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A.I. 전문 정신과 의사입니다 #24

 

  “당신,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상태잖아? 방해만 될 뿐이야.”

 

  내 가슴과 허벅지의 상처를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고 싶은 욕망을 애써 누르고 있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보면서, 캐롤라인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당신에게는 그것 그래그래, 브리짓과 마이클을 그것이라고 짧게 말해서 미안해. 그래, 미안하게도 당신에게는 그들의 구출보다도 더 중요한 일이 있어. 당신이 꼭 해야 할 일.”

  “오늘 여기까지 당신을 부른 이유, 그걸 해 줘. 우리 쪽 사람 누구를 좀 만나줘. 당장.”

 

  잠시 잊고 있었다, 내가 여기에 온 이유를.

  그렇다. 난 오늘 이들 조직의 누군가와 만나기 위해 이곳에 왔다. 책임자를 만나 그()과 대화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M(마이클)은 자기가 속한 조직의 힘이라면, (어쩌면) 내가 가지고 있는 의문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할 수 없어. 나 혼자서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거든.” 특유의 눈웃음을 지으며(M이 그렇게 웃을 때면 같은 남자인 나조차도 가슴이 뛰었다) 그가 손짓했다.

  “어쩌면 네가 찾는 그것에 내가, 우리가 큰 도움이 되지 않을지도 몰라. 하지만, 너도 어렴풋이 느꼈겠지만, 우린 조직과 힘이 있어.” 그가 잠시 천정을 올려보고 나서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우린 선의(善意)가 있어. 그리고,”

  “그리고, 너로 말하자면.” 그가 다시 눈웃음을 지었다.

  “네가 같이한다면, 우리에겐 큰 힘이 될 거야.”

 

  하루 휴가를 내어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는 사실 대화라기보다는 협상에 가까운 만남이 될 공산이 컸다. 이들이 내게서 원하는 것은 아마 내가 가진 그것일 터인데, 나는 이들이 그 대가로 내게 무엇을 제안할지가 궁금했다 - 그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일이 이렇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M은 만남에서 내 안전을 보장했고 나는 호기심이 일었다. 한 번 M이 속한 조직의 이야기를 들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최악의 결과는 그냥 재수 없는 휴가를 하루 보내는 것, 그뿐이라고 여겼다.

 

 

 

  우리는 건물에서 빠져나와 미리 준비된 차를 타고 개방된 도로를 달린다. 아직도 길 중간중간에는 검문 불응 차량의 타이어를 터뜨리기 위한 스파이크와 강철봉으로 봉쇄되어 있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우리는 제대로된 검문 한 번 받지 않고 줄곧 빠른 속도로 검문소를 통과하여 달릴 수 있었다. 안전 가옥에서 빠져나가기 전에 캐롤라인이 자신이 가져온 가방에서 주섬주섬 투명우의(비 올 때 입는 옷) 두 벌을 꺼내 나와 캐롤라인에게 입혔는데, 이것이 우리의 존재를 숨겨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시원하게 속도를 내는 차 안에서, 캐롤라인이 고개를 돌려 내게 말했다.

  “이제 좀 살 것 같네. 그래, 상처는 어때 조니?”

  나는 고개를 숙여 가슴과 허벅지 쪽을 쳐다보았다. 투명한 우의 안쪽의 셔츠와 청색의 바지는 아직도 붉은 피로 물들어 있었지만, 그곳에서 강한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클로이가 제대로 치료한 것 같다. 나는 괜찮다고 말했다.

 

  “, 그럼 이제 이야기를 좀 해 볼까? 목적지까지는 꽤 멀어서 이렇게.” 그녀가 나와 클로이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자신의 두 손가락으로 입을 꼬집듯 잡으며 오물거렸다.

  “이렇게 조용한 분위기는 영 불안하다고.”

  “궁금하지? 우리가 누구이고 뭘 하는 사람들인지 말야.” 캐롤라인이 자신의 손가락을 입에서 떼며 말했다.

