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삐걱거리는 오두막 문을 열고 집 안에 들어가 천천히 주변을 살펴보았다. 나무로 된 작은 책상 위에 와이어로 연결된 구형 단말이 놓여 있었고 집 안은 오래 전에 살던 사람들이 모두 떠난 듯, 찬장에 일부 깨진 접시와 부서진 나무 의자 외에 몇몇 쓰레기만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마이클이 먼저 앞장서서 주변에 흩어져 있는 나무상자 두 개를 양쪽 손으로 잡고서는 탁탁 털면서 책상 쪽으로 다가갔다.

이걸 의자 대신 쓰면 되겠지? 다음엔 접이식 간이의자라도 가져 오자고.”

부서질 듯한 상자를 의자삼아 조용한 오두막에 우리 둘이 나란히 앉아 있자니 마치 소개팅 하는 것 같다고 내가 이야기하자, 마이클이 이런 상황에서 농담이 나오냐고 키득거리며 웃었다.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바꾸고선 내가 터미널의 스위치를 켰다.

 

[접속을 위한 비밀문자를 입력하세요.]

모니터에 전원이 들어오자 한 문장만 나타나고 아래에 커서만 깜박인다. 내가 닥터로서 나에게 주어진 비밀문자를 입력하려고 키보드에 손가락을 올려놓으니, 늘 그렇듯 마이클이 뒷짐을 지고 뒤로 돌아서서는 짐짓 딴 짓을 한다. 난 안보고 있다는 의미로.

내가 보안문자를 빠르게 모두 입력하고 나자 모니터에 내 일반정보가 표시되고, 다음 단계로 진행하라는 문구가 나타났다.

[확인이 완료되었습니다, 닥터 ‘J’ (D.D.T 일반직원). 이제부터 하위 AI의 상태 검증을 위해 실시간 접속을 진행합니다.]

 

, 이제부터 시작이다. 화면에 난쟁이와의 접속이 완료되었다는 글자가 나오고 나서 바로 정신감정 대상인 AI가 화면의 텍스트로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캘리(Cally)입니다. 오늘은 날씨가 정말 좋군요. 그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실무 첫날의 업무 치고는 좋지 않은 전개였다. 우선, AI가 코드명이 아닌 자신의 고유 이름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검증하려고 하는 인공지능이 만들어진지 오래 되었다는 의미였다. 게다가 말이 너무 많다. 닥터가 비밀번호로 접속하는 순간부터 인공지능도 안다, 자신이 어떤 테스트를 당하는 대상이라는 것을. 보통의 경우에는 그들도 불쾌한 표정을 짓는 듯 무뚝뚝하게 답을 한다. 그런데 이 AI는 고유 이름도 있고 쓸데없이 친절한 태도로 우리를 대하고 있다.

 

내가 기록표에 그런 내용을 적고 있자, 마이클이 침을 꼴깍 삼키면서 내 작업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네 실제 코드명을 표기해 줘. 전체를]

내가 키보드로 입력을 끝내자마자 즉시 답이 올라왔다.

[코드명 CA-2674893994-1221입니다.]

법과 관련된 인공지능 시저의 작은 난쟁이 중 하나다. 생성코드 맨 뒷 네 자리 중 앞자리가 일로 시작하는 것으로 보아 태어난 지 오래되었다는 내 생각이 맞았다. 나는 앞으로 내가 질문을 할 것이고 그에 대한 솔직한 답을 원한다고 키보드로 입력했다.

[질문은 몇 개나 하실 건가요?]

 

이 새로운 전개에 우리 둘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어리둥절해 했다. 시뮬레이션에서는 AI가 닥터에게 질문을 한 경우가 전혀 없었다. 보통의 경우에는 질문이 끝나면 끝났다라고 입력하고선 전원 스위치를 내리면 되었다. 이 상황에 대해 잠시 생각하다가 내가 질문지 세 개 중에 ‘B’형을 고르고선 전체 질문 내용을 확인하고, [108]이라고 입력하자 마이클이 끙 하는 소리를 내었다. 내가 인공지능의 질문에 답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듯이.

 


 

이후부터는 순차적으로 질문지에 들어있는 내용을 입력하고 AI가 모니터에 출력하는 답을 하나씩 답지에 기록해 갔다. 일일이 키보드로 질문들을 하나씩 입력해야 하는 무척이나 지루한 작업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카탈리스트가 존재하기 전에 음성과 몸짓, 혹은 생체단말로 직접 연결하여 인공지능을 상대하던 예전 닥터들이 AI에 의해 정신적으로 오염되거나 그것에 감정적으로 동화되어 인공지능의 편에 선 사건이 발생한 이후부터, 모든 테스트들은 고전적인 방법으로만 진행하도록 변경되었다.

 

키보드로 입력하고 있는 중간에 집 밖에서 바람이 불고 있는지 문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갑작스런 소음에 내가 흠칫해 하자 그가 확인을 해 보겠다면서, 뒷주머니에서 작은 권총을 꺼내들곤 밖으로 나갔다. 피스톨을 조심히 두 손에 움켜쥐고서 밖을 살피러 나가는 마이클을 보면서 나는, 새삼 우리들의 위치에 대해서 내가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생각해 보았다. 우리들의 즐거운 분위기에 취해서 나는 그가 카탈리스트라는 것을, 내가 정신적으로 빈틈이 보이면 그는 주저 없이 나를 향해 방아쇠를 당길 것이라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다. 조직은 그 목적을 위해 그를 고용했고,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가 어떤 무게감을 갖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문제가 생기면 그는 그 문제가 무엇이든 확실하게 제거할 것임을 나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생각으로 멍하니 모니터를 보고 있자 그가 언제 들어왔는지 나를 툭 치고선, 바람소리였던 것 같다고 말하고 걱정하지 말라는 듯 미소를 내게 보였다.

 

지루한 작업을 완료하고, 계산된 결과 값을 놓고서 우리 둘은 그 수치가 의미하는 바를 한 항목씩 확인해 갔다. 결과는 전반적으로 정상이었다. 다만, 우리가 즐거움이라고 부르는 활동성항목이 보통을 약간 상회하는 59를 기록하고 있었다. 활동성 수치가 높다는 것은 그만큼 인간을 대할 때 친밀한 행동을 좋아한다는 의미였다 - 혹은 새로운 대화 대상자가 나타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 즉 자신감, 자기만족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 수치로 볼 때 처음 이 인공지능이 우리에게 친절한 태도를 보였던 이유가 설명이 되었다. 심각한 것은 없었다. 주의 깊게 확인해야 하는 수치는 호기심 쪽이었고 의외로 이 부분은 평균치 이하를 기록했다. 나머지 수치들은 정상치인 50에 위아래로 거의 근접해 있었다.

내가 각 수치의 가중치에 대해 마이클에게 설명하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의견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문제가 될 만한 항목은 없었다. 우리가 검사한 인공지능은 한 항목을 제외하면 거의 완벽할 정도로 정상이었다. 안전하고 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낸 것을 서로 축하하는 의미에서 서로를 향해 엄지를 들어 올리는 순간에, 모니터에 새로운 문장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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