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어떻게, 결과는 잘 나왔나요? 덕분에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J.]

 

우리 둘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꼼짝도 하지 못했다. 모니터에 쓰여 있는 문장이 뜻하는 것은 단 하나였다. 마이클이 즉시 기계 앞에 있는 키보드를 당겨 자기 자리 쪽으로 돌리는 것을 보면서 나는 머릿속으로 현재 상황을 빠르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지금이 기회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기계, 캘리가 그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날의 기억이 남아 있을 수도 있다. 지금 삭제를 진행하면 영원히 진실을 알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키보드 위로 올리는 그의 손을 내가 잡아채면서 그에게 시간을 달라고 하자, 그가 표정 없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가 나를 쳐다보는 일초 일초가 마치 영원인 것 같았다. 주머니에서 피스톨을 꺼내 당장 방아쇠를 당긴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AI나는 거짓말을 할 줄 알아라는 의미로, 한 줄의 문장으로 우리에게 도발을 감행했다. 이는 그것이 즉각적인 제거 대상임을 뜻하며 그런 인공지능을 즉시 삭제하려고 하는 카탈리스트를, 내가 막아서고 있는 것이다.

나는 후회하기 시작했다. 미리 그에게 내 솔직한 이야기를 했어야 했다. 그가 받아들이든 아니든, 이런 경우를 예상했어야 했다. 임무 첫날 변칙적인 AI가 등장할 수도 있음을 미리 계산하고 처음부터 내 속내를 털어놓았어야 했다. 그래서 내가 지금 이럴 수밖에 없음을 그에게 미리 알렸어야 했었다.

마침내 그가 고개를 천천 끄덕이며 내 쪽으로 키보드를 돌려주었다.

 

시간이 얼마 없다 - 서둘러야 한다. 빠르게 현재 접속을 끊고 다시 시저로 접속하여 명령을 내렸다.

[CA-2xxxx4-1221의 코드명 변경 이력을 출력해.]

[수행불가. 권한이 부족합니다. 관리자 이상의 접속코드가 필요합니다.]

흥건히 땀으로 젖은 얼굴을 대충 손으로 닦아내자 손끝에서 키보드로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다시 접근 방향을 틀었다.

[CA-2xxxx4-1221의 부트스트랩로더를 올리고 기계어 모드로 변경]

화면 전체가 숫자와 문자로 가득 차자, 지켜보던 마이클이 반쯤 입을 벌린 채로 내게 물었다.

어떻게 한 거야?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야?”

대답할 시간이 없다. 빠르게 코드를 눈으로 읽으면서 캐리의 실제 코드명을 찾아나갔다.

있다. 아직 지우지 않았다! ‘4A4F2D32XXXX342D30303133’ 입으로 말하면서 머릿속으로 그 번호를 외워두었다. 그리고 키보드를 다시 마이클에게 넘겨주었다. 마이클이 뚱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는 터미널에 재접속을 한 다음 열 손가락을 동시에 눌러 일초도 안 되는 시간에 자신의 비밀문자를 입력했다.

[확인이 완료되었습니다, 카탈리스트 ‘M’ (D.D.T 일반직원). 지금부터 CA-2674893994- 1221의 삭제작업을 진행합니다.]

화면에 문자가 표시되는 동시에 오두막 문 쪽에서 무엇인가가 작은 물체가 튀어나와 마이클의 팔을 뚫고 모니터에 박혔다.

 

커다란 못이었다 대못이 오두막의 문을 뚫고 마이클의 오른팔을 관통해 지나갔다. 상황이 심각한 쪽으로 흐르고 있다. 혁대를 풀어 마이클의 다친 팔을 지혈하고, 바깥 상활을 파악하기 위해 빠르게 문 쪽으로 가려니까 마이클이 자신이 가지고 있던 피스톨을 내 손에 쥐어주었다.

잠시만 지켜주게. 삭제까지 얼마 남지 않았어.”

