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 프랑켄슈타인 연대기

  재밌다.

  왜 재미있는 드라마인지 설명을 하기 위해서는 줄거리를 일부라도 언급해야 하는데, 이 드라마는 내용을 모르고 보는 것이 훨씬 낫다. 아니 내용을 아예 모르고 봐야 한다. 다만, 제목에 '프랑켄슈타인'이 들어 있으니 그에 해당하는 내용만 잠시 언급하자면,

 

  1. 원작 프랑켄슈타인과는 좀 다른 이야기를 서술하면서도 소설이 의도한 의미를 정말 잘 담았다. 

  2. 19세기 산업혁명 당시의 영국이라는 나라의 시대상 - 과학발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당시 지배층의 만용과는 반대로, 초기 자본주의 사회의 그 처참할 정도로 무너져버린 유럽 하류층들의 삶을 화면에 자연스럽게 잘 녹여내었다. 

  3. 의상과 실내 인테리어, 그리고 회색 빛의 칙칙한 유럽풍 건물들. 훌륭하다. 19세기의 영국에 온 것 같다. 특히 낡고 바랜 - 정말 몇 년은 입었음직한 옷들을 입고 나오는데, 보는 내내 눈이 즐겁다. (이 드라마의 의상팀은 두둑한 보너스를 받아 마땅하다, 그리 생각한다.)

  4. 배우들의 연기력도 최고. 주인공 아저씨 '숀 빈'은 말할것도 없고 주연, 조연, 아역, 모두 어색하거나 오버하는 연기가 없다.  

 

  각 시즌별 6편, 시즌2까지 총 12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번 연휴에 밤 새서 볼만한 드라마로 급하게 추천!

 

 

 

PS. 국내에서는 19세 이상만 시청 가능한 영상이며, 일부 화면에서 잔인한 장면이 좀 있으므로 가족과 같이 보기에는 좀 껄끄러운 점, 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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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Senheiser PXC 550-II 무선 ANC 헤드폰 리뷰

 

  QC35의 음질이 생각했던 것보다 좋지 않았기 때문에 대체용으로 구매. 이쪽도 아마존에서 할인된 가격으로 샀다.

 

 

  청음은 해 보지 않고 주문부터 했는데, 동사의 모멘텀 인이어를 만족스럽게 쓰고 있었고, QC35와 이 PXC 550-II 두 가지 헤드셋을 모두 사용해본 사람으로부터 젠하이저 성향이라면 이쪽 제품에도 만족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서, 할인이 끝나기 전에 주문부터 먼저 넣었다.

 

  앞선 QC35 II 제품 리뷰에서 썼듯이, 이 제품, 음질은 만족스럽다. 물론 수백을 호가하는 더 좋은 제품들과 비교할 만한 사실 빌려서 써 본 스피커를 제외하고는 그런 고가의 헤드폰이나 이어폰을 사용해 본 적은 없다 음질은 아니라고 생각되지만, 최소한 비슷한 가격대의 다른 제품과 비교하자면, PXC 550-II는 동류의 다른 제품을 제치고서 추천을 받아 마땅한 제품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음질에 대한 부분에서만 한정한다면 말이다.

 

 

  일단 구성품은,

1. PXC 550-II 헤드폰

2. USB 충전 케이블(마이크로 to A)

3. 오디오 케이블

4. 기내용 어댑터

  위의 내용물이 5. 휴대용 케이스안에 모두 들어있다.

 

 

  QC35 II와 비교하여 이 제품이 좋은 점은,

1. 장시간 동작 가능한 배터리 20시간 연속으로 무선으로 음악 재생 가능. 유선으로 연결시 30시간까지 유지. QC35 II는 최대 10시간 연속 동작 가능.

2. 블루투스 5.0 지원 저전력 지원

3. Apt-X는 물론 Apt-X LL 코덱 지원

4. 비행기용 이어폰 잭 기본 구성 보스는 따로 돈 주고($7.95) 사야 한다.

 

 

  QC35 II와 비교하여 단점은,

1.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이 아닌 아답티브 노이즈 캔슬링

  같은 약자 ANC를 쓰지만, 550-II는 아답티브 노이즈 캔슬링만 지원. 특허 때문에 이름을 바꿨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보스의 그 쓸만한 NC보다는 성능이 떨어진다. 보스는 옆에서 사람이 말을 해도, 윗층에서 쿵쾅거려도, 트럭이 옆을 지나가도 안 들린다. 심지어 음악을 꺼도 온 사방이 조용하다. 반면에 젠하이저는 외부 소리가 들린다. 게다가 팝노이즈(POP Noise) 같은 잡음도 나는데, 음악을 처음 시작할 때, 완전히 종료할 때, 미세하게 퍽 하는 소리가 스피커로 들린다. 아마도 이때 스피커로 전력을 돌리거나 뺄 때 나는 소리 같은데 신경 쓰일 정도로 크지는 않지만, 헤드폰을 쓰면 사방 조용한 QC35 II의 쓸만한 NC성능과는 비교되는 부분임은 명백하다.

 

2. 머리 큰 사람은 불편

  QC35는 넉넉하고 편하게 쓸 수 있지만, 550-II는 최대한 길이를 늘이고도 간신히 귀를 덮을 정도로 그 크기가 작다. 귀를 가리면 땀 차는 것은 둘 다 같지만, 이쪽이 더 불편한 것은 맞다 - 크기가 작다. 진짜 쪼끔만 더 크게 만들지...

 

2. 터치로 제어되는 동작들

  오른쪽 유닛에 터치 센서를 달아서 터치로 기기를 제어(볼륨 및 재생/일시정지)하는데, 불편하다. 특히 이 모델은 헤드폰을 벗으면 자동으로 음악을 정지하는 기능을 넣어 놓았는데 스마트 일시 정지 특정한 지역에만 가면 이게 지 마음대로 동작해서 임의로 음악을 끄고 켜고 한다. QC35는 모든 기능에 전용버튼(dedicated button)이 있어서 이런 불편함은 없다.

 

3. 이상한 멀티 포인터 동작

  QC35를 먼저 사용해봐서인지, 550-II가 좀 이상한 동작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멀티 포인터로 두 개의 기기를 연결했을 때, 예를 들어 AB를 연결해 놓은 상태에서 A에서 음악을 듣다가 B에서 어떤 소리가 나면 강제적으로 B로 한 번 접속이 된다. QC35에서는 꼭 들어야 할 경우 전화가 온다든지 가 아니면 강제로 B로 이동하지는 않는데, 소리가 잠깐 난다고 임의로 연결점을 바꾸는 행동은 직관적인 동작은 아닌 것 같다. 이 부분은 QC35쪽이 직관적으로 더 잘 설계되었다고 본다.

 

 

이외에 두 모델 간의 코덱 지원 등의 차이점이 있으나, 사실 오디오 코덱 간의 차이를 모르겠다. PC를 통해 SBC로 들으나 핸드폰을 통해 AAC로 들으나, 심지어 유선으로 연결을 해도 QC35에서는 똑같은 밋밋한 소리를 내주었고, 550-II는 그래도 감상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살릴 만큼의 수준을 가진 음질은 보여주었다. (참고로, 블로그에 올라온 노래는 모두 Apple Music을 통해 감상 및 비교하였으며(256Kbps), 애플 뮤직이 외부링크가 불가하여 유투브 링크를 (이 블로그에 따로) 걸었다.)

 


 

  음향 기계만큼 욕심부리면 끝없이 돈 들어가는 취미 생활은 없다고들 하지만, 잘 찾아보면 적당한 가격에 그럭저럭 만족스럽게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제품은 있는 법. 아주 개인적인 평으로 채워진 글이기는 하지만, 구매에 비슷한 고민을 하는 분이 있다면, 돈 받고 쓴 리뷰에 흔들리지 마시고, 현명한 선택을 하시라는 의미에서, 선택에 약간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오늘 몇 자 적어 보았다.

 

  이상으로 오늘 리뷰를 블론디의 Maria’를 들으면서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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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BOSE QuietComfort 35 II

  먼저 BOSE QuietComfort 35 II 모델부터 시작.

 

  아마존에서 꽤나 할인된 가격에 판매한다는 소식을 듣고 구매.

 

  이 제품을 구매하기 전에 사용했던 이어폰은 젠하이저 모멘텀 인이어 무선(HD1 M2 IEBT)모델로 저음이 많다는 한 가지 단점을 제외하면, 음악 듣기에 딱히 불만은 없었다. 물론 넥밴드 형태라서 넥밴드의 치명적인 단점과 - 후드집업이나 잠바와 같은 외투 안에 기기를 넣어야 이어폰이 좌우로 쏠리지 않는다 - 외부에서 발생하는 무지향성 저음(그러니까 층간소음)이 귓속으로 아주 쉽게 스며든다는(정말 증폭되어 들린다) 문제가 있었다. 최근 내외부 소음이 점차 심해지고 있고, 마침 아마존에서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들어간 이 보스헤드폰 모델을 파격가에 세일한다고 해서, 그리고 예전 어떤 까페에서 들었던 보스의 모노 스피커(BOSE 901 Series)에서 뿜어져 나오던 그 단단한 음색도 생각나고, 그리고... 그리고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남들이 이 헤드폰 꽤 좋다고 해서, 하나 구매했다.

 

 

  구성품은 별것 없고,

1. QC35 wireless headphones II 본체

2. Micro USB charging cable

3. 2.5 mm to 3.5 mm audio cable

  위의 부품이 휴대용케이스(Carrying case)안에 모두 담겨있다.

 

 

  먼저 QC35 II의 노이즈 캔슬링 성능에 대해 말하자면, 꽤 좋다. 환경소음과 같은 무지향성 저음 및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이 기능은 음악을 듣지 않을 때도 잘 작동하는데, 즉 헤드폰 전원을 켜면 NC는 상시 동작한다. 다만 높은 주파수의 기계소리 (진공 청소기 같은)는 조금 들리는 편이기는 하지만, 이정도면 만족스러운 NC 성능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착용감도 칭찬하고 싶은 항목이다. 서양 제조사에서 만든 헤드폰들이 대부분 동양인이 쓰기에는 머리를(정확히는 양쪽 귀를) 아프게 조일만큼 작은 크기를 가지고 있는데 비해, 이 모델은 (머리가 큰) 본인이 쓰기에도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그리고 쓰고 있으면 뽀대도 좀 난다. , 제품이 튀지 않고 고급스러워 보인다. 물론, 양쪽 스피커 유닛에 커다랗게 써진 ‘BOSE’라는 양각된 글자와 한정판(limited edition) 모델에만 적용된 진한 남색의 표면처리에 대한 개인적인 만족감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겠다.