  “우린 데몰리션은 아니야. 그렇다고 유니온은 더더욱 아니지.” 그녀가 단발을 쓸어 솜털이 부드럽게 숭숭 난 목덜미를 (난 신경 단말이 없다는 의미로) 내게 살짝 보여주면서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데몰리션이 아니었다라고는 말할 수 없고.”

  “그리고 유니온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껄끄럽지.”

  “무슨 의미죠? 알 수 없군요.” 내가 말했다.

  “그러니까, 과거의 이야기. 과거에 한가닥하던 과격분자인 사람도 있고, 단말을 목에 차고 다니던 - 좀비 같던 인간들도 있다는 이야기지. 그러다가 지금은 이렇게 (그녀가 엄지손가락을 자신의 가슴에 대면서) 개과천선하거나, 혹은 인간성을 다시 찾은 사람들이라는 말이지.”

  “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 설명이 잘못됐나. 그러니까 나는, 아니 우리는...... 그러니까 말이야. 과거가 좀 있는 편이야, 나쁜. 하지만 지금은 그런 나쁜 일들은 안 하고 있고......”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다시 그녀를 쳐다봤다.

  “. 우린 사람들을 돕고 있어 물론 결과적으로 보면 꽤나 큰 문제를 만들기는 하지만, 방금 클럽에서 있었던 일처럼 말이야 하지만 원론적으로 보자면, 우린 사람들, 인간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나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캐롤라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캐롤라인이 도와달라는 듯 클레이를 향해 어깨를 으쓱하자 클레이가 그녀의 말을 이었다.

 

  “우리 조직은 데몰리션 출신들이 많아요. 물론 유니온이었던 사람들도 있구요.”

  “우리에게 살아온 배경은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것은 사람. 인간다운 삶을 살고자 하는 의지. 그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요.”

  “지금 우린 어떤 위협에 맞서고 있어요. 사람들, 그리고 이곳을 지키기 위해.”

  “사실, 오늘 클로이가 이 말을 하며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당신을 만나 이야기하려고 했던 내용은 이것이에요. 위협. 모든 생명을 사라지게 할 위협에 대한 도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듣고 있었다.

  “당신이 속한 조직 - D.D.T, 재밌는 이름이에요 - 회사는, 어떤 음모에 가담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알지 못했어요. 우린 그저 욕심 많은 회사의 자본축적 정도로 생각했는데, 실상은 심각했어요.”

 

  “진작 알았어야 했는데. D.D.T, 정부, 아니 초정부적 존재와 거래하고 있어요. 지구의 자원, 생명체 전체를 말살할 수 있는 모종의 일들을 벌이고 있어요.”

  “그 음모가 무엇인지 우리는 잘 알지는 못해요, 지금은. 하지만,”

  “조니, 듣기로는 당신이 열쇠라고 했어요. 우리 - ”

  여기까지 듣다가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그 소리가 컸는지 클로이가 잠시 말을 멈춘 후에 무릎 위에 반듯하게 모아둔 손을 펼쳐 손바닥을 한 번 쳐다본 후, 계속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우리 지도자에 따르면, 당신이 필요하다고 했어요. 해답을 찾는 일에. 그리고, 그녀는 당신의......”

 

  “, 정말 깔끔한 설명인걸!”

  캐롤라인이 갑자기 두 손으로 손뼉을 쳤다.

  “상세한 내용은 말이야, 도착하면 직접 듣는 게 낫겠어.”

  “기다리고 있다고, 당신을. 우리 책임자가.”

 

  캐롤라인이 대화에 끼어든 탓인지 이후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캐롤라인만이 알 수 없는 노래를 흥얼거렸다. 음으로 보아 군가의 일종인 것처럼 들렸다. 가끔은 흥이 나는지 손가락을 튕기며 리듬을 타면서 다다다라고 가사 일부를 부르기도 했지만, 나와 클로이는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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