 

밖에서는 단말 쪽으로 접근하려는 마이클을 저지하려는 듯 우리를 향해 지속적으로 대못을 쏘아대고 있었다. 피스톨을 쥐고 옆으로 엎드린 채 벽에 기대어 문 틈새로 밖의 상황을 살펴보았다. 문 앞에는 두 대의 로봇이 기능이 정지된 채 바닥에 누워 있었고(오두막에 몰래 침입하다가 무선재머에 의해 연결망이 끊겼을 것이다), 공사장에서 온 듯한 로봇에 네 대 가량 멀찍이 서 있었다. 하나는 커다란 덩치에 양 손을 집게처럼 접었다 폈다 하면서 우리가 타고 온 차량을 두 동강 내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외눈처럼 보이는 커다란 렌즈를 오두막을 향하여 우리를 감시하고 있었으며, 다른 하나는 이 로봇들을 싣고 온 듯한 큰 트럭이었다. 마지막 녀석은 트럭 천장 위에 달려있는 작은 로봇으로 그것의 손에 달린 네일 건을 사용하여 우리 오두막 쪽으로 대못을 발사하고 있었다. 내가 문을 조금 열자 우두두 소리를 내면서 열린 문 쪽으로 못들이 박히는 소리가 다시 들렸다. 지켜보고 있는 외눈이 부터 처리해야 한다. 단 한 발로 저 렌즈를 부숴야 한다. 다른 생각을 할 여유도 없이 피스톨을 양 손으로 받치고 벽 틈 사이로 커다란 렌즈를 겨냥하며 방아쇠를 당겼다. 큰 총소리와 함께 외눈이의 렌즈가 박살나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동시에 대못 몇 개가 내 오른 쪽 가슴을 뚫고 지나갔다.

 

숨을 쉴 때마다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폐를 관통한 못은 내 뒤 바닥에 깊숙이 꽂혀 있었다. 어느 틈엔가 마이클이 기어서 다가와 자신의 왼팔로 내 가슴을 누르면서 괜찮은지 물었다. 가슴에 구멍이 몇 개 났는데 상태가 좋아 보이냐고 말하려고 했는데 말 대신 입에서는 빨간 거품만 나왔다. 오두막 밖에서는 작은 로봇이 계속 이쪽 방향으로 대못을 쏘아대고 있었지만 못이 향한 방향은 우리와는 거리가 먼 쪽으로 날아갔다. 외눈이가 없으면 정확하게 조준하지 못하는 것이 분명해졌다. 그러나 그것만 믿고 지금 바로 밖으로 나가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상처가 심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재머의 배터리만 확인하면서, 온다는 확신은 없지만, 구조팀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박살난 차량에 최소한 비상 신호 자동발신 정도의 조치는 되어 있겠지, 아마) 그러나 우리 둘 다 받은 상처가 심했다. 그만한 시간적 여유는 없다. 마이클의 상처는 보기보다 깊은 듯 지혈을 한 팔이 파랗게 부어오르고 있었고, 나는 이대로라면 이십분을 넘기기 어려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에게 불리했다.

잠시 숨을 고르고 입에 고여 있던 핏덩이를 뱉어내고 일어나 무릎을 꿇은 자세로, 내가 가진 재머를 흔들어 보이며 그의 것을 손으로 찍은 후, 다시 문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마이클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손가락으로 1, 2, 3 하고 세는 순간, 우리 둘은 오두막 문을 박차고 나가 각자의 무선재머를 그 로봇들이 있는 장소로 힘껏 던졌다.

대못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내 귀 가까이에 들리고, 오른쪽 허벅지에 또 다른 통증이 느껴졌다. 내가 던진 것은 차량을 두 동강 내고 있던 거대한 가위손을 가진 로봇 근처로 떨어졌고, 마이클의 재머는 정확하게 트럭 안으로 들어갔다. 동시에 로봇들이 모두 정지했고, 나도 같이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마이클이 구멍이 난 내 가슴에 자신의 왼손을 힘주어 누르면서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던 것 같다. 상의 없이 흰 셔츠만 입은 그의 탄탄한 가슴근육을 바닥에 누워서 올려다보고 있자니, 얼마나 운동을 열심히 해야 저렇게 될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어느새 마이클이 왼 손에 신호탄을 쥐고서는 결심을 한 듯한 굳은 표정으로 하늘을 향해 길게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허공을 가르는 노란색 구름을 보면서 나는 다시 정신을 잃었다.

 

소란스러운 사람들의 소리에 눈을 다시 떴다. 마이클 대신 파란 눈을 한 금발의 멋진 아가씨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간신히 목소리를 내어 당신은 천국에서 온 천사냐고 내가 묻자, 그녀가 진한 미소를 띤 얼굴로 내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잠시 정신을 잃었던 것뿐이에요. 이제 괜찮아요. 당신을 구하러 왔어요, 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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