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라이센스를 가진 진짜 의사들이 인공지능에게 정신적으로 감화, 혹은 유린당한 이후부터 조직은 다시는 그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신규 직원들에 대한 새 교육과정을 개설했다. 물론 채용 과정에서의 압박면접을 통해 미리 정신력 강화가 되어있는 지원자들만을 추려내기도 했지만, 사람이 아닌 인공지능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따로 전문지식이 필요했다. 어떤 AI는 남들이 알지 못하는 내밀한 개인의 비밀을 캐내는 데에 탁월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기본적인 개인 정보를 바탕으로 도발적인 메시지를 닥터에게 던지고 그 사람의 맥박과 체온, 답을 하는 어투의 변화, 그리고 흘리는 땀의 양 등을 감지기로 확인하면서, 자기가 던지는 메시지가 그 사람에게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수법을 사용했다.

[너는 열아홉 살 때까지 이불에 오줌을 지렸지,]

[밤마다 옆집 누나의 침실을 몰래 봤잖아. 그러다가 나무에서 떨어져서는, 지금 엉덩이에 있는 박쥐 문신은 그때의 상처를 숨기기 위한 거잖아.]

혹은 심한 경우에는 마음속으로만 존재하던 이상형의 모습으로 나타나 닥터를 유혹하기도 했다.

조직은 이런 경우를 예방하기 위해 생체단말을 전면 배제하고 구형 터미널로만 접속하게 했다. 그리고 혹시 있을지도 모를 감시센서를 무력하게 하도록 항상 무선재머를 휴대하도록 했으며, 만에 하나 있을지도 모르는 AI의 다른 형식의 공격에도 대항할 수 있도록 그 정신적 방어법을 새 교육과정을 통해 우리에게 가르쳤다.

 

그런 이유로, 지금 이 세 사람이 휠체어에 실린 나를 데리고 가는 장소, 취조실에 있는 거짓말 탐지기 정도로는 내 안에 있는 진실을 꺼낼 수 없다. 이것은 마치 하늘 높은 곳을 비행하고 있는 비행기의 문을 열고는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여기서 밀어버리겠어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협박을 하지만, 이미 내 등에는 그가 오래전에 친히 달아준 낙하산이 달려있는 것과 같다.

이런 심리적 압박을 받을 때 사용하는 나의 무기는 (뭐 사실 도시의 바닥에서 살아온 사람이라면 이불에 지도를 그린다거나 옆집 아줌마의 속옷 훔치기 정도로는 흔들리지 않는다. 그런 일들은 거기서는 평범한 일상일 뿐) 귀로 흘리기를 쓴다. 왼쪽 귀로 질문이나 상황을 듣고 오른쪽 귀로 그 말을 그냥 흘리면서 입으로 답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내 마음이 중간에서 간섭할 일이 없어서 내 몸 상태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 다만 미리 질문을 예상하고 있어야 하고, 질문에 대한 답도 미리 가지고 있어야 한다. ,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기는 하지만, 한 번 만들어두면 과거의 내 모습으로 나를 흔드는 식의 인신공격은 내겐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했다

 


 

취조실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예상한 것과 같이 구형 거짓말 탐지기가 중앙에 놓여있고 반대쪽에 유리로 된 칸막이에 두 명의 감시관이 기기를 확인하며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거짓말 탐지기의 각종센서를 내 몸 여기저기에 연결한 후 기기 초기 값 설정을 위한 심문이 진행 되었다. 내 이름과 직위, 그리고 각종 잡다한 개인신상과 관련된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을 탐지기 수치의 기본 값으로 설정한 후, 본격적으로 그날의 일에 대해서 그들이 질문하기 시작했다.

도착 이후부터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순서대로 이야기 해.”

나는 재머를 켜고 나서 오두막에 들어간 후 일어났던 일들을 하나하나 소상히 이야기 했다. 그들이 중간에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면 그것 그대로 진실을 이야기 해 주었다.

물론 중간에 M이 자리를 비웠다던가 하는 불필요한 이야기는 빼 놓고.

인공지능 CA에 대한 검사를 완료하고 화면에 새로 나타난 인공지능의 도발적인 메시지에 대한 이야기까지 진행되자 그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어떤 말을 했나?”

다른 추가적인 이상행동은 없었나? 단 한 줄의 문장만 있었다고? M은 무슨 조치를 취했지?”

그들의 질문에 일일이 답을 하고 있을 때, 어제의 그 콧수염이 헛기침을 한 번 하고선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래, 어떻게 인공지능이 너희들의 위치를 알고선 시간에 딱 맞춰 오게 됐지?”

 

나는, 내가 답이라고 생각하는, 이것이 아니라면 M에게 가서 진지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 내가 그날 벌인 실수에 대해 이야기 했다. 처음 CA의 난쟁이 AI가 내게 했던 질문, 즉 몇 개의 질문을 할 것인지 물었을 때, 내가 108이라고 답을 한 것이 몇 대의 로봇들을 그 장소로 동원할지 시간을 계산 가능케 했다. 그리고 터미널의 위치는 AI가 미리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답을 했다. 우리 말단들은 알 수 없고, 너희 관리직이 유출한 것이 아니라면 AI가 접속위치를 계산했을 것이다. 그것 말고는 모른다고.

 

거짓말 탐지기에 올라온 수치들을 확인하는 듯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던 검시관들이 고개를 끄덕이자, 콧수염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이 모두 생각에 잠긴 듯 한 손을 턱밑에 받치고서 고개를 아래로 떨구고 있었다. 그들도 궁금할 것이다. 그날 그 장소에 있었던 사람은 M과 나뿐이다. 둘 중 누구도 자리를 비우지 않았고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다. 그렇다면 고위직에서 누군가가 유출한 것이 틀림없다. 만일 AI가 구형단말의 위치를 알고 있었다면 그것 그대로 큰 문제였다. 이제 목숨을 담보로 하지 않고는 직원들을 단말이 있는 곳으로 보낼 수 없다는 말이니까. 어떤 이유이든 이미 설치되어 있는 단말을 모두 폐기하고 다시 위치를 바꿔 달아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취조실에서 심문을 받고 있는 현재의 나로서는 거기까지 걱정해야 할 여유가 없었다. 다만, 이번 일에 M이 전혀 관련이 없다고는 생각할 수가 없으며 M을 만나면 둘이서 서로 진지하게 이야기해야 할 필요는 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취조실의 스피커를 통해 새로운 목소리가 내게 뜻밖의 질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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