 고개만 돌려서 그녀를 바라봤다.

마지막 시험에서 난 한 색깔의 스위치만 눌렀다고. 모니터에서 뭐라고 떠들던 간에 그냥 하나만 눌렀어. 그러면 낙제라도 받아서 닥터가 될 줄 알았다고.”

내가 아무런 말도 없이 멀뚱히 처다만 보고 있자 그녀가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팀에서는 내가 예전에 있던 곳의 사람들은 닥터와 카탈리스트 둘 다를 원했어. 마이클은 원래 뛰어난 너도 알지? - 인재였으니까 당연히 카탈리스트. 나는 닥터로 부임 받아 같이 한 팀으로 움직일 예정이었다고. 그런데 내가 망쳤어. 나 때문에 마이클이 부상을 입고 취조도 받았다고. 어떻게든 닥터가 되려고 했는데…….

 

눈시울이 붉어진 채 이런 말을 하는 그녀를 보고서야 이 어색한 상황이 이해가 갔다. B, 브리짓은 마이클을 좋아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녀는 여기 이 조직에 오기 전부터, 그녀의 말에 따르면 이라고 부르는 곳에서부터, 마이클에게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 그래서 나를 그렇게 모질게 대했구나. 이제 이해가 된다. 그녀는 마이클이 다치게 된 것을 내 탓으로, 그리고, 일정부분은 그녀 자신을 원망하고 있었다. 만일 그 자리에 자기가 있었더라면 마이클이 부상을 입지 않을 수 있었다고…….

그리고 어쩌면, 그녀의 생각은 맞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인공지능의 인식코드 변경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따로 시간을 끌지 않았더라면, 혹은 그녀가 마이클의 파트너였다면, 어쩌면, 아무도 부상을 당하지 않고서 그 자리에서 나올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작게 한숨이 나왔다. 어제까지만 해도 나는, 의도하지 않은 일들로 인해 미리 대비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꼬여버린 내 미래에 대해서 작게나마 이들을 원망하고 있었다. 나는, 내 삶에, 내가 잘 설계해 둔 시나리오에 허락도 없이 들어와서 모든 것들을 꼬이게 만들어버린 이 친구들을 탓하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오히려 내가 불청객 이였다. 잘 알지도 못하는 한 남자가 파트너랍시고 그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와 자신들의 계획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게다가 그런 나를 구하기 위해 마이클은 발각될 위험을 무릅쓰고서 하늘로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 이런 미안함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다시 마음이 답답해져왔다.

 

그런 내 마음을 읽은 듯 그녀가 나를 보면서 다시 말을 했다.

네 탓을 하는 것은 아니야. 상황만 보자면 그때 너는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어. 더 심각해 질수도 있었다고 생각해.”

 

조용히 그녀의 눈을 보고 있었더니 어색한 듯 그녀가 얼굴을 창가 쪽으로 돌리고 손으로 눈 주변을 비볐다. 우울해진 분위기를 바뀌기 위해, 나는 그녀가 말한 그 마지막 테스트에 대해서 내가 생각하고 있던 내용을 그녀에게 말해 주었다.

그 마지막 검사 말이야. 네가 하나의 스위치만 눌렀다면, 내 생각에는, 너는 카탈리스트 순위에 일등으로 올라갔을 거야.”

그녀가 다시 고개를 내 쪽으로 돌리며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그 테스트는 정확성을 검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 핵심은 삼초 - 그 삼초 안에 너는 반드시 결정을 해야 한다 그것이 핵심이라고 봐.”

다시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는 그녀를 위해 계속 설명을 이어갔다.

조직은 이런 사람을 원하는 것 같아 - 온갖 방해물들이 네 주변을 복잡하게 만들 때, 선을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너는 얼마나 빠른 시간 내에 결정을 내릴 수 있느냐. 이렇게 본다면 모니터에 표시된 색과 키보드 버튼의 색이 반드시 일치해야 할 필요는 없어 무지개 색은 그냥 판단에 혼돈을 주어 버튼을 좀 더 늦게 누르도록 시간을 끌어보겠다는 이야기이지. 매 화면마다 나와 있던 주의사항의 내용처럼 삼초 내에. 혹은 누가 이런 내용을 먼저 눈치 채고 삼초보다 빠르게 버튼을 누르느냐, 이것이 핵심이거든.”

 

그걸 언제부터 알게 된 거야?” 그녀가 놀란 듯 입을 반쯤 벌리고선 내게 물었다.

문제를 세 개 정도 풀고 나서야 알았어. 화면과 키보드에 덧칠된 색은 가짜다. 핵심은 정해진 시간 내에 뭔가를 누를 것. 그런 의미에서, 카탈리스트가 된 사람들은 정말 대단해. 나보다 먼저 이 시험의 핵심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니까.”

 

아니면 너처럼 하나만 계속 눌렀든가.” 내가 짓궂은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자 그녀가 다시 예전의 날카로운 눈빛으로 변해서는 나를 째려봤다.

이후, 예정된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까지 우리는 조직에서 있었던 자잘한 사건사고들을 서로 이야기하며 차 안에서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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