 

 

  중요한 음악 감상은,

 

  누군가는 이렇게 이야기 하더라. QC35 II는 sh@t이라고...

  그 말은 알맞지 않다. 정정해야 한다. 어찌 헤드폰을 그런 것에 비유하랴.

  그래서 정확히 다시 정의한다. 이 헤드폰은 sh@t이 아니다.

 

  이것은 sh@t같은 소리를 내는 헤드폰이다.

 

  헤드폰이 이렇게 답답하고 막힌 소리를 내는 것은 중국산 저가형 헤드셋 이후 처음이다. 가격을 생각해 본다면, BOSE라는 상표가 가진 그 신뢰성을 생각해 본다면, 이 모델은 그에 반하는 매우 실망스러운 음질을 보여준다.

 

 

  음악을 들을 때, 이어폰이나 스피커를 평가할 때, 본인은 공간감(혹은 Dynamic)을 중요시한다. 좋은 기기는 노래를 들려줄 때, 가수의 목소리와 악기의 위치를 분리해 적절한 공간감을 만들어 준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악기 연주자와 가수가 무대에 횡대에 일렬로 정렬해 있는 상태에서 연주가 시작된다고 하면, 전주와 반주에서는 일렉기타와 신시싸이저가 한발짝 앞에 나가 연주하고, 보컬이 노래할 때는 악기는 뒤로 살짝 빠지고 가수가 앞으로 한발짝 나온다. 이렇게 연주하는 노래는 공간감이 살아있고 특히 가벼운 재즈장르를 들을 때 진가가 나온다.

 

  위의 노래를 QC35 II로 들으면, 연주자, 가수 모두 제자리에서 그냥 하던 일을 하고 있다. 리듬은 밋밋하고 가수의 목소리는 멀리서 들린다. 아무도 자신의 재능을 뽐내며 앞으로 나오지 않는다.

같은 음악을 모멘텀 인이어나 550-II로 들어보면, 확실히 느낌이 다르다. 반주자는 신이 나 있고, 여성가수는 바로 귀 옆에서 속삭이듯이 노래를 부른다.

 

  장르를 바꿔도 그 특성은 변하지 않는다.

  연주와 목소리가 약간 따로 놀면서(물론 개인적인 생각임), 레코딩이 오래된 보니엠 노래를 골라보았다. 마찬가지다. QC35 II는 맹물 맛이다. 박수치듯 두들기는 소리에 힘이 없다. 음악을 듣는 맛이 나지 않는다.

 

 

얼터나 록으로 장르를 바꾸어도 별다르지 않다. 시끄러운 연주가 있는 부분을 제외하면 음과 음이 잠시 쉬는 공간 및 신나게 두들겨대는 드럼의 소리가 먹먹하다. 특징이 없다.

 

 


 

  흑자는 이렇게 평가할지도 모르겠다. 원래 이 제품은 플랫(FLAT)한 기종이라고, 그래서 소리가 그런 것이라고... 음향기기를 평가할 때, 별로 좋지 않은 기기를 좋게 포장할 때 쓰는 가장 좋은 핑게 중의 하나가 '플랫한 성향'이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 '가격대를 본다면 좋은데... 플랫한 성향이라서, 원래 기계는 좋은데 니가 잘 못 듣는것이야.'라면서 별로 좋지 않은 제품의 품질을 가리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협찬을 받았어도 쓸 말은 써야 하는데 그냥 플랫이야 하면서 특성탓을 하면서 둥글게둥글게 리뷰를 쓴다. 비슷한 가격대에 더 좋은 제품이 있다는 것은 아무도 이야기 하지 않는다. 사실 플랫한 속성을 가졌다라고 생각했던 기기들을 써 본적이 있기는 있다. 애플 쪽 이어폰들이 그러했는데, 애플 기기로 음악을 듣는 재미는 (젠하이저보다는) 덜했지만 그렇다고 소리가 보스의 이제품 처럼 먹먹하지는 않았다. 뿌려주어야 할 주파수 대역대는 뿌리되, 다만 저음은 애플이 힘이 딸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QC35 II가 아주 저질의 제품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통화품질은 젠하이저보다 좋았고(들리는 목소리가 보스쪽이 더 선명했다. 내가 말할때는 두 기기 다 상대방이 내게 감기걸렸나고 물어볼 정도로 좋진 않았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전달되는 목소리의 선명도는 비슷한 듯) 머리에 오래 쓰고 있어도 550 II와 비교하자면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음악감상도 표현을 과하게 해서 그렇지 저품질의 헤드폰에서 나는 그 (똥같은) 소리는 아니다. 그러나, 음악을 듣기 위한 목적이라면 더 싸면서 더 좋은 소리를 들려주는 대체품이 분명 있다. 그리고 음악이 아니라 통화를 위해서라면 차라리 헤드셋을 사용하는 것이 낫다. 헤드셋은 잘 들리고, 상대방에게 제대로된 목소리가 전달되며, 가격도 싸다.

 

    <오랫동안 사용해 온 PC용 헤드셋 / 잘 들리고 잘 전달되고 / 싸고 / 음악을 듣기에도 QC35보다 좋은 기기>

 

 

  추가로, 헤드폰을 구매하기 위해 인터넷을 뒤지던 중 재미난 현상(?)을 발견했다. 어떤 이어폰이 좀 싸게 나오면 항상 달리는 댓글 - '그 가격대면 차라리 삼성 버즈 시리즈를 사세요'  알바라도 있는건가?

  개인적으로 한마디만 하자면, 삼성 버즈는 이어폰계의 QC35 II 이다. 차라리 중국산 앵커 시리즈가 음질은 더 좋다. 리버티 프로 시리즈가 가격은 비슷하지만 소리는 훨씬 더 낫게 들린다. (사실 음악의 볼륨을 올리고 전체적으로 올라간 음역대에서 발생한 클리핑을 방지하기 위한 S/W필터를 걸어서 음악을 들어보면, QCY제품을 써도 삼성 버즈와 비슷한 소리가 난다. 비싼 돈 주고 이 삼성 시리즈 제품을 살 이유는 없다는 생각이다.)

 

<이어폰 계의 QC35>

 

생각보다 글이 길어져서 젠하이저 PCX 550-II리뷰는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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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화성, 매형이 모셔진 곳. 오늘 갔다 왔다. 잔뜩 낀 먹구름에 비가 오지 않을까 했는데, 역시 오는 길에 약간의 비가 내렸다. 젖은 국도 한 변의 편의점에 잠시 주차한 후 담배 한 갑과 생수 한 병을 사고 담배 한 개비 꺼내 입에 문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같이 담배를 피울 때 많은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서로 마누라 흉을 보면서 낄낄거리던 곳은 술집이 아니라 아파트 앞 흡연실이었다. 그건 술을 거의 하지 못하는 나 맥주 반잔에 얼굴이 벌개져서 눈 감고 고개를 흔들고 있는 사람을 보면, 처음엔 신기해 하지만 몇 번 보면 다들 재미없어 한다. 그렇다. 흔들거리며 졸고 있는 붉은 색 고무인형과 같이 술을 마시고 싶은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가끔 나는 내가 생각하는 가족이라는 세계에서의 내 위치를 고수하기 위해, 매형에게 내 주장을 강하게 표현하기도 했다. 매형이 생긴 후 그의 그늘에 있는 것 같아서 그랬는데, 그렇게 하고 나면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왜냐하면 매형의 문제의 해결 방법이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깔끔했고 나로서는 매형처럼 할 만한 능력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 스스로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속상해서 한 마디 한 적도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미안함 보다는 좋은 추억이라는 느낌이다. 속상하다는 말도 할 만큼 내가 형제처럼 생각했다는 이야기이니까...)

 

 

 

  옅은 회색 구름을 향해 긴 숨을 내보낸다. 생각해 보면 늘 나는 문제를 안고 달려가는 쪽이지 않았나. 좋은 소식보다는 고민만 한 짐을 등에 지고 그에게 달려가지 않았나. 지친 사람은 나뿐이라고 생각하며 위로 받기 위해 달려가지 않았는가. 오늘처럼.

 

 

  그래요. 내년엔 좋은 소식으로 좀 신나는 이야기 꺼리를 가지고 갈게요. 매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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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en Day(cover Yebit) / Walke Me Up When Septembrer Ends / Album - American Idiot (2004) >

 

Summer has come and passed
The innocent can never last
Wake me up when September ends

Like my fathers come to pass
Seven years has gone so fast
Wake me up when September ends

Here comes the rain again
Falling from the stars
Drenched in my pain again
Becoming who we are

As my memory rests
But never forgets what I lost
Wake me up when September ends

Summer has come and passed
The innocent can never last
Wake me up when September ends

Ring out the bells again
Like we did when spring began
Wake me up when September ends

Here comes the rain again
Falling from the stars
Drenched in my pain again
Becoming who we are

As my memory rests
But never forgets what I lost
Wake me up when September ends

Summer has come and passed
The innocent can never last
Wake me up when September ends

Like my father's come to pass
Twenty years has gone so fast
Wake me up when September e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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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dinary World, Billie Joe Armstrong, Album : Revolution Radio (2016)>

 

 

 

Where can I find the city of shining light

In an ordinary world?

How can I leave a buried treasure behind

In an ordinary world?

The days into years roll by

It's where that I live until I die

Ordinary world

What would you wish if you saw a shooting star

In an ordinary world?

I've walked to the end of the earth and afar

In an ordinary world

Baby, I don't have much

But what we have is more than enough

Ordinary world

Where can I find the city of shining light?

In an ordinary world

How can I leave a buried treasure behind?

In an ordinary world

Baby, I don't have much

But what we have is more than enough

Ordinary world

 

 

  평범한 일상을 다시 볼 수 있을까?

