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검게 그을린 방 안에 한 소년이 난로를 뒤에 두고 홀로 책상에 앉아서 무엇인가를 쓰고 있다. 겨울의 매서운 바람이 아이가 있는 방의 창문을 좌우로 흔들어댔지만 아이는 상관없다는 듯 글만 계속 쓰고 있다. 갑자기 방문이 열리고 남녀 한 쌍이 아이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자 아이가 그들을 따라간다. 내가 그 모습을 보고 큰 소리로 가지 말라고 소리 지르려 했지만 입이 열리지 않는다. 점점 멀어지는 그들을 보고 다급한 마음으로 빠르게 발을 옮겨 보았지만 끈적거리는 불쾌한 붉은 색 액체가 내 허벅지까지 차오르며 걸음을 막고 있다. 잠깐만 기다리라면서 그 아이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부르며 눈을 떴다.


정신을 차려보니 작은 방에 나 홀로 침대위에 누워 있었다. 심한 갈증에 물을 달라고 소리를 내려고 했더니 구렁이 같은 두꺼운 플라스틱 호스가 내 입에서 가슴까지 이어져 있어서 입을 닫을 수조차도 없었다. 이 둥글고 불쾌한 물체를 빼려고 팔을 위로 뻗자 오른 손에 채워진 수갑이 침대 모서리의 철제 프레임에 걸려 딸깍하는 쇳소리를 냈다. 잠시 숨을 고르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푹신한 침대에 꽤 오래 있었던 듯 매트리스가 엉덩이 쪽이 아래로 꺼져 있었고, 휜 색의 붕대가 숨쉬기조차 힘들 정도로 단단하게 가슴을 압박하고 있었다. 머리께 쯤에는 두 개의 비닐 백에서 노랗고 흰 액체가 내 왼팔에 꼽힌 바늘 쪽으로 한 방울씩 떨어지고 있었다.

방 안의 풍경으로 보아 나는 조직의 의무실에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상당량의 출혈에도 아직 살아 있는 것으로 보아 구조대가 제때 나를 치료 한 것 같다. 안도감에 한 번 숨을 깊게 쉬어 보았더니 바늘로 찌르는 듯한 가슴의 통증에 [] 하는 소리가 침과 함께 닫을 수 없는 입에서 흘러 나왔다.

 

눈을 감고 그날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다시 되짚어 보았다.

차로 오두막에 도착해서 단말에 전원을 넣고 절차를 진행했는데……. 아니다. 차 안에서 재머의 전원을 넣은 후 오두막으로 들어가 기본적인 검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중간에 M이 팔을 다쳤고……, 틀렸다. 뭔가 중요한 핵심이 빠졌다. 두통이 몰려왔다. 그러나 서둘러서 그날의 기억을 확실히 떠올려야 한다. 기억을 최근의 것부터 거꾸로 다시 더듬어 보았다.

 

내 눈에 들어온 마지막 모습은 여천사, 아니, 칼라가 조금 헤진 세로 줄무늬 남방을 입고 있던 푸른 눈의 천사와 같이 예쁜 아가씨였다. 그녀가 구멍이 난 내 가슴에 튜브를 삽입하여 응급처치를 해 준 덕분에 내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조직의 (진짜 사람을 치료하는)닥터였을까? 아니다. 우리 조직이 사용하는 제복에는 낡은 줄무늬 남방이 없다. 그렇다면 조직원이 아닌 자가 어떻게 우리가 있는 위치를 알고서 나를 살릴 수 있었을까? 눈을 감고 다시 그날의 기억을 계속 되짚어 보았다.

정신을 잃기 전에 M의 손에 들린 신호탄이 멋진 노란색 구름을 만들면서 하늘을 가로지르던 것이 기억난다. 그렇다. M이 부른 것이다. 우리의 위치를 알리기 위해 그가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이 틀림없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머지 일들에 대한 기억이 좀 더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오두막에서, 구형 터미널로 무단으로 접속해온 또다른 인공지능이 우리에게 도발적인 메시지를 남기고 도망가려고 할 때, 내가 그것의 코드명을 간신히 알아내자 ‘M’, 마이클이 난쟁이 그날따라 기분이 좋았던 불쌍한 AI를 삭제하려고 했다. 그 와중에 우리는 원격조정으로 움직이는 건설 로봇의 공격을 받았다. 심각한 상처(라고 생각이 들어 몸의 관절들을 하나씩 움직여 보았다. 뚫린 가슴은 아직도 숨을 쉴 때마다 바늘로 찌르는 듯 아프지만, 무엇보다 오른쪽 허벅지 위에 감긴 압박붕대가 자꾸 거슬린다. 부디 그 위쪽에 달린 내 기관이 온전한 하나의 모습으로 잘 붙어있기를......)를 입고 임기응변으로 간신히 위기를 넘겼지만 내 벌어진 상처의 출혈은 응급을 요했다. 만일 그때 치료를 받지 못했다면……. 거기까지 생각하곤 다시 깊게 숨을 내쉬었다.


 


며칠이나 이곳에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 파트너는 지금 조직의 강도 높은 취조를 받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 도망가지 못하도록 내 오른 손에 채운 수갑이 내 추측이 음을 강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어떻게든 마이클과 연락을 취해 서로 입을 맞춰야만 한다. 만일, 단 하나라도 서로 다른 이야기가 나오면 조직은 우리의 두개골을 열어 거기에 전극을 꼽아서 우리의 생각을 뽑아내는 일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서둘러 연락을 취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방문이 열리며 몇 명의 사람들이 노크도 없이 병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