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유니온의 일원이었다는 그의 말을 듣고 놀란 나를 지그시 쳐다보면서 ‘M’은 다시 말을 이어갔다.

기억나나? 대규모 정전으로 도시가 마비된 날. 커뮤니티 접속이 불가능해지면서 도시 전체가 아비규환이었지.”

나는 생각난다고 대답했다. 그날은 스미스의 작은 난쟁이 하나가 미친 듯이 도시의 배선을 타고서 시내 전체 가정의 전압선들을 모조리 태워버린 사건이었다. 원인은 예전 조직의 엔지니어 팀이 버그수정이랍시고 넣어둔 한 코드에 감염된 그 AI 때문이었고 그 여파로 도시가 몇 주일 정도 마비되었던 큰 사건이었다.

처음엔 나도 다른 유니온들과 같았어. 커뮤니티에 접속하지 못하니 미치는 줄 알았지.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화를 내는 것도 지쳐갈 때 쯤 깨달았어. 유니온의 커뮤니티에 있는 동안은 알지 못했던 사실. 그래, 커뮤니티에는 내가 없다는 것. 나라고 하는 정체성이 그곳에서는 일 그램도 없었던 거야.”

마른 침을 삼키며 진지한 표정으로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는 내 모습이 우스워 보였는지, 새하얀 이가 보일정도로 하하 웃으면서, 그가 계속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커뮤니티 안에서는 모두가 행복해. 거기에 있으면 내가 모두가 되고 모두가 내가 된다네 내 생각이 그들 집단의 생각이고 그들의 생각이 바로 나를 만들지. 그런 의미에서, 개성이 없어. 거기엔 개인의 정체성이 없네. 그런 깨달음으로 거기서 나온 거야.”

 

말도 안 된다. 나는 알고 있다. 그들이 만든 그 향락적이고 퇴폐적인 한 커뮤니티를. 그 곳에 한 번 발을 디딘 유니온은 절대 빠져나올 수 없다고 들었다. 인간의 상상력은 무한하고 특히 성적인 부분에서라면 다른 외계생명체들 만일 그들이 존재한다면 마저 두 손 두 발 들게 할 만큼 무시무시한 상상력이 발휘되는 분야가 외설이다. 그리고 유니온들이 독점한 가상현실에서 그 분야의 진화속도는 독보적이였다. 단지 자신의 개성을 찾기 위해 유니온에서 나온다고? 그것도 그 위험한 생체단말 제거 시술을 받으면서? 게다가 카탈리스트가 되겠다고 조직에 자원을 해? 웃기는 소리다.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이 틀림없다.

내가 이런 생각을 갖고 의심의 눈초리로 그를 쳐다보자, 다 안다는 듯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고서는 좌우로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여기까지라는 신호이다.

 

아직 내 이름을 정식으로 소개하지 않았군.” 그가 화제를 돌렸다.

난 마이클, 마이클 마이어스(Michael Myers) 라네.”

내가 내 이름을 말하려고 하자, 그가 이미 알고 있다면서, 조니 타일러, 좋은 이름이다라고 말해 주었다.

우리는 웃으며 첫 만남에서의 손 악수와는 다르게 서로의 손목을 잡고 힘차게 흔드는 식의, 기분 좋은 악수를 했다.

남은 시간은 거의 내 자신의 과거 이야기로 채웠다. 나는 내가 조직에 온 이유와 (물론 나도 모든 것을 털어놓지는 않는다) 내 가족과 그리고 거부된 자로서의 불행한 삶에 대한 이야기를 그에게 들려주었다. 그는 자신과 같은 사상이라고 생각되는 내 의견에는 고개를 끄떡이며 찬성해 주었고, 내 삼류 농담에도 (최소한)미소를 지어 주는 매너를, 불행한 과거에 대해서는 같이 침울해하면서 자신이 나와 감성적인 교류도 가능한 즉, 이미 유니온의 틀에서 벗어난 하나의 개별 인간임을 내게 증명해 보였다.

 

M과 헤어지고 난 후, 혼자 방의 침대에 누워 오늘의 일들을 곱씹어 보았다. 개성을 찾기 위해 유니온에서 벗어났다는 그의 말을 전부 믿을 수는 없었지만, 누가 첫 만남부터 상대방에게 자신의 내밀한 비밀을 모두 이야기하랴. 사정은 차차 알아 가면 될 것이다.


 

유니온들은 우리들 즉 생체단말을 삽입할 수 없는 사람들을 거부된 자라고 불렀다. 자연이, 우주가, 우리 같은 사람들이 자신의 단체에 들어 올 수 없도록 거부반응을 만들었다면서 비하와 조소를 담아 우리를 그렇게 불렀다. ‘너희는 거부된 자야. 우리 낙원에는 올 수 없어. 그것이 자연의 섭리다라면서.

첨단 분야부터 잠식해 가던 유니온들이 일반 기업의 일자리까지 독차지해 가자, 우리들 거부된 자는 도시의 바닥 끝자락으로 내팽개쳐졌다. 먹을 것이 없어 도시의 음식 쓰레기를 주워 먹으며 살고 있던 사람들은 정부에 자신들의 참상을 보아달라며 시위를 시작했으나, 국민의 2%남짓밖에 안 되는 그들의 외침을 정부에서는 철저히 외면했다.

보다 못한 한 자원봉사자가 그들을 모아 집단을 만든 것이 인본사상파, 여기에는 자신의 사상과 신념으로 시술을 일부러 거부한 사람들도 여럿 있었다. 평화적인 시위에 정부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자, 그들은 테러라는 폭력적인 수단을 사용하기로 했다. 모든 인공지능의 어머니 스칼렛을 파괴하기 위해 자살폭탄 테러를 감행했으나, 이는 무고한 희생자만 내고 실패로 끝났고 이에 정부는 유니온을 동원한 무력발포로 사상파의 외침에 똑같은 폭력적인 답을 내놓았다. 큰 사상자를 낸 이 참극으로 두 세력은 서로를 증오하게 되었다. 그리고 가상세계에 빠진 대부분의 유니온들이 거부된 자에 대해 무관심으로 대하지 않았다면, 아마 이들은 지금 살아있을 수 없었으리라, 그리고 나도 살아서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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