  학교도 가지 못하고, 친구들도 만나지 못하고, 집에서 부모의 등살에 치여 눈치 보는 아이들을 보면서도, 대면예배는 버릴 수 없다는 그들.

 

  어른들은 부끄러움도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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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A.I. 전문 정신과 의사입니다 #24

 

  “당신,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상태잖아? 방해만 될 뿐이야.”

 

  내 가슴과 허벅지의 상처를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고 싶은 욕망을 애써 누르고 있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보면서, 캐롤라인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당신에게는 그것 그래그래, 브리짓과 마이클을 그것이라고 짧게 말해서 미안해. 그래, 미안하게도 당신에게는 그들의 구출보다도 더 중요한 일이 있어. 당신이 꼭 해야 할 일.”

  “오늘 여기까지 당신을 부른 이유, 그걸 해 줘. 우리 쪽 사람 누구를 좀 만나줘. 당장.”

 

  잠시 잊고 있었다, 내가 여기에 온 이유를.

  그렇다. 난 오늘 이들 조직의 누군가와 만나기 위해 이곳에 왔다. 책임자를 만나 그()과 대화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M(마이클)은 자기가 속한 조직의 힘이라면, (어쩌면) 내가 가지고 있는 의문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할 수 없어. 나 혼자서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거든.” 특유의 눈웃음을 지으며(M이 그렇게 웃을 때면 같은 남자인 나조차도 가슴이 뛰었다) 그가 손짓했다.

  “어쩌면 네가 찾는 그것에 내가, 우리가 큰 도움이 되지 않을지도 몰라. 하지만, 너도 어렴풋이 느꼈겠지만, 우린 조직과 힘이 있어.” 그가 잠시 천정을 올려보고 나서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우린 선의(善意)가 있어. 그리고,”

  “그리고, 너로 말하자면.” 그가 다시 눈웃음을 지었다.

  “네가 같이한다면, 우리에겐 큰 힘이 될 거야.”

 

  하루 휴가를 내어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는 사실 대화라기보다는 협상에 가까운 만남이 될 공산이 컸다. 이들이 내게서 원하는 것은 아마 내가 가진 그것일 터인데, 나는 이들이 그 대가로 내게 무엇을 제안할지가 궁금했다 - 그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일이 이렇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M은 만남에서 내 안전을 보장했고 나는 호기심이 일었다. 한 번 M이 속한 조직의 이야기를 들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최악의 결과는 그냥 재수 없는 휴가를 하루 보내는 것, 그뿐이라고 여겼다.

 

 

 

  우리는 건물에서 빠져나와 미리 준비된 차를 타고 개방된 도로를 달린다. 아직도 길 중간중간에는 검문 불응 차량의 타이어를 터뜨리기 위한 스파이크와 강철봉으로 봉쇄되어 있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우리는 제대로된 검문 한 번 받지 않고 줄곧 빠른 속도로 검문소를 통과하여 달릴 수 있었다. 안전 가옥에서 빠져나가기 전에 캐롤라인이 자신이 가져온 가방에서 주섬주섬 투명우의(비 올 때 입는 옷) 두 벌을 꺼내 나와 캐롤라인에게 입혔는데, 이것이 우리의 존재를 숨겨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시원하게 속도를 내는 차 안에서, 캐롤라인이 고개를 돌려 내게 말했다.

  “이제 좀 살 것 같네. 그래, 상처는 어때 조니?”

  나는 고개를 숙여 가슴과 허벅지 쪽을 쳐다보았다. 투명한 우의 안쪽의 셔츠와 청색의 바지는 아직도 붉은 피로 물들어 있었지만, 그곳에서 강한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클로이가 제대로 치료한 것 같다. 나는 괜찮다고 말했다.

 

  “, 그럼 이제 이야기를 좀 해 볼까? 목적지까지는 꽤 멀어서 이렇게.” 그녀가 나와 클로이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자신의 두 손가락으로 입을 꼬집듯 잡으며 오물거렸다.

  “이렇게 조용한 분위기는 영 불안하다고.”

  “궁금하지? 우리가 누구이고 뭘 하는 사람들인지 말야.” 캐롤라인이 자신의 손가락을 입에서 떼며 말했다.

  “우린 데몰리션은 아니야. 그렇다고 유니온은 더더욱 아니지.” 그녀가 단발을 쓸어 솜털이 부드럽게 숭숭 난 목덜미를 (난 신경 단말이 없다는 의미로) 내게 살짝 보여주면서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데몰리션이 아니었다라고는 말할 수 없고.”

  “그리고 유니온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껄끄럽지.”

  “무슨 의미죠? 알 수 없군요.” 내가 말했다.

  “그러니까, 과거의 이야기. 과거에 한가닥하던 과격분자인 사람도 있고, 단말을 목에 차고 다니던 - 좀비 같던 인간들도 있다는 이야기지. 그러다가 지금은 이렇게 (그녀가 엄지손가락을 자신의 가슴에 대면서) 개과천선하거나, 혹은 인간성을 다시 찾은 사람들이라는 말이지.”

  “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 설명이 잘못됐나. 그러니까 나는, 아니 우리는...... 그러니까 말이야. 과거가 좀 있는 편이야, 나쁜. 하지만 지금은 그런 나쁜 일들은 안 하고 있고......”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다시 그녀를 쳐다봤다.

  “. 우린 사람들을 돕고 있어 물론 결과적으로 보면 꽤나 큰 문제를 만들기는 하지만, 방금 클럽에서 있었던 일처럼 말이야 하지만 원론적으로 보자면, 우린 사람들, 인간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나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캐롤라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캐롤라인이 도와달라는 듯 클레이를 향해 어깨를 으쓱하자 클레이가 그녀의 말을 이었다.

 

  “우리 조직은 데몰리션 출신들이 많아요. 물론 유니온이었던 사람들도 있구요.”

  “우리에게 살아온 배경은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것은 사람. 인간다운 삶을 살고자 하는 의지. 그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요.”

  “지금 우린 어떤 위협에 맞서고 있어요. 사람들, 그리고 이곳을 지키기 위해.”

  “사실, 오늘 클로이가 이 말을 하며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당신을 만나 이야기하려고 했던 내용은 이것이에요. 위협. 모든 생명을 사라지게 할 위협에 대한 도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듣고 있었다.

  “당신이 속한 조직 - D.D.T, 재밌는 이름이에요 - 회사는, 어떤 음모에 가담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알지 못했어요. 우린 그저 욕심 많은 회사의 자본축적 정도로 생각했는데, 실상은 심각했어요.”

 

  “진작 알았어야 했는데. D.D.T, 정부, 아니 초정부적 존재와 거래하고 있어요. 지구의 자원, 생명체 전체를 말살할 수 있는 모종의 일들을 벌이고 있어요.”

  “그 음모가 무엇인지 우리는 잘 알지는 못해요, 지금은. 하지만,”

  “조니, 듣기로는 당신이 열쇠라고 했어요. 우리 - ”

  여기까지 듣다가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그 소리가 컸는지 클로이가 잠시 말을 멈춘 후에 무릎 위에 반듯하게 모아둔 손을 펼쳐 손바닥을 한 번 쳐다본 후, 계속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우리 지도자에 따르면, 당신이 필요하다고 했어요. 해답을 찾는 일에. 그리고, 그녀는 당신의......”

 

  “, 정말 깔끔한 설명인걸!”

  캐롤라인이 갑자기 두 손으로 손뼉을 쳤다.

  “상세한 내용은 말이야, 도착하면 직접 듣는 게 낫겠어.”

  “기다리고 있다고, 당신을. 우리 책임자가.”

 

  캐롤라인이 대화에 끼어든 탓인지 이후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캐롤라인만이 알 수 없는 노래를 흥얼거렸다. 음으로 보아 군가의 일종인 것처럼 들렸다. 가끔은 흥이 나는지 손가락을 튕기며 리듬을 타면서 다다다라고 가사 일부를 부르기도 했지만, 나와 클로이는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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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왜 우리는 잔인한 컴퓨터 게임을 하는가?

 

  이 글은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Dead by Daylight)’라는 게임의 플레이 영상(Youtube 풍월량 )을 재미있게 본 후 쓴 소설입니다. 이 글에 나오는 각종 과학적 기술 등은 모두 현실과는 관계없으며, 글쓴이의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존재입니다. 또한 게임 내용 자체가 다소 잔인하며 이 글에서도 그러한 읽기에 불쾌한 내용이 표현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잔인함의 표현 수위는 대충…….

 

<이 이미지에 표현된 내용보다 더 잔인할 수 있어요>

 

 

 

1. 식인종(The Cannibal) 살인마의 시점

  입술에 묻은 붉은 액체를 혀로 핥아 본다. 따뜻하다. , 이 얼마만의 희열인가! 오랫동안 갈구해 왔으나 채울 수 없었던 내 욕망들이, 욕구가 꿈틀대며 오늘의 이 축제(Carnival)를 즐기듯 춤춘다. 발밑에는 모락모락, 내 발밑에는 두 조각난 남자의 온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나 차가운 새벽하늘의 별빛을 흐트러뜨리고 나는, 고개를 들어 검붉은 하늘을 올려다본다.

 

  생각난다. , 이제야 생각난다.

 

  나는 엄마와 둘이 살았다. 작고 허름한 창고 같은 집에 엄마와 둘이 살았다. 낮에는 강아지, 염소와 놀았고 저녁이면 나는 집 바닥을 배회하는 쥐들을 사냥했다. 허름하고 벌레도 많은 창고 같은 집이었지만 그래도 밤이면 엄마는, 엄마는 나를 따뜻하게 안아 주었고 그윽한 목소리로 자장가도 불러 주었다. 어떤 날에는 재미난 이야기도 해 주었는데, 엄마는 세상의 모든 사람은 창녀이거나 창녀의 자식이라고 했다. 그들이 어떻게 악마의 구멍을 통해 세상에 왔으며, 어떤 방법으로 세상을 악으로 물들이는지도 알려 주었고, 그리고 조만간 신이 그들을 두 조각으로 만드는 벌을 내릴 거라면서, 가장 먼저 그 처벌을 받을 사람은 나의 아빠라고 했다.

