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혼자 병실에서 눈을 붙인 후 아침 무렵이 되자 배가 너무 고팠다. 어젯밤에 있었던 ‘B’의 돌발적인 행동 때문에 한 술도 뜨지 못한 채로 식당 테이블에 그대로 두고 온 고기스프가, 계속 눈앞에 아른거렸다. 병실에 있는 목발을 짚고 절뚝거리면서 식당으로 가서 문을 열었다. 몇 명의 동료들이 이른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가 내가 식당입구에 서 있자 모두들 시간이 정지된 듯 그 자세 그대로 조용히 나를 쳐다봤다.

‘K’가 어제처럼 얼른 나를 중앙 테이블에 앉히고는 번개처럼 빠르게 먹을 것들을 스테인리스 식기에 담아서 내 앞에 놓아주었다. 그러면서 그녀, ‘B’가 어제 했던 것처럼 의자를 거꾸로 돌려 앉은 다음 오른손으로 턱을 괸 채로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래, 어제 어땠어?”


나는 아무 말도하지 않고 조용히 빨갛게 물든 내 오른쪽 허벅지의 붕대를 슬쩍 그에게 보여주었다. ‘우어하는 소리가 이번에도 식당에 길게 울려 퍼졌다.

그때 누군가가 나타난 듯 내 주변으로 동그랗게 모여 있던 동료들이 쏜살같이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B가 자기 식기를 들고서 내가 앉아있는 자리로 오고 있었다.

B는 어제 밤처럼 내 맞은편 자리에 식기를 탁 놓고 앉아서는 벌리고 있는 내 허벅지 쪽을 바라봤다. 이제는 분홍색으로 변한 붕대를 재확인하듯 쳐다보면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를 본 나는, 얼른 다리를 오므렸다.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부리나케 식사를 마친 후에, 건물 밖으로 나가 그녀와 둘이서 산책을 하듯 같이 걸었다.

 

이번에도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니 그녀가 다시 입에 손을 대고 내 환자복 안주머니 깊숙이 손을 넣어서 반쯤 타버린 얇은 금속판을 꺼내고선, 발로 밟아 완전히 두 동강을 냈다.

이후 자신을 브리짓(Bridget)이라고 소개한 BM과 언제부터 알고 있었냐고 나에게 물었다. 여기 이 조직에서 마이클을 처음 만났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고개를 갸우뚱 하면서 이렇게 말을 했다.

둘이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사이인 줄 알았어. 내가 아는 그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거든.” 어떤 행동을 의미하는 것이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아니라는 듯 말없이 고개만 저었다.

 

그 대화 후부터 그녀는 내가 병실에서 잠들어 있었던 시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나씩 이야기 해주었다. 사고가 난 그날 총 열 개 팀이 실전에 투입되었다. 일곱 개 팀은 제시간에 정상적으로 돌아왔지만 세 개 팀은 연락이 끊겼다. 긴급 신호를 받은 조직에서 급히 구조팀을 보냈지만 우리를 제외한 두 개 팀의 행방은 끝내 알 수 없었다. 주변에 몇몇 핏자국이 남아 있어서 치열한 전투가 있었다는 것만 알 뿐 네 사람의 행방은 아직도 오리무중이었다. 직원의 실종으로 초조해선 조직이 그런 이유로 살아남은 우리 두 사람에게 강도 높은 심문을 했을 것이라고 내게 말해 주었다.

나는 오두막에서 있었던 일들을 빠짐없이 모두 B에게 이야기했다. M이 중간에 자리를 비운 것과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나를 치료해 준 것 모두.

이미 알고 있다는 듯 B는 내 이야기를 듣고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라고 생각하고서 나는 지금까지 미뤄두었던 질문을 그녀에게 던졌다.

너희들은 누구지? 무엇을 위해 여기에 있는 거야?”

 

산책 길 한가운데 멈춰 서서, 브리짓이 내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마치 기다란 측정자를 내 몸 여기저기에 대어보면서 내가 어떤 종류의 사람인지 재어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마침내 그녀가 미소를 지으면서 자신이 알려줄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고 답을 했다. 내일이면 마이클과 만날 수 있으니 그에게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러나 나는, 이것 하나만은 꼭 알아야겠다고, 나를 두고 한 걸음 앞서 걸어가려는 그녀의 팔을 잡았다. 어제 밤에 마이클과 네 방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의 조력을 받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꽤나 삼엄한 경비를 뚫고서 그를 빼올 수 있다는 것은 그 조력자가 우리조직에서 상당히 높은 지위에 있다는 것이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만 말해 달라.

그녀가 이번에는 어제의 그 멍청이를 보고 있는 표정(이 바보는 뭐지)을 하고서는 내 가슴을 손으로 툭 쳤다.

바보야. 내일이면 알 수 있다니까.” 그러면서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왼쪽으로 갸웃거리면서, 이번에는, 꾸밈이 없는 순수한 미소를 내게 보냈다

 


 

브리짓과 헤어지고 나서 혼자 병실에 누워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정리해 보았다. 조직의 임무를 수행하는 중에 우리는 인공지능의 짓으로 여겨지는 공격을 받고 큰 부상을 입었다. 파트너가 부른 알 수 없는 그룹의 도움으로 내가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날 우리 이외에 두 개의 팀이 더 공격을 받았다. 그것이 AI가 한 짓인지 아니면 조직이 이야기하듯 테러리스트 데몰리션에서 가한 것인지 지금은 알 수 없다. 조직에서는 살아남은 우리를 심문 했지만 성과는 없었고 오히려 모종의 집단이 조직 내에서 비밀리에 일을 꾸미고 있다는 것만 내가 알게 되었다.

 

며칠간, 정말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일들이 내 주변에서 벌어졌다. 나는 그냥 내가 원하던 정보만, 진실만 조용히 꺼내어, 여기서 몰래 나가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너무도 많이 내 주변에서 일어났고 그로 인해 몸에 깊은 상처도 생겼다. 더욱이 의도하지 않은 이런 엮임으로 인해 앞으로 내 삶이 어떻게 바뀔지 지금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미래가 캄캄하기만 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복잡하고 어지러운 상황에서도 (아마도) 내가 의지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동료를 오늘 만나지 않았는가. 어쩌면 세상은 내가 넘을 수 있는 만큼의 고난을 주거나, 혼자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일에는 같이 해결하라고, 좋은 동료를 슬쩍 내 옆에 끼워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미리 걱정한다고 해결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닥쳐올 것들은 어찌되었든 결국 제시간을 맞춰 우리에게 오게 되어 있는 법. 지금은 미래를 걱정하기보다는 이들이 숨기고 있는 진실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지금까지 확인된 것들을 순차적으로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다가 이날 밤은 나도 모르게 일찍 잠에 빠져버렸다.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