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 이제야 깨어났군.”

의사인 듯 흰 가운을 입은 중년의 남자가 눈을 뜬 나를 보더니 반갑게 인사를 했다. 의사 뒤로 군복을 입은 남자 두 명이 같이 따라 들어왔는데, 한 명은 나이가 지긋한 신사스타일로 멋지게 콧수염을 길렀고 가슴에는 무공훈장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것으로 보아 꽤 높은 계급의 군인으로 보였다. 다른 한 명은 젊은 장교로 왼쪽 혁대에는 반짝이는 권총을 차고선 차갑고 경계심 많은 눈으로 침대에 누워있는 내 모습을 흘깃거리면서 마지막 순서로 방에 들어왔다.

의사가 내 몸에 연결된 각종 장치들의 수치를 확인하고 작은 휴대용 플래시로 내 눈을 살피고 나서, 나이든 장교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콧수염이 있는 나이든 장교가 헛기침을 한 번 한 후에 내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살아 돌아와서 기쁘네.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 했지. 다행히 위급신호를 받은 우리 군이 서둘러 출동해서 조직의 우수한 재원을 구할 수 있었지, . 그런데 말이야, 어떻게 로봇들이 자네들이 있는 곳의 위치를 알고 거기까지 가게 되었나?”

 

웃음이 나와서 하마터면 그쪽으로 침을 튀길 뻔했다. 기다려도 내가 컥컥거리기만 하고 대답이 없자 의사가 헛기침을 하고선 장교의 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그래, 내 입 안에 깊숙이 꼽힌 인공호흡기를 뻔히 쳐다보고 있으면서 어떻게 내가 질문에 답변을 할 수 있다고, 뒷짐을 지고선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거야? 바보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사실, 나도 그 부분은 궁금했다. 어떻게 로봇들이 우리가 있는 위치를 미리 알고 습격을 할 수 있었을까? 스칼렛의 아이들이 연결된 구형 터미널의 위치는 일급비밀이다. 그런 이유로 우리가 타고 가던 차량도 밖을 볼 수 없도록 검은 유리를 사방으로 둘러쳐 놓았고, 방향을 알 수 없도록 차량도 여기저기를 빙빙 돌고나서야 목적지에 도착했었다. 일반등급의 직원이 알 수 있는 정보가 아니다. 조직의 고위층에서 누군가가 비밀을 빼돌렸거나, 아니면.......

 

장교의 귀에 속삭인 의사의 말이 효과가 있는 듯 장교가 흠칫 놀라면서 다시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선 언제쯤 호흡기를 제거할 수 있는지 의사에게 물었다.

상황이 지금처럼 호전된다면 내일이면 뗄 수 있겠지요.”

의사의 그 말이 한편으로는 반가웠다. 작은 호스구멍 사이로만 숨을 쉬려고하니 너무 불편했고 입을 닫을 수 없어서 그 안이 몹시 건조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내일이면 이들의 심문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에 다시 마음이 무거워졌다. 서둘러 M과 접촉해야 한다. 시간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장교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아쉬운 모습으로 내게 고개를 끄덕인 후 두 군인은 같이 방을 나갔다. 의사와 나, 둘만 남게 되자 의사가 한 번 더 나를 쳐다보다가 빙긋 웃으면서 주머니에서 주사기 하나를 꺼낸다. 내가 놀란 모습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자 그가 다시 웃으면서 방울방울 떨어지는 수액이 담긴 비닐 백에 주사기를 꼽고선 내게 안심하라는 듯 말을 했다.

걱정 말게. 그냥 수면제와 진통제를 섞은 내 특제 칵테일 일세. 한잠 자 두게. 내일은 정말 바쁜 하루가 될 것 같으니까.”

 



주사의 효과 때문인지 꿈 한번 꾸지 않고 오랜만에 길고 달콤한 잠을 잤다. 눈을 떠 보니 입에 채워져 있던 호흡기는 이미 제거되었고, 상처가 많이 아물었는지 숨 쉬기가 한결 편해졌다. 이제야 정말 살았구나 하는 생각에 깊이 숨을 쉬어 보았다. 그런데 병실의 분위기가 어제와는 완전히 달라져 있다. 오늘은 야릇한 향기를 뿜고 있는 꽃다발과 화환이 방과 침대 주위를 보호하듯 둘러쳐져 있었다. 도대체 내가 잠든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반쯤 벗겨진 내 배 위에 올려진 종이뭉치들을 보고서야 그 답을 알게 되었다. 동료들이, 닥터 뿐만 아니라 카탈리스트들까지 나의 빠른 회복을 바란다면서 내게 응원의 쪽지를 남겨준 것이다. 그렇게 쌓여 있는 작은 종이뭉치들을 보자 눈시울이 약간 붉어졌다. 기쁜 마음으로 차근차근 하나씩 읽기 시작했다.

편지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글 모두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들 내가 파트너 마이클의 목숨을 구한 영웅이라고 똑같은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 실제로는 내 목숨을 구한 것은 M이다. 어떻게 된 일일까?

쪽지 중에는 좀 신기한 내용도 있었다. 여성 카탈리스트 ‘B’가 보낸 쪽지로, 내용은 대충 이렇다.

헤이, J. 당신이 우리 동료를, 목숨을 걸고 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정말 놀랐는걸!

어떤 닥터도 카탈리스트를 위해 빗발치는 대못 사이로 다이빙하지는 않을 거야.

그래서 말인데……. [절대 안돼!] 리스트에서 너의 이름은 삭제해 주겠어. 무슨 말이냐고?

궁금하면 따로 내 방에 단둘이 만나서 얘기해.

호실은 W012, 잠금 비밀번호는 B108xx. 곧 보게 되기를.

회복을 위한 키스를 담아 B.”

이제야 좀 이해가 간다. 쪽지들을 모두 읽고 나자, 심문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그 방법을 생각해내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이제 M이 말할 진실과 거짓이 어떤 모양을 갖추고 있는지 큰 흐름은 대충 알 것 같았다. 그리고 내 생각이 맞다면 조직은 우리가 하는 말 중에 어떤 것이 거짓이고 어떤 내용이 진실인지 쉽게 알 수는 없을 것이다. 세부적인 항목들은 좀 더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하겠지만, 쪽지의 내용대로라면, 나는 M이 잡아놓은 큰 틀에 장단만 맞추면 될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남은 오전의 시간은 세부적인 내용에 중점을 두고 나만의 계획을 세워 나갔다.

 

마침내 점심식사가 끝날 때쯤으로 여겨지는 시간에 어제의 의사와 두 군인이 휠체어를 끌고 다시 병실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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