  엄마는 언제나 나를 예뻐했다. 사랑스러운 나의 아들, 세상에서 가장 잘생긴 아들이라며 늘 나를 아꼈지만, 내가 집 밖으로 나가지는 못하게 하였다. 한 번은 잃어버린 개를 찾기 위해 집 앞 늪지대에 혼자 나섰는데 홀로 집 밖으로 나온 나를 발견한 엄마는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선 곧장 나를 집으로 끌고 갔다.

  나를 향한 매질이 끝난 후면 엄마는 늘 기도를 드린다. 작은 유리조각이 하늘의 은하수처럼 무수히 박힌 방석에 두 무릎을 꿇고 엄마와 나는, 신에게 용서의 기도를 드린다. 오랜 기도가 끝나면 엄마는 내게 자장가를 불러 주었고 나는 상처에 흐르는 피를 핥았다. (그런 행위는 상처를 빠르게 아물게 해 주었다.)

 

  기억나지 않는 어느 날, 내가 누군가의 얼굴 가죽과 한 쪽 팔목을 뜯어 집으로 왔을 때, 그날만은, 엄마는 나를 혼내지 않았다. 그냥 멍한 얼굴로 조용히 집 한 쪽에 쭈그리고 않아 천장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사실 나는 그날 화가 나 있었다. 왜 엄마는 내게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것인가? 나는 사람들은 다들 나처럼 생긴 줄 알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리들과 같은 모습이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처음 만난 사람들은 달랐다. 그들은 곧고 바른 두 개의 눈동자와 얇고 붉은 입술, 선명하고 진한 눈썹을 지녔다. 게다가 손가락 개수도 달랐다. 왜 우리는 세 개의 손가락만 있는 것인가? 말로는 믿지 못할 것 같아 나는 그것들을 뜯어 가져갔다.(물론 이후 상처는 빨리 낫도록 잘 핥아 주었다) 그리고 엄마 앞에서 당당히 이야기 했다, 왜 나는 이것과 같지 않나?

 

  또렷한 기억. 어렸을 때의 삶이 이렇게나 분명한 모습으로 기억나다니. 보통 나는 내 이름도 기억을 못 하는데. 어라, 그러고 보니 내 이름이 뭐지?

  뭐 차차 생각나겠지. 지금은 내가 있는 이곳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면 되는 것이다. 다른 것들은 부차적인 것이다.(부차적이라... 내가 이런 단어도 쓸 줄 알았던가?) 어쨌든 지금은 신이 주신 이 능력으로 신이 주신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면 될 뿐. 뼈를 썰다 보면, 이 따뜻하고 붉은 것의 맛을 보다보면 차차 알게 되겠지. 다만 조금 걸리는 것은 아까부터 누군가가 자꾸만 나를 지켜보고 있는 듯한 이상한 느낌이 든다. 설마 신께서 직접 강림하시는 것일까? 이런, 서둘러야겠다.

  그래그래. 내 서두름을 아는 것 마냥, 왼쪽 손에 끼워진 체인 소(chain saw)가 울부짖으며 그릉그릉 거린다. 그래, 늦기 전에 어서 남은 사람들을 처리 해야지. 그들이 마땅히 있어야 할 원래의 장소로 보내야해 이 일이 바로 신이 원하는 바이고, 내가 반드시 마쳐야 할 임무니까.

 

 


 

 

2. 어느 연구원의 시점

19:13 08/07/20xx 기록함

 

  갑작스럽게 에크모(ECMO)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에 번쩍 정신이 들었다. 시험체에 진정제 10mg을 투여했다. 투약 조치가 늦지는 않았지만, 이것으로 인해 실험에 약간의 문제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되면 큰일인데......

일단 약물 투여한 내용은 보고서에서 빼야겠다.

 

  물리학(11차원이라니!)을 전공하고 졸업 후 취업이 되지 않아 인간의 의식에 관해 연구하고자 나는 다시 심리학을 배웠다. 심리학 공부가 의외로 재미있어서 내친김에 학위까지 받았다. 학위 논문으로는 물리학과 심리학을 섞은 [꿈을 이용한 가상세계의 시간 역행에 관한 연구]를 썼는데, 이것저것 다른 논문을 짬뽕 짜깁기한 내용이 전부라서, 여러 번 수정한 다음에나 간신히 심사에 통과, 졸업할 수 있었다.

  대학에 오랫동안 있었기 때문에 같은 년도 졸업생보다는 나이가 많아서 연구소 따위에는 갈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이곳 고연봉 첨단 연구소에서 내게 오퍼를 주었다. 물리학과 생명공학의 결합이라며 침을 튀기던 채용 담당 선임연구원의 반쯤 맛이 간 모습에 도대체 연구원 잠은 재우는지 그 근무환경이 의심스러웠지만, 이 나이에 갈 데가 별로 없었고, 보수는 의외로 나 같 늙다리에게 주는 것 치고는 꽤나 높았기 때문에 배부른 고민을 할 수는 없었다. (아니 그것보다는 선택지가 없을 때는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하신 아버지의 말씀을 따랐다고 쓰는 편이 더 뽄대난다 낫겠다.)

  어쨌든, 나는 이곳 연구소에서 양자암호를 연구한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양자 암호화된 기밀을 풀 수 있는 만능열쇠를 구현하고 있다.

 

  모두들 잘 알고 있듯이, 일반적인 암호화 방식과는 다르게 양자암호는 도감청이 거의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양자화된 정보를 탈취하기 위한 시도, 그러니까 정보를 담은 광자(혹은 전자)를 관찰(복제)하는 순간 그 정보가 바로 의미 없는 내용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본인이 쓴 논문에 달린 주석 중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와 독약이 든 상자 안의 고양이 슈뢰딩거의 고양이 편 참고)

  그래서 양자암호를 도청하고 풀기 위해서는 양자상태를 저장할 수 있는 용기(container)와 암호를 풀어내는 도구(method)가 꼭 필요하다. 내가 있는 이 연구소에서는 정보가 담긴 양자를 저장(중첩상태를 복사할 수 있는 기술이라니!) 할 수 있는 컨테이너는 어떻게든 만들어 낸 것 같다. 다만 문제는 이것이 일회용이라는 것인데, , 정보가 복사된 양자는 재복사가 불가능하며 단 한 번의 해독 시도만 할 수 있었다. 게다가 해독된 정보가 진짜 정보인지도 알 수 없었다.

  여기서 그들은 내 가짜 짜깁기한 논문에서 해결책을 찾았다고 한다. 내 논문에 따르면 꿈속에 만들어진 가상세계에서는 정보를 언제나 뒤로 돌릴 수 있어서 처음 상태로 초기화를 하더라도 이전의 정보 내용 그대로 100% 되돌릴 수 있다. 그래서 이들은 복사한 암호화된 정보를 꿈에 심어서 꿈속에서 그 정보를 해독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들은 내 논문에 있는 것을 허락 없이 베껴서 꿈속에 가상의 세계를 만들고, 그곳에 양자화된(암호화된) 파동을 심었다. 해독을 위해서 꿈속에 약간의 규칙과 단순한 미로를 만들고 그 미로를 빠져나오는 방법(method)으로 암호를 풀도록 시뮬레이션을 만들었다. 그리고 만일 답을 찾을 수 없을 때에는 꿈을 리셋하도록 했다.

 

  몇 번을 시도했지만, 그들은 알 수 없는 오류가 가득한 가상세계를 만들어 시험체들을 가사상태에 빠지게 만들었다. (전도유망한 어느 포닥(postDoc)이 손들고 첫 번째 시험체가 되었는데, 실험 도중 뇌사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연구소는 비용의 이유로 뇌만 절제하여 투명한 어항 속에 공기를 주입하여 연구용으로 보관 중이다.)

사실, 실험이 실패한 이유는 간단한데, 첫째, 만들어진 가상세계의 미로가 너무 인위적이라는데 있었다.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든 미로는 미로 자체가 파동 입자에 간섭하여 붕괴를 불러일으키고, 결국 가상세계 전체가 무너지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쉽게 이야기하면 영화 인셉션에서 림보에 빠진 주인공처럼 된다) 둘째, 해석을 위해 투입한 실험체가 미로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스스로 출구를 찾는 과정(method)은 잘못된 결과를 도출할 수 있었다. 출구라는 결과물을 갖기 위해 행해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관찰자의 행위가 파동입자의 빠른 붕괴를 일으킬 수도 있었다. 이 경우 미로를 빠져나오더라도 그 결과 값이 옳다는 보장은 할 수 없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나는, 처음부터 다시 설계하였다. 첫 번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입자 스스로 미로를 만들게 하고 가상의 세계 크기를 제한(움직일 수 있는 범위를 제한)했다. 그리고 실험체가 림보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약 30분의 시간이 되면 가상세계가 처음상태로 다시 돌아가도록 리셋기능을 넣었다. 두 번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조금 번거롭지만, 실험체가 출구를 찾는 것이 아니라 파동입자를 쫓아가도록 만들었다. 미로의 탈출이 문제가 아니라 입자의 붕괴를 일으키는 사건 자체가 핵심이므로 실험체 자신이 파동입자가 만든 미로에서 그것과 접촉을 일으키는 사건을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제한된 공간에 네 개의 임의의 희생자(암호화된 입자)라는 존재를 심어두고 그것을 쫓아가는 살인자(시험체)라는 세계를 제안했다. 네 명의 희생자 모두가 살인자에 의해 갈기갈기 분해되고 찢겨지면 가상공간은 스스로 무너지면서 복호화된 파동함수가 모니터에 나타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황당하게도 이 엉뚱하고 괴기스러운 내 제안은 세미나실에 있던 모든 임원들의 만장일치로 단칼에 승인되었다. 아니 이게 뭔일이여!

 

  그런 결과로 나는, 이곳 습기 가득한 지하 연구소에서 암울한 표정으로 실험체가 된 사람들을 모니터링 하고 있다. 내가 제안하고 내가 설계한 이 이상하고도 말도 안 되는 실험에 잡혀온참여한 실험자들이 희생자들을 잘 사냥하고 있는지 모니터로 감시하면서, 때로는 기억을 임의로 조작하여 살인자가 된 이유를 그럴싸하게 만들어 그들의 뇌에 심어 주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몇몇 실험은 결과가 좋아서 방금 전의 실험체는 첫 번째 희생자를 마무리했다 일반인에게까지 실험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 시뮬레이션을 컴퓨터 게임으로 만들어서 게이머라는 남는 자원을 일반인들을 이용할 계획이다. 게임은 은근한 사냥 본능을 자극하도록 만들고, 서서히 중독되어 가는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심리적 함정을 몰래 심어놓을 것이다. 높지 않은 가격표를 붙이고(무료로 뿌리면 오히려 사람들이 안 한다), 유명 스트리머들을 동원하여 대중에게 방송한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살인자가 되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힌 게이머들이 이 연구소에 알아서 자원하고자 몰려들 것이다. 참으로 두려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이곳에 작게 이 글을 남겨 놓는다. 경고를 하기 위해, 이 게임에서 멀어지라는 경고를 하기 위해......

 

  혹시 나는 무서운 것을 싫어하는데 이상하게도 잔인하고 고통 받는 이 게임이 재미있고 자꾸 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렇다. 당신은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이 기괴하고 끝없는 실험의 예비 숙주로, 결코 깨어나지 못하는 영원히 반복되는 림보 지옥에 들어가는 준비를, 당신은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 그만 일어나 어서 이곳에서 탈출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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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opold FC660M PD Ash-Yellow Computer Keyboard short review

 

  몇 년간 잘 쓰던 앤프로 키보드가 다시 고장(이번엔 USB포트 불량)나서 대체품을 찾던 중 이 제품을 구매.

고장난 키보드를 이전의 수리기처럼 USB단자를 떼어내고 새 단자를 납땝하는 식으로 해보려 했는데, 단자를 떼 내기 위해서는 전체 스위치를 모두 디솔더링해야 하는 터라 - 잦은 스위치 교체로 PCB기판은 이미 너덜너덜해 짐 - 고장난 앤프로는 그냥 버리고 이번 기회에 새로 구매하였다.

 

  레오폴드 홈페이지에서는 여러 가지 색상의 키보드가 진열되어 있는데, 올해 나온 제품을 제외하고는 거의 품절 상태이다. 흰색 키보드는 여러 개가 있으니 이번에는 검은색 제품 중 가장 튀지 않는 색상으로, 재고가 있는 제품 중에서 하나 골라 보았다.

 

<실물보다는 사진쪽 색상이 (많이) 밝게 나왔다>

 

 

 

<살 때 팜레스트도 같이 주문하였고>

 

 

 

<키캡은 이색사출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잘 나왔다>

 

 

  키캡 표면을 확대해 보면, 부드러운 승화 인쇄 표면과는 다르게, 요철을 넣어서 표면이 까칠까칠한데 이렇게 처리한 것도 나쁘지 않았다, 아니 이쪽도 꽤나 촉감이 좋다.

 

<키캡 각인에 쓰인 색인 노란 색은 이쪽 사진이 실물에 가깝게 나온 편>

 

 

 

  전체적으로, 레오폴드 명성답게 이 키보드 잘 만들었다. 단단한 하우징과 고품질로 만들어진 낮은 높이의 키캡은 손가락으로 두들길 때마다 경쾌함이 느껴져 키캡을 두들길 때 마다 흥이 난다. 기능 키를 없앰으로써 위아래로 짧아진 길이는 가뜩이나마 작은 크기인 본인의 책상 위에 놓기에도 아주 좋은 크기. 또한, 코딩이나 글쓰기에 필요한 키들(특히 방향키와 삭제 키)을 적절한 위치에 배열해 두어서, 일반적인 텐키리스 키보드 사용자들도 이 키보드로 옮겨가기에도 많이 부담스럽지 않다.

 

 

 

  다만 한가지 불편한 점은 있는데, 바로 옵션 키(Fn)의 위치.

 

 

<Alt -> Ctrl -> Fn 순서로 되어 있다>

 

 

  굳이 이렇게 멀리(보통의 키보드들은 오른쪽 Alt키 바로 다음에 Fn키를 놓는다) 놓아야 할 이유가 있나 싶다. Fn을 이용해 위에 있는 PrintScreen이나 PgUp, PgDn을 누를 때, Alt키 다음에 Fn이 있는 것이 (한 손으로 조합하여 누르기에) 더 편하다. 특히나 한영변환을 오른쪽 Alt키로 사용한다면, 오른쪽 Ctrl은 한자변환일텐데, 한영변환을 하다 보면 이 키를 잘 못 누르게 되고, 그래서 한자변환 화면이 모니터에 자주 튀어나온다.

 

  혹시 제품 제조사 관계자분께서 이 글을 보고 계시다면, 차기 모델에서는 Dip Switch로 이 키(Fn)의 위치도 오른쪽 Ctrl키와 바꿀 수 있도록 딥스위치 설정을 추가해 주셨으면(그럼 하나 더 살게요) 하는 부탁을 마지막으로 오늘의 짧은 리뷰를 종료.

 

 


  앗, 팜레스트에 대해 쓰는 것을 깜박했는데 이 키보드는 높이가 낮아서 딱히 팜레스트를 따로 쓰지 않아도 될 듯싶다. 손등손목 아래살에 굳은살이 자꾸 배겨서 키보드 살 때 같이 주문했는데 팜레스트를 두면 키보드가 거의 일자형 그러니까 볼텍스 시리즈 같은 키보드를 쓰는 느낌이라 굳이 필요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리고... 택배 포장을 풀었을 때 화학약품 냄새가 좀 진하게 남아있었다 - 구입하실 분은 페브리즈 뿌리고 하루 정도 말려서 쓰셔야 할 듯.

 

 

 

<키보드 높이 사진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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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의 요정

 

살며시 문을 열고 들어가

옅은 담배 내 나는 내 행운의 자리를 찾아

의자 위에 자켓을 올려 두고 책상 위 둥근 전원을 누르면,

그 버튼을 살짝 누르면,

냉각팬은 시시식 거리며 나를 반기고,

명량한 스피커는 타다! - 쇳소리로 나를

20층 아파트 옥상에서부터 지하까지

외줄에 묶여 흔들리던 내 하루를,

위로하는 그 기계음

타다

! 이 순간만큼은 행복해.

 

채널 19에 살고 있는

나의 요정 그녀는 나의 평일의 요정

그녀는 오늘도 내게 미소 짓지.

그녀는 오늘도 내 이름을 부르지. 적립금이 있는 한, 별풍선이 충전되어 있는 한,

그녀는 내 이름을 불러주며 춤추네.

 

정해진 선불의 시간이 모니터에서 삼십분

삼십분 남았다고 지껄이면

뒤져보자.

주머니 속에 꾸깃꾸깃 오천 원. 아쉽지만

담배는 피워야해 아쉽지만, 그녀와 함께 하는 시간은 여기까지.

 

삐걱거리는 철문,

붉은 녹물이 눈물모양처럼 박힌 문을 조용히 열고선

컵라면 국물 자국이 담배빵처럼 노랗게 번진 이불에 쏙 들어가

잠들기 전,

두 손을 비비며 생각의 나래를 펼쳐본다.

그녀는 어떤 향기가 날까

어쩌면 헤드앤숄더’. 첫사랑 그녀가 쓰던 샴푸. 그래,

그녀도 그 쿨한 향이 날거야. 시원하면서도 따스한 냄새가 날 거야.

 

 

회색의 바다 깊숙이 들어가듯 의식이 잠들 때, 그녀는 다시 나타나네

 

네모난 상자에서

살며시 다가와 내게 미소 지으며

은빛의 환상 심어주는 그녀는 나의 요정

그녀만 있으면 난 외롭지 않아

그녀만 보면 난 외롭지 않아

 

 

<샴푸의 요정, 빛과 소금, 199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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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 GK888B 키보드 35g용 러버돔 교체기

 

  한성 홈페이지에서 35g용 러버돔을 따로 판매한다는 소식을 듣고 구매.

  새 러버돔으로 교체한 지는 사실 몇 달 되었다. 사진만 찍어두고서는 글은 안 썼는데, 러버돔 교체할 때 몇 번의 불필요한 시행착오를 거친 부분도 언급하고, 교체 후 오래 두들겨 보았으니 평가를 하기에 적당한 사용시간을 가졌고, 그리고 무엇보다 새로 도착한 키보드도 두들겨 볼 겸, 몇 자 적어 보자.

 


  러버돔 교체는 참 쉽기도 하고 정말 어렵기도 한데... 한마디로 말하자면, 분해는 쉽지만 조립은 어렵다. 일단,

 

<만 원 짜리 - 35g 러버돔 준비>

 

<뒷면에 나사는 없으며, (마제스터치처럼) 기타 픽을 이용해서 상판을 벌려 분해>

 

<상판 플라스틱 분리 시, 블루투스 버튼을 분실하지 않도록 주의!>

 

<바로 이 부품. 첫 분해 시 없어져서 한참을 찾아야 했음>

 

<이후 하판의 필름 케이블과 전선으로 연결되어 있는 부분을 조심해서 분리>

 

<기판에 있는 10개의 나사를 풀고 러버돔을 열면...>

 

<쏟아지는 코일 스프링들. 하나씩 집어서>

 

<이렇게 핀셋으로 하나씩 새 러버돔에 심어 준 후 조립>

 

  러버돔에 코일 스프링을 하나 씩 올리고, 나사를 다시 조이고, 필름 케이블을 연결 후, 테스트 해 보았다.

  어라, 탭키, 캡스락 키, 윈도우 키가 잘 작동하지 않는다. 조립할 때 그쪽 코일 스프링이 움직였나 보다.

 

  다시 분해 후, 이번에는 실제 기판 위에 코일 스프링을 올리고 러버돔을 덮는 식의, 다른 방식으로 조립해 보았다.

 

<이번에는 스프링을 기판에 올린 다음,>

 

<러버돔을 그 위에 올리는 방식으로 조립>

 

  이번에는 , 페이지 업 다운버튼, 그리고 오론쪽 컨트롤 키가 잘 작동하지 않는다.

  이후 몇 번의 분해-조립 과정을 거쳤지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몇몇 키들 특히 좌우구석에 몰려 있는 키들 일부는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


  기계식 키보드들을 몇 대 분해해 봐서 교체 작업을 쉽게 생각했었는데 조립 시간이 두 시간을 훌쩍 넘어가자 짜증이 밀려온다. 내가 받은 러버돔이 불량인가, 아니지, 그랬다면 특정키만 반응이 없어야 하는데, 조립할 때마다 다른 키가 이상이 생긴다. , 이걸 어쩌지...

 

  처음 분해했을 때로 돌아가 생각해 보면, 분명 기판에, 구석탱이에 있던 키들, 즉 홈, , 좌측 쉬프트 키등에 오일 같은(점성이 없는) 액체가 묻어 있어서 닦아 냈는데, 혹시 이 액체가 코일 스프링을 러버돔에 붙지 않도록 방지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번엔 원래 그랬던 것 처럼 오일을 약간 발라보자.

 

  원래 발라져 있던 오일이 어떤 종류인지 몰라서 집에 남아 있는 스테빌 윤활용 구리스를, 좌우 구석에 있는 키의 코일 스프링 끝 쪽에 소량을 바른 후, 다시 조립해 보았다.

 

  된다! 이번에는 모든 키들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

  (참고로, 코일 스프링을 올릴 때에는 기판쪽 보다는 러버돔을 뒤집어서 그쪽에 올린 후, 기판을 덮는 것이 좀 더 쉽게 조립할 수 있었다.)

 


 

그럼 고생한 만큼 보람이 있는가? 있다. 확실히 35g 쪽이 낫다고 말할 수 있다. 빠르게 두들길 때마다, 키보드를 두들길 때마다 느꼈던 그 불쾌한 반발력이 확실히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미약하나마 해피해킹을 칠 때 나던 그 소리, ‘보글보글소리도 키보드에서 난다.

 

 

처음부터 35g가 탑재된 키보드를 구매할 수 있었다면 추가 비용도 없고 이런 고생도 하지 않았겠지만, - 그래서 그런지 최근에 출시한 한성 키보드들은 50g이외에 35g도 내놓고 있다 이렇게 바꿔 놓고 보니 꽤나 만족스러운 키보드가 되었다. (문자열 부분은 조금 가벼운 듯 해서, 아래 사진처럼 문자열 쪽은 5g짜리 스프링을 추가하여 40g으로 사용하고 있다.)

 

<5g 스프링은 문자열만>

 

 

<교체 완료>

 

  세 줄 요약.

1. 분해 시 블루투스 전원 버튼 꼭 챙기자.

2. 지저분해 보인다고 기판을, 오일을, 물티슈로 절대 닦아내지 말 것. 키 입력 오류의 원인.

3. 조립 시 블루투스 전원 버튼 넣기를 잊지 말자. 빼놓고 조립해서 다시 기타픽으로 상판 분리하는 것, 어렵고 짜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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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터 짧은 감상 평

 

 

  재미있다.

  누가 이렇게 잘 원작을 잘 리뉴얼 한 영화감독인지 찾아 봤다.

  ‘팀 밀러라고... 모르는 사람이다.

  감독 보다는 제작자 이름이, 익숙한 이름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제임스 카메론’, 역시.

 

  약 두 시간 내내 부셔지고, 던지고, 깨지고, 불 타고, 그리고 부활한다. 음향 효과 금속과 금속이 부딪혀 깨지는 그 묵직한 소리도 아주 좋았다. (쉽게 말해 타격감이 쩐다). 그래서 이 영화는 DVDBlu-ray로 보는 것 보다는 영화관에 직접 가서 보는 것이 훨씬 낫다고 본다.

 

  물론 중간에 등장하는 (스포일러)와 그가 한 (스포일러) 일들, 그리고 그렇게 (스포일러) 되는 이유를 설명하는 과정은 좀 작위적이고 지루하지만, 정신없이 펼쳐지는 액션 신들이 바로 바로 등장하는 터라 영화는, 그런 지루함을 오래 남기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 원작 그러니까 터미네이터 1편은 하나의 공포물이라고 생각하는데, - 죽여도 죽여도 다시 살아나 잡으러 오는 금속 괴물을, 인간의 몸으로 어떻게 물리칠 것인가 이 새 영화는 원작의 그 희망 1g도 없는 느낌을 잘 살렸을 뿐만 아니라, 2편의 그 마지막 엄지 척 장면 같은, 약간의 감동도 양념처럼 들어 있었다.

 

  한 가지 더 칭찬하고 싶은 내용. 등장인물, 주인공 들이 노인과 여성인데, 원작의 주인공이니까 엄청 쎈 능력이 있다는 등의 작위적인 설정을 넣지 않고서도, 그들을 여전히 매력적인 캐릭터로 잘 표현했다.

 


 

야간에 봤는데, 영화관에 혼자 온 분들도 꽤 되는 듯.  1, 2편 이후의 그 실망스러운 터미네이터 시리즈물의 행적들을 머리에서 지우고 싶은 분들은 (혼자서라도) 꼭 봐야할 영화로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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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WON CF2 블루투스 이어폰 배터리 교체

 

  아들이 가지고 있던 블루투스 이어폰 한 쪽의 전원이 안 들어온다고 해서 집에 있는 인두기를 사용하여 배터리를 교체해 보았다. 아들이 가지고 있는 이어폰들 대부분은 (글쓴이가 쓰고 있는 것 보다는) 고급이라 서랍 속에 두기에는 아깝고 해서, 수리해 보기로 했다.

 

  이어폰 모델은 COWN CF2 블루투스 이어폰. 먼저 어떤 형식의 배터리를 사용하는 지 확인하기 위해 불량이 난 왼쪽 이어폰의 배를 갈라 보았다.

 

< 배터리 모델명은 [501015] >

 

  두께 5.0mm, 세로 10mm, 가로 15mm50mA용량의 작은 배터리. 인터넷으로 모델명 검색을 하니 배터리가 뜨긴 뜨는데, 국내에서 판매하는 곳은 보이지 않는다. 아마존은 배송은 괜찮지만 전체적인 비용이 아깝고, 알리 익스프레스는 배송 기간이 너무 길거나 분실의 경우가 잦아서, 국내 삽을 뒤져 비슷한 모델의 배터리를 주문했다.

 

<모델명 [581015]. 두께만 원래 배터리보다 0.8mm 두껍고 가로 세로 길이는 동일하다>

 

  미리 분해를 해 놓았기에 배터리 교체가 어렵지는 않았는데, 문제는 새 배터리의 전선이 너무 두껍다는 것. 그래서 이어폰에 있는 전선을 살리고 배터리 쪽을 뜯어서 납땜하기로 했다. 그런데,

 

  사진에서 보듯이, 양극과 음극이 너무 붙어 있다. 납땜 잘못하면 자칫 이어폰에서 불 날 듯.

 

 

  양 극이 서로 붙지 않도록 가급적 널찍하게 납땜 후, 절연 테이프로 칭칭 감아 두었다.

 

  배터리가 조금 두꺼워서인지 뚜껑이 잘 안 닫힌다. 그래서 순간접착제를 발랐는데....

<이번에도 지문이 덕지덕지 뭍은 걸레짝을 만들었지만, 일단 이어폰은 잘 작동>

 

  충전 후, 테스트 겸 음악을 들어 보았다. 오, 의외의 음질. 수리한 이어폰이 생각보다 음악 듣기에 좋았다.

 

<‘올리비아 왕’의 ‘Fly Me To The Moon’>
<그리고, Game of Thrones에서 'Rains Of Castamere'를 사용>

 

  가지고 있던 블루투스 이어폰 QCY T1과 비교해 보자면, 수리한 모델이 (수치상으로 표현하자면) 2배 정도 음악을 듣기에 더 좋은 것 같다. 관심이 생겨 가격을 찾아보니, 내가 사용하고 있는 QCY의 두-세 배가 훌쩍 넘는 가격! 역시 아들은 비싼 이어폰을 쓰고 있었구나 - 최소한 아빠꺼 보다는 비싼 거네...

 

  마지막으로, 배터리 크기가 매우 작고 전극이 가깝게 붙어 있는 상황이라 개인이 임의로 수리 시에는 배터리 폭발의 위험이 있으므로, 배터리 교체는 전문 수리 점에 의뢰하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COWON CF2 페어링 메뉴얼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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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Footloose(1984).

 

 

  국내 극장에서는 자유의 댄스라는 촌스러운 제목으로 상영했다.

 

  도시에서 살던 틴에이저, ‘(Ren)’, 음악과 춤이 금지된 작은 시골마을로 이사하고 그곳에서 만난 반항적인 소녀 에어리얼(Ariel)및 친구들과 함께 영혼이 실린 댄스로 답답한 시골 마을에 신선한 반향을 불러 온다는 줄거리.

 

  얼핏 줄거리만 보면 한 때 유행 타던 십대 영화 80, 90년대에 한창 유행하던 그것 정도로만 보이지만, 사실 이 영화 꽤 재미있다. 초반의 좀 지루한, 그러니까 보수적인 시골 마을이라는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 소비된 20분 정도만 지나가고 나면, 그 이후부터는 영화가 흥미로워 진다.

 

 

  먼저, 배우들이 던지는 대사가 진국이다. 예를 들면 주인공이 처음 전학한 학교에서 마주친 동년배가 거는 시비에 모자를 언급하면서 긴장감을 한 번에 풀어버리고, 이후 둘이 점심을 먹으면서 슬쩍 흘리듯 주인공이 던지는 야설장면은, 보면서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외에도 많은 대화들이 찰진데, 사실 이 영화를 살린 핵심은 배우들의 연기라기보다는 장면 장면 나오는 알맞은 대사가 아닐까. (여주인공 에어리얼이 키스를 하고 싶지 않나면서, 렌을 꼬시는 장면에서, 렌이 언젠간이라고 정답을 날린 부분에서는 솔직히 감탄했다. 저랬어야 했는데...)

 

 

  또한,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방법,  즉 개연성 있는 이야기의 전개도 나쁘지 않았다. 보수적인 목사 가정의 딸인 여주인공이 그렇게 반항 가득한 영화 내에서 나온 말 그대로 쓰자면 처녀가 아닌’ - 행동을 보이는지, 목사는 왜 춤과 음주를 금하는지 그 이유가, 너무 서둘러 설명하려고 하지도 않고 너무 늦게 보여주는 것도 아닌 적절한 시간 내에 (아쉽지만, 서로간의 대화로) 잘 표현되어 있다.

 


 

  맨날 삼류 SF나 혹은 고어물에 가까운 B급 영화들만 보다가 봐서인지 이 영화, 힐링된다. 특히, 주인공이 친구에게 댄스를 가르쳐 주는 그 장면과 그 장면에서 나오는 음악.  그리고....

 

 

영화 말미쯤에 울러 퍼지는 음악에 맞춰 약간 어색하지만, 그러나 해방된 흥겨움이 넘치는 댄스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아빠미소가 절로 나왔다.

 

 

<대충 이런 미소를 짓게 만드는 영화>

 

 

  오래간만에 영화에서 받는 힐링.

 

  지금 Youtube에서 1000원에 최저가격 상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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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보다 쓸데없는 공익광고처럼 (당신에게 던지는) 훈계조 문장이 없어 좋다. 

 

 

  영상은 '? 나는 그런가'에 대해 고개를 끄덕일 만한 근거를 가져와 답 하고,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막막해 할 때, 조심스럽게, 그러나 확실한 목소리로, (당신 스스로가 먼저 움직여야 한다고) 그 방안을 제시 한다.

 

 


 

  영상을 다 보고 나니, 뜬금없지만, 이제 담배를 끊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금연도 하게 만드는 좋은 영상.

 


그리고...

 

  이런 외로움이나 우울함 같은 감정을 빨리 떨쳐내야 할, 나쁜 감정이라고만 볼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한 번 해 본다. 그건 어쩌면 이제 계단을 한 단계 오를 때가 되었다는 신호 일지도 - 지금까지 잘 해 왔지만, 기존의 나 자신으로는 한계에 다다랐고 이제는 다음 단계로 올라가 새로운 스텝을 익혀야 할 때라는 신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거기서 시작하는 거라고, 그 감정에 실려 너무 깊은 심연에 빠지지만 않는다면, 어쩌면 자신의 위치를 돌아볼 기회를 주는 것일 수도 있다고.

  너무 늦기 전에, 변하기에는 너무 늙기 전에 나 자신이 누구인지, 앞으로 남은 내 시간을 어떻게 채워 갈지, 이제 한 번쯤은 돌아볼 때가 된 것이라는 신호를 - 레너드 스키너드의 그 노래 처럼, 저 위에서 굽어 보고 있는 누군가가 가장 쉬운 목소리로 알려주고 있는 것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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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 박자 느린 액션 짜고 치는 것이 너무 훤히 보일 정도로 싸우는 장면에 긴장감이 없음. 1, 2편의 그 프로패셔너블한 액션 씬과는 비교 불가 마치 주인공을 향해 막타를 날려달라는 듯 머리를 내미는 몇몇 적의 모습에서는 (나도 모르게) 실소가 나왔다.

 

  2. 이상한 음향효과 마치 싸구려 깡통 스피커를 통해 듣는 것 같은 배우 목소리가 자주 들린다. 배경음악은 짱짱하게 들리는 것으로 보아 영화관의 스피커 탓은 아닌 것 같은데... 일부 전투장면에서의 그 긴장감 없는 배경음악은 오히려 없애는 것이 나을 정도. 차라리 배우들의 거친 숨소리나 크게 해 줄 것이지.

 

  3. 존재감이 없는 여배우 부러질 것처럼 연약한 몸으로 덩치들을 넘어뜨리는 장면에서는 약간 웃었음. 2탄의 그... 수화하는, 문신 많은, 카리스마 넘치는 그 보디가드 누님이 정말 그리웠음.

 

  4. 개연성 없는 흐름 할 말은 많지만 한 마디만 함. 이것들이 돈독이 올랐구나... 그리고, 

 

<이 포스터에 속지 마세요>

 

 

  아침에 조조로 보러 갔었는데, 일요일 날 치고는 공석이 많았다.(2/3이 빈자리. 앞서 개봉한 기생충은 일요일 조조가 만석이었는데...) 개봉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이런 상황인 것으로 보아 이미 소문이 파다하게 난 것인지도.

 

 

 

  한 줄 감상평 유선에서 곧 방영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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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락밴드 Journey가 1981년에 릴리즈 한 곡으로 그들의 일곱 번째 앨범, Escape에 실린 첫 번째 곡이다. 이 곡은 당시 빌보드 넘버 9에 까지 올랐었다고 (위키피디아가 설명해 주었다).

 

  차분히 시작되는 노래의 전반부와는 다르게 가사 내용은 어둡다. 다만 그런 우울한 세상 속에서도 어떻게든 믿음은 잃지 말라는 가수의 마지막 메아리만큼은 힘 있게 들린다.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개인적으로, 94년의 새벽 바다가 생각난다. 미니 카세트 플레이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직접 녹음한 60분짜리 테이프 두 개. 그렇게 배낭도 없이 혼자 오른 이른 저녁의 속초행 고속버스. 오랜 시간 버스 의자에서 뒤척이다 도착한 검고 어두운 바다.  새벽이 되어 바지에 묻은 모래를 털고 첫차로 다시 돌아온 그날이 떠오르는 노래.

 

 

<Don't Stop Believin', Journey, Album : Escape (1981)>

 

 

Just a small town girl

Living in a lonely world

She took the midnight train

Going anywhere

Just a city boy

Born and raised in South Detroit

He took the midnight train

Going anywhere

 

A singer in a smoky room

A smell of wine and cheap perfume

For a smile they can share the night

It goes on and on and on and on

 

Strangers waiting

Up and down the boulevard

Their shadows searching in the night

Streetlights, people

Living just to find emotion

Hiding somewhere in the night

 

Working hard to get my fill

Everybody wants a thrill

Payin' anything to roll the dice

Just one more time

Some will win, some will lose

Some were born to sing the blues

Oh, the movie never ends

It goes on and on and on and on

 

Strangers waiting

Up and down the boulevard

Their shadows searching in the night

Streetlights, people

Living just to find emotion

Hiding somewhere in the night

 

Don't stop believin'

Hold on to that feeling

Streetlights, people

Ohohohhhhhhhhhh

 

Don't stop believin'

Hold on to that feeling

Streetlights, people

Ohohohhhhhhhhh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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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복을 입고 거울에 서 본다.

 

  예전에는 정장을 입고 서 있으면 잘생긴 젊은 변호사처럼 보인다는 이야기를 그것도 젊은 처자에게서 들은 적도 있었는데, 이제는 알통처럼 배만 불룩한, 반쯤 머리가 벗겨지고 눈주름이 가득한 낮선 아저씨만 거울에 비친다.

 

  생각난다. 처음 정장을 입어 보았던 날. 입대 전에 두 달간 일했던 어느 학원. 아버지가 입던 낡은 양복에 약간 노랗게 익은 셔츠와 나이에 맞지 않는 알록달록한 넥타이를 목에 걸고 덥고 습한 지하철을 긴 시간 타고 가야 하던 그 작은 학원. 두 달간의 강의를 끝내고 이제 군대 가야 한다고 했던 그 강의 마지막 날에 받은 장미꽃도 생각나고... 그때는 장미꽃이 주는 의미가 어떤 것인지 몰랐었지... 그렇게 예전에는 양복을 입으면 좋은 일이 많았다 - 아니 좋은 일을 기념하기 위해 정장을 빼 입었었다.

 

  이제는 고인을 기리기 위한 장소에 방문하기 위해 정장을 찾는 일이 오늘처럼 - 더 잦다. 결혼식장보다는 장례식장에 가는 횟수가 많아지면 늙어가고 있는 것이라고 하더니, 이제 이렇게 옷 한 벌을 통해 나이를 느끼나 보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보다는 훨씬 더 어렸을 때, 죽음에 대한 고민과 생각을 더 많이 했던 것 같다. 삶과 죽음. 지금 돌아보면 그저 그런 뻔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때 읽었던 몇몇 내용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그래서 슬퍼할 유가족들을 위해, 아니 무엇보다 오늘 같은 날, 나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서 그 내용을 여기 적어본다.

 


아난다여,

이제 나는 늙어서 노후하고

긴 세월을 보내고 노쇠하여

 

내 나이가 여든이 되었다.

 

마치,

낡은 수레가 가죽 끈에 묶여서 겨우 움직이는 것처럼

나의 몸도 가죽 끈에 묶여서 겨우 살아간다고 여겨진다.

 

그만 하여라, 아난다여

슬퍼하지 말라, 탄식하지 말라, 아난다여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모든 것과는

헤어지기 마련이고

없어지기 마련이고

달라지기 마련이라고

그처럼 말하지 않았던가.

 

아난다여,

태어났고 존재했고 형성된 것은 모두 부서지기 마련인 법이거늘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것을 두고 '절대로 부서지지 마라'고 한다면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난다여,

그런데 아마 그대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제 스승은 계시지 않는다. 스승의 가르침은 끝나 버렸다."

 

아난다여,

내가 가고 난 후에는

내가 그대들에게 가르치고 천명한 법과 율이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

 

아난다여,

그대들은 자신을 등불(섬)로 삼고

자신을 의지하여 머물고 남을 의지하여 머물지 말라

진리를 등불삼고 진리에 의지하여 머물고 다른 것에 의지하여 머물지 말라

 

내가 설명한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괴로움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원인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방법이다.

 

참으로 이제 그대들에게 당부하노니

형성된 것은 소멸하기 마련인 법이다.

게으르지 말고 해야 할 바를 모두 성취하라

이것이 여래의 마지막 유훈이다.

 

- 부처의 마지막 유언 중 -


 

 

부디

편히 잠드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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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e Pro Bluetooth 키보드(스위치) 수리기

 

   써 둔 블로그 글을 통해 언제 앤프로 키보드를 구매했는지 되짚어 보았다. 글 올린 날짜가 20179월 쯤이니까... 2년도 안 돼서 고장 난 셈. 정확히 말하자면 키보드 기판의 문제(그러니까 블루투스나 배터리 충전 등의 문제가 아닌)가 아니라 개별 스위치 망할 게이트론(Gateron)! - 십여 개가 작동 불능상태가 되었다.

 

...

 

   앤프로 키보드를 선택할 시점, 그러니까 2년 전만 하더라도 게이트론 갈색(GATERON BROWN) 스위치는 개인적으로 최선호 스위치였다. 체리의 그것에서는 조금 부족한 구분감(Tactile)을 갈색의 슬라이더를 사용한 게이트론 스위치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스위치만 약 120여개 따로 구매해서 반쯤 맛이 간 필코 마제스터치에서 체리 청축을 제거하고 새로 산 게이트론 갈축으로 모두 교체해 두기도 했다.

 

   키보드에 심어 둔 게이트론에 문제가 있다는 신호는 이 스위치를 심어 둔 위의 마제스터치에서 먼저 발생했다. 아들에게 준 이 키보드가 제대로 동작하지 않는다고 아들이 컴플레인을 건 것. 확인을 해 보니 몇몇 키가 제대로 입력되지 않았다. 일부 키는 이중으로 입력되고 어떤 키는 아주 세게 눌러야 신호가 들어 왔다. 일단 키보드 테스트 프로그램을 통해 문제가 발생하는 키가 몇 개인지, 어디인지부터 확인해 보았다. 결과는 무려 12개의 키가 비정상적으로 동작했다. 이정도면 스위치 몇 개만 바꿔 끼운다고(desoldering) 해서 될 일이 아닌 것으로 보였다. 급한 대로 아들에게는 창고에서 (더 비싼 키보드를) 꺼내 손에 쥐어주고, 급하게 책꽃이 한 켠에 고이 모셔져 있던 앤프로 키보드를 꺼내서 두들겨 보았다.

 

   앗. 이 키보드도 60개의 스위치 중에 무려 18개의 키가 비정상적으로 동작한다.

 

4, 6, 7, 9

q, y. [

s, g, l, ;. ‘

z, x, n, m, ,, /

 

어쩐지 싸더라, 망할 게이트론 갈색 스위치. 어쩐지 체리 정품 스위치의 절반 값도 안하더라니...

 

일단 마제 키보드는 재활용에 버리고, 앤프로는 살리기로 결졍했다.

 

<납 흡입기와 인두기를 이용해서 오리지널 게이트론 스위치를 모두 적출>

 

 

<제거되어 널브러진 게이트론 갈축 스위치들>

 

 

   집에 남는 스위치가 체리 흑축(20년 정도 된 것) 밖에 없어서 이걸 심기로...

 

<흑축 탑재 완료>

 

 

<키캡을 끼우면서 백라이트를 켜 보았다. RGB용 스위치가 아니라서 빛이 거의 새어나오지 않는다. 어...어둡다.>

 

 

   흑축으로 갈아 끼우고 나니, 흑축도 두들기기에 나쁘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백라이트가, 빛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앤프로의 장점이 작은 크기이면서도 그 앙증맞은 백라이트인데....

   그래서, 새로 심은 흑축을 다시 디솔더링하고, 이번에는 RGB용 체리 적축을 새로 사서 심었다.

 

<체리 적축 스위치 심는 중...>

 

 

<잦은 디솔더링으로 동박이 벗겨져 끊어진 회로는 점프선으로  대충 연결>

 

 

<키보드는 걸레짝이 되었지만 일단 눈부신 백라이트는 만족스럽다>

 

 

<완성!>

 

 

 

  결론 : 게이트론 스위치를 탑재한 키보드는 앞으로는 안 사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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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 Gtune GK888B Bluetooth Keyboard

 

  가끔 생각날 때면 꺼내서 잘 쓰던, 블루투스 달린 미니 키보드 앤 프로가 고장 난 이유로 쓸 만한 키보드를 찾던 중   특가 판매에 맘이 동해서 – 인터넷을 통해 구매.

 

  특가의 가격적인 메리트 이외에도, 이 키보드를 구매하기로 결정한 동기가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정전용량 방식을 채택한 제품이라는 점. 데스크탑용으로 이 제품과 같은 키 동작 방식을 사용한 앱코의 K935P를 만족스럽게 잘 사용하고 있어서 (앱코 제품에 대한 리뷰는 여기) 정전용량 스위치를 사용한 키보드에 대한 만족도가 꽤나 높아서 이번에도 정전용량 스위치를 채택한 제품으로 구매하기로 결정.

 

<한성 Gtune GK888B Bluetooth Keyboard>

 

 

  구매 후 약 1-2주 정도 사용해 보았다.

 

 

  일단 장점으로는,

 

1. 오래가는 배터리

   내장된 배터리 용량이 무려 2500mA! 단 한번의 충전으로 십여일 넘게 연속 사용이 가능한 블루투스 키보드는, 아마도, 이 제품이 유일하지 않나 싶다. 배터리 오래 가기로 유명한 로지텍의 K810 모델(백라이트 끈 상태로 약 6)과 비교해 보아도 이 제품의 연속 사용 시간은 매우 만족스럽다. 또한 배터리 충전 중인지 완료되었는지도 표시해 준다. (충전 중에는 F12 점멸 켜져 있음)

 

2. 방향키가 있는 블루투스 미니 키보드

   60% 크기의 앤 프로 키보드를 사용하면서 가장 큰 불만이라면 바로 물리적 커서 키의 부재이다. 물론 펑션(FN) 키와 조합하면 그 어떠한 편집키도 입력 가능하지만, 물리적으로 따로 할당되어서 한 번에 입력하는 것과 두 개의 키 조합이 필요한 것은 편의성 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그리고 이렇게 편집용 키들을 물리적으로 욱여넣고서도 크기가 적당히 작은 편.

 

 

<87% vs 75% vs 60% 크기 비교>

 

 

3. 블루투스 ON/OFF 스위치 및 USB C Type 탈착 케이블

   사실 특별히 언급할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앤프로 키보드에는 없어서 정말 불편했던 부분이라서 이야기. 키보드 왼쪽에 블루투스를 ON/OFF할 수 있는 물리적 스위치가 따로 있고 USB C Type의 분리 가능한 케이블은 (비록 케이블 탈착이 좀 불편한 모양새로 있기는 하지만) 편의성 면에서 점수를 줄 만하다.

 

 

 

그럼 단점은?

 

1. 높은 키 입력 하중(50g)

   시중에 나와 있는 그 수많은 미니 키보드들, 체리 스위치를 채용한 미니 키보드를 제쳐두고 정전용량 방식의 이 러버 돔 키보드를 고른 것은 이유가 있다. 바로 낮은 키 입력 하중 값 때문인데,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이런 정전용량 방식의 키보드가 주는 적은 키 반발력 때문이다 - 키를 살짝만 눌러도 바로 입력되는 가벼운 스위치가 주는 장점은 장기간 키보드에 붙들려 사는 프로그래머나 긴 글을 입력해야 하는 타이프라이더에게는 일종의 축복과도 같다. 생각해 보면 처음 리얼포스라는 이름의 최고가 키보드가 수십만 원의 가격에도 불구하고 불티나게 팔리게 된 원인이 바로 30g45g로 대변되는, 그 낮은 real (low) force에 있다고 봐도 될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한성의 이 키보드는 리얼포스의 그것과는 좀 거리가 있다. 처음 포장을 풀고 눌러본 느낌으로는 흡사 체리의 그 흑축을 누르는 반발력이었고, 앱코의 K935P에 채택된 45g의 그 경쾌하고 가벼운 느낌과 비교해 보자면 이 한성의 키보드 50g, 5g의 차이는, 컸다. K935의 가볍고 기분 좋은 구분감(tactile)을 생각하고 구매했건만, . 이 키보드에서 가장 실망한 부분.

 

2. 진하지 않은 레이저 키 인쇄

   말이 필요 없다. 아래 사진을 보자.

<왼쪽부터 앱코, 한성, 승화인쇄>

   (자꾸 앱코와 비교하게 되는데, 사실 가지고 있는 NIZ의 정전용량 스위치를 내장한 키보드가 앱코와 한성 뿐이라 비교할 다른 키보드가 없다)

   같은 레이저 인쇄 방식인 K935P와 비교해 보아도 888B의 인쇄 상태는 너무 흐리다. 이렇게 흐리게 인쇄한 이유가 키캡의 재질 때문이라고, 혹은 레이저 인쇄의 기술적 한계 때문이라고 변명하기에는 - 사진으로만 비교 하더라도, 같은 인쇄 방식에 거의 같은 재질을 사용한 타사의 키캡 인쇄 품질과는 너무 비교가 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흐리게 인쇄된 키캡은 단순히 심미안적인 관점에서의 불만만이 아니라 제품 자체가 조악하고 낮은 품질로 보이게 만든다는 단점도 있다. 한성에서 조금만 더 신경 써 줬더라면 하는 생각.

 

3. 생각보다 낮은 키보드 높이

<기본을 포함하여 3단계로 설정할 수 있는 키보드 높이 다리>

   이 부분은 기분탓일지도 모르겠는데, 미니 키보드라 그런가, 사용하다 보면 키보드의 높이가 조금 낮다는 생각 마치 계단 방식의 DSA 키캡을 사용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물론 뒷면의 높낮이 받침을 사용하면 3단계 조절이 가능하지만, 부러질 것 같은 조악한 모습의 높낮이 받침을 사용하기 보다는 기본 키보드의 높이를 조금 높여 주었으면 정확하게 말하자면 키보드 상단을 약간만 더 높게 설계해 주었더라면 정말 편안하게 입력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

 

  단점을 세 개 정도 길게 적어 보았는데, 위의 단점 이외에는 꺼낼 만한 이슈가 없는 꽤 괜찮은 블루투스 키보드이다. 키 배열을 기존에 출시된 미니 키보드의 그것에서 크게 변경하지 않은 설계라든가 배터리도 정말 오래가고, 특히 앤프로 키보드의 고질병이던 블루투스 혼선에 의한 키입력 오류 같은 문제가 (이 주 동안의 사용 기간 동안) 한 번도 발생하지 않은 점은 정말 제조사를 칭찬해 주고 싶을 정도이다. 다만 50g으로 설계된 키 압력 값은 조금 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고 (게임용 키보드도 아닌데! 제발 이 모델도 35g혹은 45g용 러버 돔을 따로 판매해 주시기를!) 키캡 인쇄만 좀 진하게 해서 나온다면, 이 한성의 888B모델이 정전용량을 채택한 미니 키보드의 끝판왕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오늘의 간단 키보드 리뷰를 종료.

 

< 승화인쇄 키캡으로 갈아 끼우는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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